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고 나니 시원했다. 또 산을 올랐다.
푸르름은 여전히 우거져 있었고 뜨거움을 휑궈낼수록 나무들은 익어갔다. 짙은 푸름은 더위에 아랑곳없이 훨씬 무럭무럭 자라났다. 누군가에게는 지치도록 뜨거운 무더위의 성가심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지치지 않는 무성한 여름의 빛으로 피어오르게 했다. 나무의 시간이 오면 나무는 오직 나무의 하루만큼씩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아무도 모르지 않게.
완벽한 하루는 없다.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하면
어떤 하루도 하루만큼 잘 살았다는 증거를 남긴다.
삶이 희망의 증거가 될수록 그럼에도 희망은 고문하지 않는다. 살아온 흔적 그대로 존재는 하루를 선물 받는다. 그저 모든 순간 감사할 뿐이다. 숲의 시간도 도시의 시간도 오직 헛됨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루의 지극함은 평범하지만 귀하다. 때로는 가용시간을 꽉 채우느라 넘치도록 과한 순간 맥없이 흘러 보내기도 하지만 그래서 다행일 수도 있다. 다만 걸어갈 뿐이라는 생각과 다만 거꾸로 가도 괜찮다.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이 소환되는 순간 새로 시작되는 사실로 풀어갈 뿐이다. 어떤 순간의 시작이 골든타임으로 회복된다면 아무도 모르게 또 살아질 테니까. 움직이다 숨이 차면 또 쉬어가면 되고 완벽하지 않기에 수정할 수 있는 그림의 부분을 보게 되기도 하니까. 또 괜찮다. 저마다 시간의 결을 그리며 이 순간을 살면 되니까.
너무 애쓰며 열심히 살지도 말고 소멸하는 것은 그대로 두자. 어떤 날은 조금만 열심히 살아도 뿌듯하니까. 너무 아쉬워 하지만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살자. 그렇고 그런 날이 모이고 모이면 원하는 날이 오고 그러면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에는 어떤 용기가 생기니까. 그러면 또 균형을 잡으며 살아갈 테니까.
틈만 나면 산을 오르리라 다짐했는데 틈만 나면 집에서 쉬었다. 그러다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섰는데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내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지금은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