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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30. 2020

부석사 길,

어떤 이야기를 꺼내면 아직도 선명한 기억들, 그해 겨울 부석사에 눈이 솜사탕처럼 쏟아졌다. 함박꽃 같기도 했다. 새벽하늘은 새파랗게 빛났고 시린 바람은 꽁꽁 얼 것 같았지만 내 머릿속을 관통하던 바람에는 박하향이 났다. 하염없이 눈을 맞았다. 피고 지는 꽃이 순식간에 피어만 있는 것처럼 아직도 피어나는 곳, 그토록 포근했다. 어느 한순간의 이야기가,


엊그제 부석사 가는 길 옆 사과나무 빨간빛이 사라졌다. 부석사 오르던 길 옆 은행나무 노란빛도 사라졌다. 예상보다 훨씬 잿빛이 스며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세상에 바치는 헌시처럼 진실함, 그것은 마치 우주의 어느 한 곳을 채우러 나간 영혼의 빛처럼 사그라들었다. 귀에는 들리지 않는 나무의 소리가 나를 품어 들려주었다.


암튼, 그날도 일정을 마치고 서성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그날을 만지며 그곳을 걸었다. 어떤 탁월한 선택은 어떤 특별한 가치를 아낌없이 소모하게 해도 소모되지 않고 담긴다. 모든 공기, 모든 나무들, 모든 사실로 소란을 덮은 자연의 품에 안기면 그지없이 고요하다. 적막하지 않는 고요가 담겼다.

두 번을 다녀가고 알았다. 근처에 백두대간 수목원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아도 거긴 가지 않았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넓은 땅을 걸어 그 전부를 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그곳을 너머 산길을 달렸다. 참 용감해졌다. 그런 내가 대견하기도 해서 피식 웃었는데 왠지 세상 어딘가 새로 만난 존재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이토록, 맴도는 문장들을 뱉어내는 일은 참 어렵다.
시간 없음은 핑계 같기도 하여 감히 시간 없다는 말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맞다고 또 핑계를 댄다.

언젠가 문장이 저절로 말을 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삼키는 게 지금은 낫겠다 싶어서, 핑계라도 좋다.

그날을 기약하며,
잠시 꺼내보는 순간을 정말 무늬 없이 쓰고 잔다.
대신 붉은 꽃잎으로 수 놓인 이야기는 열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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