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조선은 제도적으로 신분제를 철폐했다.
어린 양반이 자기보다 연장자인 평민을 하대하는 제도의 종식이었다.
2023년, 1894년으로부터 129년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신분제가 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조선시대는 족보가 있고
가문 중 누군가 과거 급제를 해야 하며
보유한 토지가 많아야 양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평민들은 위 조건을 갖추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 들은 양반들만 제외된
노동, 세금납부, 국방의 의무를 전담해야 했다.
문제는 양반들이 평민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도덕적으로도
모범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1894년 신분제 철폐되기 전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민란이 그 증거이다.
지금 시대 양반은 누구인가?
족보는 필요 없다.
우선 집안에 재산이 많아야 한다.
그다음 사법고시를 합격한 판사나 검사가 있으면
양반 행세를 할 수 있다.
이런 집안의 아이들 중,
인간에 대한 존중 교육을 받지 못한 일부 아이들이
집안일을 봐주는 운전기사에게 막말을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무시하거나
특정 친구를 왕따 시킨다.
이런 행동들로 누군가 피해를 입어도
돈 또는 사법적 절차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모 또는 조부모가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 들이 재산 없고 사법적 절차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모습에서
학습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 아들이 같은 반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었다.
때로는 선생님 말도 듣지 않고
화를 낸다는 것도 말이다.
이미 아내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2번 면담을 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선생님이 나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나는 거부했다.
당신을 통해서 아들의 문제를 알게 되었는데
직접 만날 필요가 있냐고 말이다.
내가 알아서 잘하겠다고 선생님께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주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를 왜 만나고자 하는지 약 20분간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요약하면 이렇다.
아들이 아내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들의 행동 교정을 위해서는 아버지인 나의 협조가 필요하다.
절대 폭력을 행사하라는 말이 아님을 당부하시고
어떻게 하면 행동 교정을 시작할지 나와 논의하고 싶어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의 초등학생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학교 청소시간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행동에서
실수를 했다고 담임교사에게 뺨을 맞고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일 말이다.
나는 내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 매우 고마웠고
내가 다니던 시절보다 초등학교가
교육문화도 좋아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얼마 후 학교를 방문했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함께
훈육을 시작했으며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지금 언론은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라고 정의한다.
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교사와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새로운 신분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망상으로 돈과 사법적 권력만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행동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람들에 있다.
이 자들의 망상이 현실이 돼서는 안 된다.
이 것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보다
자녀를 돌보고 있는 우리들의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