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에 돈 아끼지 않는 이유
일주일 중 4~5번은 퇴근 후 동네 식당에서 8천 원~ 1만 원 전후로 식사를 한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집밥으로 반값에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데도, 고물가 시대에 굳이 이렇게 '사치'를 부리는 이유가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의외의' 합리적인 투자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외식으로 해결하면 식비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대신, 나머지 시간대(아침, 점심)에서 돈을 아낀다. 아침 식사는 거의 하지 않고, 점심은 주로 회사 구내식당에서 저렴하게 해결한다. 하루 식비는 1만 5,000~8,000원, 한 끼 평균 식비로 치면 5,000~6,000원 정도로 생계에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저녁 식사를 덜 해서 식비를 더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맸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 도시락이나 간편식으로 저녁을 때우곤 했다. 식비를 아껴 조금이라도 더 저축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식비가 1만 원이 채 안 되는 날이 종종 생기곤 했다.
하지만 식비가 줄어듦에 따라 시간에 대한 통제력도 점차 줄어 갔다. 푸짐한 저녁 한 상을 먹으며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싶다는 욕망과, 통장 잔고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물론 어찌어찌 버티다 보면 저녁을 거르고 잠자리에 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3일째 되면,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한 영역에서 "제발 저녁 좀 그만 굶어."라는 명령을 내린다. 저녁에 계획한 과업을 실행하려는 이성의 뇌가 감정의 뇌에게 지배를 당하는 꼴이다. 아무 일도 안 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곤 한다.
저녁 식사도 투자 상품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만큼은 너그러이 대하기로 했다.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는 일종의 시간을 사는 행위로 규정하고 예산이 허락하는 선에서 아낌없이 투자하기로 했다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는 비서(secretary)를 고용하는 것과 진배없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를 정리하고, 설거지하는 시간도 아낄 수 있다. 특히 저녁은, 하루 있었던 일을 스마트폰에 메모하거나, 메모장에 있는 아이디어를 글로 바꾸기에도 적절한 시간대이다.
또한 식당에서 먹는 저녁 밥은, 하루의 절반을 집 밖에서 보내며 소진한 기력을 채우는 '에너지 드링크'와도 같다. 혓바닥에 오감을 집중시키며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영양소를 보충함으로써 남은 저녁 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계획한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저녁 식사에 돈을 쓰는 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을 '사는' 행위이자, 하루의 절반을 마무리하는 '의식'이다. 물론 자금 사정에 따라 식비의 상한선을 조절하는 건 필요하겠지만,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선에서 저녁 식사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