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부가 가자지구 주민 최대 100만 명을 리비아로 영구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 보도를 접한 많은 이들은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단순한 돌출 행동이 아니라, 트럼프 정치의 심층 구조에서 매우 일관된 논리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바로 ‘탈도덕적 실용주의(Post-moral Pragmatism)’라는 개념이 그 핵심입니다.
‘탈도덕적 실용주의’는 이름 그대로 도덕을 기준 삼지 않는 실용주의입니다. 정책의 정당성보다도 실행 가능성, 공감보다도 결과, 가치보다도 이득을 먼저 따지는 세계관이죠. 무엇이 옳은가를 묻지 않고, 무엇이 작동할 수 있는지만 계산합니다.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은 이 틀 안에선 계산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이 문제를 가장 빠르게 정리할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계산기 위에 놓인 값은 ‘100만 명의 강제 이주’, 즉 도덕을 제거한 채 산출된, 오직 효율 중심의 해답입니다.
이러한 실용주의는 트럼프 정치에서 익숙한 방식입니다. 그는 정치와 외교를 거래로 간주해왔고, 사람보다 시스템을, 공감보다 압박을 중시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구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가 도덕을 지우는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문제는 이 구상이 단지 '비윤리적'이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더 넓은 세계에서 “정치에서 도덕은 불필요한 장식일 뿐”이라는 위험한 신념을 확산시킵니다. 그리고 이 신념이 퍼지면, 국제질서라는 이름의 공동체는 이익만 남고 책임은 사라진 무정부의 경쟁장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효율을 말하고 전략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전략의 대상이 아닌, 전략 그 자체로 삼는 순간, 정치는 더 이상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부터 정치는, 오직 힘의 크기와 계산의 속도만이 지배하는 비인간적 연산체계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한 명의 정치인이 던진 ‘가능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옳은가?’라는 질문이 얼마나 위태롭게 밀려나고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탈도덕적 실용주의의 진짜 위협입니다. 정치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효율만으로는 인간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정치는 가능해야 하지만, 그 가능성 위에는 사람의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의지를 잃는 순간, 우리는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전략의 숫자로 환원될 수 있는 세계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