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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n 03. 2020

힘을 빼면 힘이 자란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흐른다. 볼륨을 줄여도 가늘게  밤이 흐르는 소리는 켜 두고 흐른다. 스탠드 불빛이 방 하나를 다 채우도록 밝아져 어쩌면  덩그러니 남은 밤의 정적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데도 보이고 말았다는 난처함 내지 민낯을 드러내고 노랗게 물드는 중이다. 그 빛은 낯선 이방인 같다가 곧 익숙한 공간에서 자유롭다. 술을 마셨다. 예전 같으면 소주 한잔에도 표 나게 약해져 쓰러졌을 텐데 멀쩡하다. 심지어 늦은 밤에 잠이 깨어 끄적이고 있는 나는 특별한 글쓰기를 위한 여백을 채우는 것은 아니지만 쓰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생각은 스치듯 잠잠해지기도 하겠다 싶어 일어나 앉았다.

소주가 아닌 톡 소다, 란 술이었는데 사실 탄산수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 생각해서 사온 걸 안다. 이 한 병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깔라만시가 전부였는데 저녁을 먹고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둘러앉았다. 아주 드물게 술을 마시는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아빠 술친구가 돼주는 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참 좋았다. 그저 술을 마시는 것보다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좋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진로와 준비과정을 아빠는 힘을 빼고 들어주었다. 아빠 입장에서 해주고 싶은 조언도 많았겠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아주 헐렁하게 들려주었다. 이해보다는 공감으로 진지하게 깊어지고 있던 자리였다.


무엇보다 어떤 진지함은 불편한 피로감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하지만 다만 넘치기 쉬워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자신의 사랑을 가르치고 그 사랑이 거부될 때 사랑 그 전부를 상실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까 그런 혼자만의 사랑은 서로 아프다. 서로가 원하는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 그대로 사랑으로 존재함을 느끼는 순간은 위대하다. 강하면 부러지고 약하면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는 그것만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상대에게 힘을 주는 말이면 좋겠다. 힘을 받아 힘이 나는지 너무 무거워 버거운지를 살피고 다독이면 좋겠다. 이상하게 힘을 뺄수록 힘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꿈을 꾸고 꿈을 지어가는 그 길 위에서 순간순간 행복하면 좋겠다. 꿈을 이루기까지 힘들겠지만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하는 가치를 스스로 알아가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 오래 걸려도 좋다. 세상에 쓸데없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주도적이며 도전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선택 그 사이 어떤 지점을 연결한 순간이 오면 자신만의 가치를 가진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이 먼저 오겠지. 그 믿음은 선물처럼 아이들 마음속에 심긴 나무에 또 하나의 꽃이 피어나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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