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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03. 2021

봄, 문이 열렸다.

혼자가 아닌 걸 느낀다. 언제나 시작은 지나가버려도 끝에서 다시 만나는 순간 보이는 아침이 온다. 빛처럼 멀리서 와서 눈부신 것들에게 보낸다. 가지지  못해 아련한 일들을 삼킨 빛이 봄의 문을 여는 날,  봄으로 간다. 봄 마중. 어쩐지 기분이 좋다.


입춘. 무심히 흐른 빛이 여기에 닿아 대지의 온도를 높여 뭐든 녹인다. 꽁꽁 언 땅이 느슨해져 물이 오르고  나무들의 발그레한 빛깔엔 여린 빛이 있다. 겨우내 안으로 품은 빛을 내 보내는 일의 경이로움은 오랜 무심함이다.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그대로 바람을 맞았고 바삭하게 매달린 잎 곁으로 싹을 틔우는 연두의 시간은 한없이 사라져도 우주의 에너지를 닮아 닳고 빛바래도  그 안에 그대로 담겼다.


오늘부터 봄이란다. 한 번도 같은 날을 맞이할 수 없고 한 번도 같은 공기를 마신적이 없는 우리는 오늘부터 봄이라고 말해주는 자연이 좋다. 한순간도 한순간 그대로 존재하는 순간의 귀함이다. 경계를 이어주는 순정한 순리는 부디 거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극히 숨 쉴 수 있는 선긋기는 인위적이 아닌 무위의 삶 그 자체로서 흐르니까, 최소한 우리가 말하는 그 검은 진입장벽의 높은 선이 아니니까. 경계 지을 것도 없이 무너지니까, 봄이기도 하고 겨울이기도 하고  섞여서 조화로우니까. 그러니까 어제가 봄이 아니었다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봄처럼 태어나는 하루니까, 다르지 않고 같지 않아서 그대로 봄, 이다. 시나브로,


의식처럼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열면 내게 오는 바람을 만진다. 말갛게 시린 차가움을 사랑한다. 바람 한줄기 스치면 잦아드는 상념들, 모두가 가버린 공간이 고요해지면 나는 지니에게 음악을 주문하고 홀로 커피를 내리고 앉는다. 곧 헤어질 시간들, 나만의 특혜처럼 나날이 소멸되는 2월, 곧 분주해질 3월이 오기 전에 나날이 아낌없이 보내며 봄을 본다.


알 수 없는 상념들이 먼지처럼 날아가겠지. 열린 봄이 가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서성대는 그리움 따위들,

어떤 생각 없이 집중하는 공기의 질감을 만진다. 사람의 질감마저 회복되는 진실된 호흡이 필요한 순간이다.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을 이유없이 사랑하지 않는 순간을 데운다. 사랑의 어떤 형식이 사랑을 변질시키는지에 대한 애정을 탐구하기 전에 봄이 건너온다.


사랑하는 이를 맞이하는 의식처럼 문 앞에 서성이던 바람마저 다정한 오늘 아침이 좋다. 버선발은 아니어도  맨발로 창가에 서서 눈 맞춤하는 우리 사이는 사랑하는 사이 맞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 않게 먼저 빛으로부터 노란 봄이 온다. 아직 쌀쌀한 바람 불어와 추워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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