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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 숨은 맛집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

창신동골목시장 ‘수원성갈비’‧용문전통시장 ‘삽다리순대국’

지난 5일 점심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창신골목시장을 찾았다. 동대문을 기점으로 사대문 밖이지만 동대문구가 아니라 종로구다. 동대문구로 존속하다가 1975년 종로구에 편입했다. 인구변동에 따른 선거구제 개편 때문이다. 만리동이 중구로 편입된 것도 같은 이유다.         


창신동 동명은 조선초 한성부의 방(坊) 가운데 인창방과 숭신방에서 한 글자 씩 따서 지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한성부 행정관할 구역을 제정할 때부터 있어왔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연부락 이름도 많이 전해진다.      


지금은 청계천이 완전 복개돼 지천을 보기 힘들지만 창신1동 3.1아파트 1동 앞에는 복차천이 흘렀다. 이 개천에 놓인 다리를 복차교라 했다. 복차교는 복차다리 혹은 복초다리라고도 불렀다. 창신1동 531번지 일대를 복초다릿굴, 복차교동, 복차동이라 했다.      


동대문 밖은 북적대는 마을로 발전했다. 해방 후 1960년대까지 대규모 이농으로 창신동, 숭인동 일대 인구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지역은 지금도 여전히 서울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17세기 무렵 지방에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흉년이 겹치면서 몰락한 농민들이 국가에서 구휼책을 내놓자 창신동 등 서울로 몰려들었다.     


또 일제하 경성부 인구 집중 과정 속에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전쟁 전후 창신동 비탈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판자촌이 들어섰다. 도시빈민들은 개인적으로 소유권 분쟁이 없는 낙산 기슭 산비탈이나 청계천 변의 공유지에 거처를 만들었다.      


시장은 서민들 삶의 원천이자 맛집 보고

 

전통시장은 서민들 삶의 활력이 살아 있는 곳이면서 맛있는 음식을 가성비 좋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왼쪽은 서울 종로구 창신골목시장, 오른쪽은 용산구 용문시장이다.


인구가 많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초등학교 학생 수다. 1970년 당시 창신국민학교는 무려 122학급 1만166명의 학생 수를 기록했다. 이듬해 학생 일부를 떼서 명신국민학교로 분리했다.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어른들도 많았다는 반증이다.      


이스턴호텔 쪽 마을을 성밑굴 혹은 성저동이라 했다. 이 지역이 성저십리에 속했기 때문이다. 창신초등학교 아래 공영주차장 부지인 창신1동 82번지 일대는 연못과 정자가 있었다. 그래서 정자동이라 했고 동지(東池)란 연못이 있었다. 서대문 밖의 서지, 남대문 밖의 남지와 더불어 연꽃이 유명했다. 서지 연꽃이 많이 피면 서인이 득세하고 동지의 연꽃이 많이 피면 동인이 득세한다고 해서 상대방 연못의 꽃대를 부러뜨린 경우가 있었다. 이들 연못은 1930년을 전후해서 매립됐다.      


창신1동에는 동덕여중고가 있었다. 이 일대는 새말이라 불렀다. 동덕여학교를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할 때 사람들이 모여 새로 마을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신촌(新村)이라고도 불렀다. 전국에 새말 또는 신촌이란 지명이 많다. 대부분 새로 만들어진 마을을 일컫는다.      


창신1동 195번지 일대 궁안우물에서 넘쳐흐른 물은 작은 개천을 이뤄 청계천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개천 위에 쪽나무로 놓은 다리를 남교(藍橋) 또는 쪽다리라 불렀다. 지금의 동묘역 근처다 영미다리에서 오간수교를 지나 3.1아파트까지 청계천변은 뚝섬, 광나루까지 운행되던 기동차 길이다. 이스턴호텔과 한전변전소 자리는 기동차 시발지 역사였다. 동대문 로터리에서 청량리역까지의 왕산로는 한국전쟁 직후 약3~4년간 역마차가 운행됐다.      


창신1동 327번지에는 우리나라 초창기 아파트 중 하나인 1965년 지어진 동대문아파트가 있다. 1개동 131가구에 중정(中庭)이 유명한 아파트다. 입주 초기에는 연예인들이 많이 살아 ‘연예인아파트’로도 불렸다. 1969년에 만들어진 3.1시민아파트는 도심 쪽 윤락가를 정비하고 청계천 복개공사를 위한 부대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번 칼럼에 소개할 창신골목시장을 둘러싼 마을의 역사는 이렇다.    

  

수입산 소갈비 가성비 좋게 제공

창신동골목시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수원성갈비’는 가성비 좋은 소갈비 집으로 유명하다.

창신골목시장 안 깊숙한 곳에는 값싸게 소갈비를 ‘뜯을 수’ 있는 ‘수원성갈비’란 식당이 있다. 수원갈비의 본고장 수원에서 1981년 개업한 40년 저력의 노포다. 28년간의 수원 영업을 접고 2002년 지금 자리에 똬리를 틀었다. 시장 일대는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 여전히 낡고 작은 상가들이 즐비하다. ‘수원성갈비’ 역시 키 낮은 천정에 허름한 공간이다.  


대부분의 고깃집이 탕반으로 점심 장사를 하는데 반해 ‘수원성갈비’는 오직 고기만 판다. 그럼에도 점심부터 문을 열어 시장 골목 깊숙한 곳에 ‘은신’해 낮술을 즐기는 주당들에게 인기가 많다. 무엇보다 이 식당의 비결은 소갈비와 갈빗살의 가성비다. 일반 식당의 반값 정도면 소갈비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저렴한 가격의 수입산 거세 육우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금액이다.      


양념된 소갈비는 생갈비보다도 싸고 소 갈빗살과 돼지갈비로 저렴하다. 물김치와 배추김치는 직접 담근 것을 내온다. 물김치가 심심하니 제법 맛있었던 기억이다. 종로3가 갈매기살 고기 골목에도 ‘종로수원성’이 있다. 이곳 역시 ‘수원성갈비’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관계된 식당이다. ‘종로수원성’은 시내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수원성갈비’보다 고기 값이 싸다. 위치상으로도 창신동보다 훨씬 좋은 핫플레이스다. 종로는 주머니가 가벼운 청년들의 성지이고 창신동은 값싸게 소고기 누린내를 향유하려는 중장년들이 많이 찾는다.           


맑은 육수의 잡내 없는 순댓국

  

용문전통시장 ‘삽다리순대국’은 맑은 육수의 감칠맛과 가성비가 어우러져 순댓국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필자는 가끔 사무실이 있는 삼각지에서 한강다리를 건너려고 용문시장을 지날 때가 있다. 용문시장은 전통시장으로 1965년에 만들어졌고 2013년 서울시 인정시장으로 등록됐다. 용문시장에는 유명한 식당이 꽤 있다. 시장 초입에 김밥을 파는 ‘싱싱나라’는 늘 긴 줄을 세운다. 뼈 해장국으로 유명한 오래된 식당 ‘창성옥’, ‘용문해장국’도 유명하다. 필자는 무엇보다 용문시장에서는 ‘삽다리순대국’을 으뜸으로 친다.      


자고로 맛집이라고 하면 가성비가 좋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호텔 맛집’이란 용어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호텔은 가격이 비싼 만큼 무조건(?) 맛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시장 골목은 착한 가격과 맛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해서 가성비 좋은 맛집이 늘 보석처럼 숨어 있기 마련이다.      


몇 해 전 서울역-청파-원효 골목길 답사를 마치고 용문시장엘 들른 적이 있다. ‘삽다리순대국’ 집을 찾아갔으나 준비한 식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문을 닫는 중이다. 장사가 매우 잘된다는 소리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발길을 옮기 것이 ‘창성옥’이란 해장국 집이다. 뼈전골과 도가니수육이 메인 메뉴인 곳이다.      


내용물이 실하게 들어있고 무쇠그릇에 끓이니 맛이 더했다. 70년을 훌쩍 넘은 전통의 해장국 전문점이니 저력이 있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창업 이후 창업주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건물주 부부가 3대째 이어서 운영 중인데 창업주의 손맛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삽다리순대국’ 집은 이후에도 두세 번 들렀는데 결국 맛을 보지 못했다. 갈 때마다 늘 재료가 소진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 늦게 갔던 게 문제였다. 그래서 한 번은 점시시간이 살짝 넘은 1시경에 24명이 들이닥쳤다. 일대 역사답사를 마친 단체가 간 것이다.      


천우신조였을까, 아니면 그동안 헛걸음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삽다리순대국’의 전 좌석 24개가 고스란히 비어 있었다. 그래서 단 한 명의 소외 없이 전관 대관의 행운을 누렸다. 한꺼번에 몰려갔는데도 사장님은 능숙하게 손님을 맞았고 음식도 큰 지체 없이 제공됐다.        


‘삽다리순대국’의 가장 큰 특징은 맑은 순댓국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대부분 순댓국 식당이 다진 양념을 넣어서 주는 반면 이 곳은 순대, 부추가 투명한 육수 안에 담겨서 제공된다. 부추의 달달함과 잡내를 완전히 잡은 육수의 감칠맛 조화가 가히 최고다. 맑은 육수는 잡뼈를 사용하지 않고 머리고기와 내장만을 사용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곰탕과 같은 원리인 셈이다.      


머리고기 모둠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구성이 가성비 있게 제공된다. 순대, 긴, 귀때기, 암뽕, 오소리감투, 막창은 물론 돈설까지 한 접시 그득 담겨 나온다. 플레이팅도 시장 순댓국집을 넘어선 정갈함과 비주얼을 갖췄다.         

여전히 간판 없이 압도적 비주얼의 노란색 엑스배너 하나로 손님을 끌고 있는 ‘삽다리순대국’. 사실 과거에는 엑스배너 조차 없이 입소문으로 찾아들곤 했다. 오래된 시장 구석에는 맛집이 한 두 곳은 꼭 숨어있다. 이번 주말엔 장도 보고 맛있는 음식 맛도 보는 공간인 전통시장에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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