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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02. 2021

아무것도 아닌 일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무얼 해야 했는데 잔뜩 할 일을 펼쳐두고 얼마나 오래 멍하니 있었는지 모른다. 괜히 거실 창가를 서성였다. 남향의 햇살은 넘치도록 따끈하다. 그래서 뭐든 뉘이면 녹아든다.


한동안  빠져들다 보면 갑자기 정신이 든 듯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러다 또 멍해지는 순간이 오면, 갈필 없는 이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자주 텅 비었고 자주 가득 차 올랐다. 새봄을 위한 계획안을 구상하고 새로 만들어야 할 강의안을 마주하고도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갔다.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하고 한 번도 분주함도 없는 무게는 오롯이 내게 왔다. 마음이 급하거나 조바심이 이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어떤 작은 소요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일어나면 가라앉고 가라앉으면 다시 일어나 무중력의 달을 떠다니듯  정착하지 못한 마음만 둥둥 떠다녔다. 심지어 무겁게 어깨를 누른던 지구의 중력더 갇혔다.


그럴수록  자주 커피를 내렸다. 그 사이 세잔의 커피를 마셨다. 한 번은 원두를 갈아 내리고 나머지는  새로 마련한 캡슐커피를 내려 마셨다. 아날로그적인 손 맛과 향기를 지닌 원두커피를 따라갈 순 없었으나 아이스라테를 만들어 먹으면 깜쪽같이 맛있다. 내가 애정 하는 별다방 돌체 라테가 부럽지 않다.


나름, 시간을 대하는 자세를 다했다. 꼬박 하루의 시간들이 헐거워서 새어나간 듯 보이나 의미들은 그로서 존재했음을 안다. 공간을 가득 채운 공기 안에 있던 침묵과 보이지 않던 소란, 그것은 최소한의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놓인 시간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게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목표 설정을 했으나 자투리 시간도 없어서 빠져나갔을 법한 셈법인데도 그대로 시간으로 존재했고 대했다. 그후 후회는 했으나 후회 없이 흘렀다. 약간의   아쉬움은 내일 다시 꺼내 숨 쉬게 하면 되겠지, 하는 저녁 어둠이 내린다. 하루가 사라지도록 아무도 모르게 나는 이러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겠지 했다. 시간도둑을 잡을 이유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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