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권력과 책임, 그리고 정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행하는지 드러내는 중요한 시험대다. 그러나 탄핵정국의 본질은 두려움에 의해 좌우된다. 가결 전에는 공멸의 두려움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가결 이후에는 심판과 처벌의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두려움이 어떻게 정치적 행동의 기준이 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탄핵안이 발의되고 표결을 앞둔 정치권의 풍경은 긴장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탄핵이 가결되면 우리 모두 무너질 것"이라는 공멸의 두려움은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행동의 기준을 왜곡시킨다. 정무직 인사들은 자신과 속한 정당, 더 나아가 정치 세력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움직인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생존 본능에 가까운 집단적 방어 기제로 작용한다. 정책적 논의와 민주적 절차는 후순위로 밀리고, 표 계산과 연합 공고화가 우선시된다. 그 결과, 공멸의 두려움이 정치적 책임과 도덕적 판단을 대신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시기의 행동 기준은 집단적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은 종종 중요한 결정을 지연시키거나, 최소한의 타협으로 문제를 봉합하려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약화시키고 정치적 허무주의를 심화시킨다.
심판의 두려움 속 책임 회피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 공멸의 두려움은 심판과 처벌의 두려움으로 바뀐다. 이제는 집단이 아닌 개인의 운명이 문제다. 심판의 칼날은 정치인의 법적 책임과 도덕적 정당성, 그리고 대중의 비난으로 가혹하게 내려온다. 이 시점에서 정치인들의 행동 기준은 철저히 개인의 생존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적극적 방어, 희생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태도, 혹은 처벌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소극적 자세가 그 예다. 공적 책임보다 개인적 이익이 우선시되는 이러한 행동은 대중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긴다. 또한, 가결 이후의 두려움은 정치권의 경직성과 조직 내부의 불신을 심화시킨다. 정치적 행동의 동력이 두려움에서 나온다면,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정책은 설 자리를 잃고, 정치적 회피와 인기 영합적 행태가 지배하게 된다.
탄핵정국이 보여주는 것은 정치가 두려움의 논리에 의해 좌우될 때 초래되는 부작용이다. 공멸의 두려움은 정책의 본질적 논의를 약화시키고, 심판의 두려움은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를 조장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정치인 개인의 문제를 넘어, 민주적 시스템 전체의 신뢰를 위협한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것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도구이자,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공멸의 두려움과 심판의 두려움을 넘어, 신뢰와 원칙이 행동의 기준이 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는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