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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성

by 최정식

아침에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를 묻습니다. “오늘도 같은 리듬으로 갈 수 있는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기보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시작하고,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그 단순한 형식을 지켜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성실은 제게 의지라기보다 습관의 모양입니다.


때로는 의문이 듭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일이 과연 무슨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약속을 지킨 흔적이 제 안에 작은 질서를 세우고, 그 질서가 하루동안의 말을 차분하게 만들고, 그 말이 다시 행동을 정리해 줍니다. 저는 그 잔잔한 파문을 믿고 싶습니다.


성실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들을 지나오며 배운 것도 있습니다. 때로는 결과만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 앞에서, 과정은 손쉽게 오해됩니다. “그저 성실한 사람”이라는 말에 담긴 미묘한 평가를 느끼면서도, 제게 남는 것은 결국 오늘의 형식을 지켜 낸 기록뿐이었습니다. 그 기록이 자존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저는 제 안에 또 하나의 관객이 있음을 압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성실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스스로에게 약속한 성실은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체크리스트에 작은 V표시가 늘어날수록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감각이 조금씩 두꺼워집니다. 그 감각이 다음 선택을 가볍게 해 줍니다. 내심의 기준이 밖의 소란보다 큽니다.


언젠가부터 성실을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성실이 낳는 이익을 조용히 드러내 보이려 합니다. 마감을 앞당겨 공유하면 피드백이 깊어지고, 회의 시간을 지키면 대화가 또렷해집니다. 이유를 짧게 곁들이면 선의가 의무로 오해받지 않습니다. 설명은 과시가 아니라 오해를 줄이는 예의임을 늦게야 배웠습니다.


물론 흔들립니다. 피곤한 날에는 기준선이 흐려지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성급함으로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오늘도 같은 리듬으로 갈 수 있는가?” 대답이 선명하지 않으면, 작은 것부터 다시 걸어 올립니다. 메모 한 줄, 정리한 문장 하나, 마감 한 건. 작은 승리를 쌓아 올리면 마음이 다시 제 자리를 찾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화려한 칭찬이 아닙니다. 같은 리듬을 이어 가도 된다는 허락, 그 리듬이 쓸모 있다는 확신입니다. 성실은 박수를 먹고 자라기보다, 믿음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습니다. 믿음은 밖에서 건네받을 수도 있지만, 많은 날은 제 안에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제게 다짐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멈추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약속을 내일도 같은 방식으로 지키겠습니다. 남는 것이 결과뿐일 때에도, 제 몫의 과정은 저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끝까지 가다듬겠습니다. 그 반복이 언젠가 누군가의 기준을 조금이라도 높였다면, 그 또한 감사히 받겠습니다. 성실은 조용하지만, 제 삶에서 가장 확실한 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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