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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08. 2021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좀처럼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한동안 자주 설레다가 자주 한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갔다. 그래서 무작정 좋았는데 이러다 버거운 숙제가 돼 버릴까 봐 서둘러 단속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창 너머 오는 빛들을 가려버렸다. 아득히 눈부신 빛들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빠져드니까, 온 창 가득 커튼을 쳐 버렸다. 그래도 들어오는 빛, 어렴풋이 비치는 빛이 차분해졌다.  이상하게 창가를 빠져나오면 나도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는 네모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순순히 갇혔다.


창가 테이블에 놓였던 노트북을 옮겼다. 빛으로부터 멀치감치 떨어식탁 위에 놓고  앉으니 묘하게 안정적이었다. 창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빛의 명암과 농도는 적절히 가라앉아 주변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안에 좀처럼 차분해지기 어렵던 내 마음도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었다.


잠시 한 숨 내려놓고 한 마음 내려놓고 커튼이 가려버린 창가를 본다. 빛에 노출된 마음이 차단되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놓인 빛들이 너무도 강렬해서 내가 타버리는지도 몰랐다. 그럴수록 빛을 사랑하는 마음은 타 들어가고 심지어 어떤 순간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마음을 고백한다.


누구는 모르는 내 마음을 나는 안다고 했는데 부지런히 돌아갔다. 지구가 돌고 태양이 지고 다시 떠오르면 나는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들뜬다. 이만 주저앉아야 한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곳이 제자리인 줄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이래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싶었다. 그래야만 넘치는 빛처럼 쏟아지는 상념들을 차단하고 그 안에 들어와 앉을 테니까,


마음에도 커튼을 친다.  스며드는 빛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빛, 밀어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마주하면 자주 설레다가 침몰하는 풍경으로 서 있을 때도 있다.


간신히 빠져나온다. 어떤 사실로부터 그래야만 한다는 법칙은 없다. 다만 마음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그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달래기로 했다. 약간의 아쉬움과 허전함은 또 다른 빛으로 투명해질 테까.


그러다 어제는 조금 더 빠져나왔다. 그리고 오늘은 집중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강의 영상 두 개를 만드느라 휴일 아침부터 종일 바빴다. 열악한 도구를 활용한 셀프 촬영을 해야 했다. 줌 영상 촬영은 안된다고 해서 우리 집  tv를 뒤로 하고 내 앞으로 폰을 두고 몇 번을 다시 찍었는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점심도 못 먹도록 끝내고 나니 후련하다. 이제 다음 일을 해도 되겠다. 하나씩 하고 끝내야 했던 일이었는데 그 사이 너무 산만했다.


빛으로부터 흔들렸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풍경, 또 산만한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은 제자리에 앉아 늦은 밤 안에서 일이 손에 잡혀 일 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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