정치인은 죽고 시인은 부활한 날
1950년 9월 29일
내가 좋아하는 시인 3명이다.
백석, 윤동주, 김영랑
백석의 시는 한 편의 사랑 영화를 보는
윤동주의 시는 불로초를 먹고 청춘이 다시 찾아온
김영랑의 시는 숲 속에서 맞이한 새벽, 풀 잎 위에 맺힌 이슬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오늘은 이 분들 중에 김영랑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김영랑 시인이 발간한 시집은 2권이다.
일제시대인 1935년 영랑시집
광복 후인 1949년 영랑시선.
1948년부터 한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1949년에 공보처(현 문체부) 출판국장으로 짧게 활동하였다.
김영랑이 아닌 김윤식으로 말이다.
당시 정부조직법 상의 출판국 업무는 이렇다.
출판물과는 신문 기타 정기간행물의 허가와 납본, 출판사와 인쇄소의 등록, 보통 간행물의 납본, 저작권 및 출판권에 관한 사항을 분장한다.
편집과는 관보, 주보 기타 공보처 간행물 편집에 관한 사항을 분장한다.
인쇄과는 관보, 주보 기타 정부간행물의 인쇄와 배부 및 도안 작성에 관한 사항을 분장한다.
김윤식은 해방 전 후 좌우익의 치열한 홍보 전선의 중심에 있던 것이다.
그의 작품처럼 독을 차고 말이다.
이 시기 그가 만들어낸 단어와 문장은 김영랑의 시와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좌익은 빨갱이고 빨갱이가 왜 나쁜지 표현해야 했으니 말이다.
김윤식의 사망일자는 50년 9월 29일이다.
그런데 사망 당일의 기록이 흥미롭다.
서울에서 회군하는 북한군이 쏜 유탄에 피살되었다는 설과 집 근처에 떨어진 포탄에 의한 사망설이 있다.
공통점은 자택 인근에서 우연하게 피살당했다는 점이다.
이 분의 죽음이 정말 우연일까?
좌익을 상대로 홍보전을 매우 잘해서 또는 좌익을 상대로 홍보전을 방해해서 피살된 것은 아닐까?
이승만 정부의 고위관리가 1950년 9월, 공산군 치하인 서울에 남아있었다는 것도 비상식적인 일이다.
1950년 9월 29일
김윤식에게는 비극적인 날이다.
반대로 김영랑으로 영원히 살게 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이 날이 오기 전, 그는 영원히 김영랑으로 살기로 결정한 것 아닐까?
끝.
(마무리)
이 분의 한민당 또는 출판국 국장 시절 기록을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만 두었다.
서정시의 대명사
북 소월, 남 영랑
이 이미지로 내 마음 속에 남겨두고 싶었다.
10대 시절 첫 사랑을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는 것이 꼭 행복은 아닌 것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