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 버렸다”와 “전혀 없다”는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표현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라는 단일한 시점에서 보면, 두 말은 모두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손에 쥘 수 없고, 바꿀 수 없으며, 개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지금의 관점만을 고집한다면, 한때 있었던 것과 애초에 없었던 것 사이의 거리는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시간의 차원에서 두 말은 본질적으로 다른 결을 지닙니다. “지나가 버렸다”는 한때 존재했던 순간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억이 되어 되살아나기도 하고, 감정의 잔향이 되어 현재를 흔들기도 합니다. 반면 “전혀 없다”는 애초에 탄생조차 하지 못한 가능성의 부재입니다. 존재의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못한 채, 시간 속에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인간의 마음을 다르게 움직입니다. 지나간 것은 상실의 아픔을 남기지만, 그 아픔이 곧 추억과 의미가 되어 다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없었던 것은 상실 대신 공허를 남깁니다. 그 빈자리는 미련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상상과 갈망으로 채워집니다.
결국, 현재라는 좌표에서는 동일하게 ‘없음’이지만, 시간과 기억의 지평에서는 하나는 흔적 있는 없음, 다른 하나는 흔적 없는 없음입니다. 인간은 이 둘을 구분하기에, 지나간 것을 붙잡으려 애쓰고, 없는 것을 만들어내려 꿈꿉니다. 그것이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의 본성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