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산의 경계를 따라 구름이 자욱하게 깔려 있던 하늘에, 어느덧 곱게 먹을 갈아 어느 한 곳 빈틈없이 흩뿌려 놓은 듯 새까만 밤이 찾아왔다.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는 시기인 데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서늘한 밤공기가 산의 경계를 넘어와 몸을 휘감았다. 금세 어둠에 익숙해지기로는 도가 튼 눈으로 땅을 훑으며 조심스럽게 길을 걸어 내려갔다. 호수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비탈까지 여기저기 널린 돌무더기들 틈에서 모난 데 없고 적당히 평평한 돌무더기를 용케 찾아낸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대고 누웠다.
올려다본 얼굴 위로 하늘이 비스듬히 내려앉는다. 거추장스러운 네온 불빛 같은 건 없어서일까? 깊이를 가늠할 길조차 없이 아득하기만 한 하늘에 하나 둘, 별이 순식간에 차오르더니 어느 틈엔가 눈앞으로 까마득하게 모여들었다. 문득 한 팔을 치켜들어 별무리 한가운데를 휘휘 저어 보았다. 손톱 끝에서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지던 별들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은 하늘길 따라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진짜일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몇 분쯤인가 그대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천천히 실눈을 떴다. 어떤 별은 눈이 부실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어떤 별은 주눅 든 것 마냥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박힌 채 유영한다. 다시 눈을 감았다. 별들이 사라진 공간을 이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득 채웠다. 아니 그냥 환청인 것도 같다.
무슨 상관인가. 낮 동안 그토록 모진 햇살 아래서 연신 숨이 고꾸라질 듯 헐떡거리며 꾸역꾸역 여기까지 산을 오른 까닭이 지금 하늘에 박힌 이 무수한 별들을 향한 발걸음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무슨 상관인가. 이왕 내디딘 걸음이 아까워서였던들, 별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인들 무슨 상관인가. 연유가 무엇이든 고작 반나절 수고로움 끝에 이런 순간을 원 없이, 한없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설령 이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해도 아무런 상관없을 만큼 황홀한 밤하늘이었다.
묘한 일이지. 그런 와중에도 뜬금없이 서러움이 복받쳤다. 별빛 아래 창백한 낯빛을 드러낸 호수가 가엾어 보여서는 확실히 아니었다. 사실 곰곰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이유는 너무 명확했다. 곁에서 이 공간을, 이 기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 곧 일상으로 돌아갈 내가 어떤 말을 해도, 편집이 잔뜩 들어간 수 십장의 사진을 늘어놓고 열정 가득한 설명을 덧붙인다 해도, 지금 눈앞에 펼쳐진 하늘을 어느 누구와도 고스란히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혼자 쓸쓸한 까닭이었다. 내일은 다시 각자 다른 길을 향해 떠나게 되더라도, 지금은 마주 앉아 시답잖은 감탄사라도 함께 나누어 가질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 그런 서글픔이었다. 너에겐 참 이기적인 말처럼 들릴 테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도 이해해 줌직한 밤이라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생각하는 나였다.
삶의 절반 이상을 별 탈 없이 굴러온 궤도 위에서 살다가, 한 번의 선택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벗어나 새로운 길에 들어선 몇 해 전 이후로도 나는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오던 인연을 다독여 단단히 하긴커녕 오히려 떠나보내기 일쑤였다. 그래도 지금껏 남아있는, 남아 준 인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은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 정도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짧은 한숨이 미처 막을 틈도 없이 입 밖으로 흐응, 하고 우스운 소리를 내며 삐져나왔다. 그런 서운하고 서글픈 마음 알 턱이 없는 무심한 밤공기가 새어 나온 한숨을 삼켜버렸다. 심술궂기도 하지. 그러자 이번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뺨을 타고 흐르던 몇 방울 안 되는 그 눈물마저 이번엔 무정하게 불어온 밤바람에 훌쩍 말라버렸다.
마른 눈으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결핍된 하늘 아래 촘촘히 박힌 별이 오래전 추억처럼 영롱하고 너의 눈빛처럼 반짝인다.
밤은 여전히 깊고, 아침은 아직 멀리 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