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귀찮지만 막상 해보면 재미있는 게 있는데, 대표적으로 요리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요리’란 재료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당연히 간편식이나 밀키트는 해당되지 않는다.
요리하는 것이 왜 귀찮을까? 아마도 음식을 먹는 시간에 비해 요리를 준비하고 뒷정리하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식비가 조금 더 나가더라도 시간을 아낀다는 측면에서는 외식이 더 나은 선택지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시간이 흐르면서 더 효율적인 요리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이유로 요리를 안 한다는 것은 핑계가 될 수도 있다.
그보다 요리를 쉽게 시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의외의 요인이 있는데, 바로 ‘레시피 의존증’이다. 레시피에 나온 대로 따라 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일종의 강박 증세다. 물론 레시피 의존증은 내가 생각한 용어로, 레시피를 볼 때는 백종원 선생님 못지않게 요리를 잘하지만, 레시피 없이는 요리하기를 꺼리는 s나의 태도에서 유래했다. 이는 수학 수업에서 선생님 설명대로 문제를 풀라고 하면 잘하면서도, 막상 혼자서 해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는 학생들을 떠올리게 한다.
요리의 진정한 즐거움은 ‘레시피 의존증’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처음에는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되, 나중에는 재료나 조리 방법 한두 가지를 바꿔서 요리해 보는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레시피의 90% 정도만 따라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마치 수학 문제를 풀기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나온 한두 가지 조건을 바꾸어 다시 풀어보는 것과 같다. 이러한 ‘문제 제기’ 활동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유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길러준다. 더 나아가 창의적 사고를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흥미와 자신감은 덤이다.
요리 레시피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은 수학에서의 문제 제기 활동과 일맥상통한다. 즉, 다양한 요리법을 시도해 봄으로써 내가 만들고자 하는 요리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고, 레시피를 안 보고도 비슷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례로, 최근에 비건 요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만들어 본 ‘표고버섯 깐풍기’가 있다. 돼지고기 대신 표고버섯을 넣어 만든 탕수육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인터넷을 찾다가 알게 된 레시피이다. 표고버섯 깐풍기 레시피는 크게 두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전분을 녹인 물을 입힌 표고버섯을 기름에 튀긴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다진 양파를 넣고 설탕과 식초를 섞은 물을 넣고 볶아 소스를 만들면 끝이다.
물론 레시피를 100% 따라한 것은 아니었다. 신선한 표고버섯이 없어 집에 있는 말린 표고버섯을 대신 사용했다. 제아무리 말린 것이라 해도 뜨거운 기름에 튀기면 식감이 살아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씹히는 맛이 온데간데없었고, 말린 표고버섯을 프라이팬에 볶았을 때 나는 씁쓸한 맛이 났다. 한마디로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소스가 맛있었던 덕분에 요리한 것을 끝까지 다 먹을 수 있었다.
깐풍기를 다 먹고 뒷정리를 하려는데 소스가 세 숟가락 정도 남았다. 남은 소스를 버리기는 아까워 깐풍기를 더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야채 대신 밥을 튀겨보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즉시 밥통을 열어서 현미밥 세 숟가락을 떴다. 그다음 주먹밥에 김가루를 묻히듯이 현미밥에 전분을 입혔다. 가스레인지 불을 다시 켜고 기름을 빠르게 데운 뒤, 하얀 전분물을 묻힌 현미밥을 넣었다.
현미밥으로 만든 깐풍기의 맛은 별거 없었다. 튀긴 전분을 현미밥에 얹어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말린 표고버섯과 마찬가지로 현미밥을 프라이팬에 볶았을 때 나는 맛에 가까웠다.
사실 현미밥을 튀기기 전에 대파로도 깐풍기를 만들어보았다. 어쨌든 깐풍기를 세 가지 버전으로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은, 버섯이든 밥이든 각자 취향에 맞는 재료를 사용하여 탕수를 만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스가 생각보다 깐풍기 맛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시피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요리를 함으로써,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요리에 꼭 필요한 재료를 갖추고 있다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참고)
1. 본문에 나온 '문제 제기' 관련 내용은 <수학교육학신론3> (황혜정 외), '제3부. 수학 문제해결 교육론' 참고함.
2. <꽈배기의 멋>(최민석)에 실린 단편소설 '민방위와 소설가의 각오'를 오마주하여 첫 문장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