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고 모두 같은 부모가 아니다!
정인이에게 강림도령이 함께 하기를...
내 첫 반려 고양이는 암컷, 이름은 나비였다.
고양이는 영양 상태가 좋으면 1년에 3~4번 출산을 한다.
우리 나비는 모성애가 깊었다.
겨울이면 몰래 이불속에 새끼를 물어다 놓았고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접근하면 털을 곤두세웠다.
우리 나비를 계기로 모든 암컷 고양이의 모성애는 본능이라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 나비는 죽고 나비의 증손녀 되는 암컷 고양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나비와 전혀 달랐다.
새끼들에게 젖도 제때 물리지 않았다.
'아...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구나.'
나는 고양이로부터 모성애는 개별적인 특성임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정인이라는 갓난아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했다는 기사 제목을 읽었다.
7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제목조차 클릭할 수 없었다.
아이는 5살이 되면서 심한 투정과 짜증을 부린다.
나도 그럴 때 폭력을 대신할 수 있는 훈육을 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가끔 아내와 다툼이 있거나 회사나 집안 일로 스트레스가 높을 땐
내 기분대로 아이를 혼낸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아이와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편의점 앞에서 혼을 낸 적이 있다.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떼를 썼기 때문이었다.
이 날 내 기분은 너무 나빴다.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곤 나 혼자 걸음을 시작했다.
한 3분이 지나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보이질 않았다.
울면서 나를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 것이다.
나는 황급히 뛰어서 편의점 앞으로 되돌아 갔다.
그리고는 아들 이름을 부르며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헤맸다.
내 아이는 놀이터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 머릿속과 심장이 텅텅 빈 듯한 기분이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절망감 속에 집으로 향했다.
그때 우리 동 로비 현관문에서 벤치 방향으로 걸어 나오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모르니 기다리다 나온 듯했다.)
아이도 나를 보며 소심한 미소를 보였다.
망망대해에서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마음이랄까?
훈육이고 뭐고 아이를 꼭 안으며 이런 말이 나왔다.
'집 앞에 있어줘서 고마워.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이 일은 2019년 11월 3일의 스릴 넘치는 사건이었다.
나는 이 날로부터 항상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다닌다.
모성애 또는 부성애를 갖고 있는 부모가 때때로 훈육의 방법을 잘못 선택했을 때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확신한다.
더구나 정인이 나이 16개월을 생각하면 훈육은 가당치도 않다.
무조건 적인 보살핌과 포옹만을 받아야 하는 시기이다.
입양 부부라는 자들도 자기 친자식을 키워본 자들 같은데 어떻게 16개월 아기를 폭력으로 살인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
정말 몸서리쳐진다.
내가 아들에게 전한 온기와 잘못된 훈육에 대한 미안함을 받아본 일 없이 세상을 떠난 정인이...
이 아기에게는 꼭 '신과 함께' 같은 저승이 있기를 그리고 강림도령이 함께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 아이를 일찍 저 세상으로 가게 만든 모든 어른들에게도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