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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Aug 07. 2023

23.고통을 제대로 알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의 마지막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인간의 삶을 택한 천사가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빠져 '마침내' 고통을 느끼고, 몸부림치며 기뻐하는 모습. 인간을 사랑했던 그는 바다의 차가움, 요동치는 심장박동, 숨 쉴 수 없는 고통을 몹시도 원했던 터였다.


고통 없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더 자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아침을 맞는 이 일상적인 스트레스마저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고통이 없는 삶이 분명 행복할 것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고통(정확히 말하자면 '통증'이다.)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행복의 요소임을 역설하는 자가 등장했다. <고통의 비밀>의 저자 몬티 라이먼이다. 그는 통증의 본질을 고찰함으로써 통증에 대한 우리의 인식 세계를 새롭게 확장시킨다.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다." 


"통증은 항상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정도로 영향을 받는 개인적 경험이다."


"통증이 나타나는 것은 위험 신호를 척수 위로 통과시키거나 차단하는 관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통증 자체가 전적으로 뇌에서 생성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통증은 뇌에서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뇌가 통증을 '만드는' 것이다."


"즉, 뇌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


저자는 고통이 우리 몸이 손상을 입었는지, 혹은 위험한 상태인지에 대한 '뇌의 무의식적인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통증을 몸이 손상되었거나 위험한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만 바라보던 의학계에서 그의 주장은 고통을 재인식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저자의 주장에 뒷받침이 된 사례가 매우 흥미롭다. 1944년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 중 70% 이상이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주 크게 다친 병사 역시 크게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이처럼 병사들이 상대적으로 통증에 무딘 이유는 병원에 도착한 순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전쟁터에 남아있는 것보다 다쳐서 병원에 있는 게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았다. 그들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한 상황으로 바뀌었음에 고통보다 안도감을 더 비중 있게 느낀 것이다. 고통을 인지하는 신호 체계를 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물리적으로 가해진 통증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여기서 생각을 확장하면, 뇌에 속임수를 쓰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만으로 수많은 질병에 노출된 이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고통을 아프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도록 유도하는 물질을 발견하고 연구한다면 어떨까? <고통의 비밀>에서는 이러한 상상에 힘을 실어주는 다양한 연구들이 등장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구는 플라세보 효과 실험이었다. 


"2000년대 초반 도전 정신이 뛰어난 휴스턴 출신의 정형외과 의사들이 '플라세보 수술'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무릎 관절염을 앓는 환자 18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쪽에는 일반적으로 하는 관절경 괴사조직 제거술을 시행했고, 다른 한쪽에는 전신 마취 후에 무릎을 절개만 하고 닫는 가짜 수술을 시행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플라세보 수술은 진짜 수술만큼 효과가 있었다. 더욱이 2년 뒤에도 가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진짜 수술을 받은 환자들보다 통증 면으로나 기능적으로 수술 결과가 더 좋았다."


가짜 수술로 수술애 따른 통증 완화가 조직상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기대감과 희망으로 인한 뇌의 변화 때문이라는 가설을 입증했다. '가짜'라는 단어가 어감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비윤리적이라는 부정적인 시선만 걷어낼 수 있다면 의학계에서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가장 신뢰받는 의사가 가장 병을 잘 고친다." 2세기 그리스 의사 갈렌이 한 말이다.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당신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병을 낫게 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고통의 비밀>은 통증의 엄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을 불행으로 낙인찍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책이 될 것 같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니체는 말했다. 고통을 내 몸의 수호자로 인식하는 것 자체로 오늘을 살아낼 동력을 얻는다면, <시티 오브 엔젤>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픔을 느끼는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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