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신포도. 이솝 우화에서 여우에게 외면당한 불운의 포도가 맞아.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를 탐내던 여우가 있었는데, 발이 닿지 않아 따먹을 수 없었지. 그러면서 남긴 한 마디로 인해, 여우는 현대인들에게 '자기 합리화'의 아이콘으로 고통받게 돼.
"아직 덜 익었군"
다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 거야. 그런데 여우는 나를 '신포도'라고 말한 적이 없어. 왜 너희는 내게서 신맛이 난다고 생각한 걸까?
사실 나는 신맛이 나는 포도가 맞아. 하지만 '신포도'는 아니야. 이솝 씨가 살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내게 붙여준 이름은 신포도가 아니라 '덜 익은' 포도였지. 무슨 차이냐고? 내가 덜 익은 결과가 '신맛'이거든. 나는 그저 한창 익어가는 과정을 겪는 포도였을 뿐, 신맛을 내길 원하지 않았어.
어느 포도든 한순간에 익지 않아. 달콤한 맛이 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인고의 세월을 거친 열매는 단맛이 나게 돼있어. 그리고 토실토실하게 여문 포도는 몸이 무거워지면서 아래로 떨어질 거야. 발을 뻗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포도를 맛볼 수 있거든.
물론 비바람이 몰아칠 때 스스로 '익음'을 택하고 일찍 떨어져 버리거나, 자신을 '신포도'라고 단정하고 나뭇가지에 그대로 매달리는 친구들도 있지. 하지만 적당한 때를 기다리다 보면 비로소 잘 익은 포도가 되어 있을 거야. 신맛은 내가 정할 수 없지만, 우리를 신포도로 단정하는 순간, 더 이상의 익음은 없을 거야.
만약 여우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한 알이라도 여우의 발밑으로 떨어뜨렸을 거야. 왜냐하면 여우가 본 내 모습은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히 익어가는 모습이었을 테니. 완벽하지 않은 나를 사랑해 주는 이에게는 마음을 기꺼이 열 준비가 돼있어.
세상에 신맛이 나는 포도는 많지만 신포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라.
*참고 : <어른을 위한 이솝우화 전집>(문학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