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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정산

by 최정식

조직은 수시로 구성원과의 이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이 영전이든, 퇴임이든, 혹은 자연스러운 이직이든 간에, 그 순간은 단지 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의 감정을 정리하고 정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 퇴임자에게 선물을 마련하려고 구성원에게 비용을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명령의 형식을 띠었고, 자발성이 배제되었습니다. 그 인물이 조직 내에서 충분한 신뢰와 존중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구성원들은 이 요구를 '정서적 강요'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별에는 정서적 정산이 필요합니다. 정서적 정산이란, 함께한 시간의 무게를 되새기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었는지, 억울함은 없었는지, 서로의 노력이 존중받았는지, 그것을 내 마음 안에서 결산하는 일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 겉으로만 떠나보내는 이별은, 관계의 빚을 남깁니다.


그동안 쌓이지 않은 감사의 마음을 퇴임 순간에 한꺼번에 끌어올 수는 없습니다. 형식으로 덮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또 다른 감정의 상처를 남기기 쉽습니다.
누군가를 보낼 때, 조직은 그 사람만을 위한 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남을 이들의 마음도 조용히 다독여야 합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관계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 문장을 억지로 쓰게 해선 안 됩니다. 서로가 정서적으로 정산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존중이 주어질 때, 그 문장은 비로소 아름답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습니다.


조직은 인사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감정이 정리되고 관계가 매듭지어질 때, 그제야 다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떠남이란, 함께했던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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