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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만 보고 지나치면 후회하는 '찐맛집'

허파 요리보다 육사시미‧곱창 유명한 ‘동대문허파집’

가끔 상호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식당을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즐겨하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라 음식 종류이고 연변음식, 닭 내장 요리 등이다. 이와 유사한 ‘허파’란 단어가 들어간 간판도 그냥 지나친다. 그러다가 최근 무의식적으로 지나쳤다가 진면목을 접하고 깜짝 놀란 식당이 있다. ‘동대문허파집’이란 곳이다.      


‘동대문허파집’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에 위치해 있다. 가성비 좋은 평양냉면과 녹두지짐, 설렁탕, 홍어무침이 유명한 ‘유진식당’과 같은 뒷골목 라인에 있다. ‘유진식당’은 애초 국밥전문점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값싸고 질 좋은 평양냉면이 젊은 층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또 돼지기름으로 고소하게 부쳐낸 녹두지짐과 소‧돼지수육, 홍어찜 등이 인기를 누리면서 종로 맛집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현 대표의 부친인 창업주 문용춘 씨가 1968년 낙원상가 골목에서 북한식 순대와 국밥전문점을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문 씨는 북한 출신 실향민으로 낙원상가 인근에서 국밥전문점과 한식당 ‘대동강’을 운영했다. 이들 식당을 1985년 폐업한 뒤 1988년 현 위치에 ‘유진식당’이란 상호로 식당 문을 다시 열었다. 개업 초기에는 실향민과 노년층이 많이 찾았다. 지금은 젊은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다. 요즘은 오후 3시부터 문을 연다.      


탑골공원 뒷골목 강자 ‘유진식당’ 라인에 있어

‘동대문허파’는 탑골공원 북측 뒷골목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유진식당’ 라인에 있다. 사진은 야장을 펼친 모습.

‘유진식당’ 옆으로는 ‘선비옥’이란 돼지갈비, 육사시미를 주력하는 곳과 모둠전과 닭 한 마리를 파는 ‘초원집’, 이번 칼럼에 소개하는 ‘동대문허파집’이 잇따라 붙어 있다. 메뉴가 살짝 겹치지만 나름대로 특색 있는 주력 메뉴를 개발해 중복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이 골목에 들어 선 손님들에게는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빠져나가기 힘든 구조다.      


그동안 ‘유진식당’에 대기가 있거나 문을 닫으면 ‘선비옥’을 갔다. ‘동대문허파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호만 보고 아예 들어가 볼 생각을 안 했던 것이다. 최근에 일행과 함께 ‘유진식당’엘 갔다가 대기 손님이 있는 것을 보고 골목을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이곳을 강력 추천하는 사람이 있어서 들렀다가 깜짝 놀란 경험을 했다.           


우선 칼럼 얼개의 한 축인 ‘동대문허파집’이 위치한 탑골공원의 ‘땅의 역사’를 알아보자. 이곳은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층이 쌓여 있음 직한 공간이다. 탑골공원은 원래 고려 때 홍복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다. 조선 개국과 함께 조계종 본사가 됐다가 억불숭유 정책으로 폐사됐다.      


1464년(세조 10)에 효령대군의 건의로 근방 인가 200여 채를 철거하고 왕실이 주관하는 원각사란 절로 중건됐다. 탑골공원이라 불리게 된 원각사지십층석탑도 이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다시 숭유억불이 강화되면서 연산군 때는 기방이 들어서더니 중종 때는 결국 사찰 건물은 없어지고 원각사지10층탑과 대원각사비만 남게 됐다, 이 때문에 탑골로 불렸다.      


탑골에 현재의 서양식 공원이 들어선 것은 대한제국 시기다. 황제에 즉위한 고종은 서울을 근대 도시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탑골공원도 근대화 작업의 산물이다. 1897년부터 1902년 사이에 우리가 만든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조성됐다. 효창원, 장충단공원, 한양공원 등 일본인에 의해 조성된 것과 다른 의미를 가졌다.      

당시 탑골공원에 지어진 팔각정은 흔치 않은 건축물이었다. 지금은 동네 공원에 있는 정자들이 거의 팔각정이지만 전통적 동양의 건축에서 팔각정은 황제의 건물을 의미한다. 팔각이라는 도형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과 땅을 의미하는 사각 사이의 도형으로 해석했다. 팔각은 하늘과 땅을 잇는 상징물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조선에서는 지을 수 없는 건축물이었다.     


시층이 다양한 탑골공원...쌓인 이야기도 많아       


탑골공원의 팔각정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원구단에 있는 황궁우에 이어 대한제국 시기에 세워진 두 번째 팔각 건물이다. 이는 중국의 제후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의미를 담은 장소성을 갖는데, 후일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와 역사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시민이 아닌 여전히 황제의 공간에 머물렀다.      


일제에 의해 국권이 박탈당한 1910년 공원 관리권은 총독부로 넘겨갔다. 총독부는 탑골공원에 정자, 화단, 벤치, 연못, 전등, 수도시설, 온실 등을 조성하는 한편 벚나무와 상록수를 식재하고 1913년 일반인들에게 개방했다. 탑골공원 명칭도 불탑을 뜻하는 ‘파고다공원’으로 바뀌었다.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킨 것과 같은 작업의 일환이었다.        


탑골공원 안에는 3·1운동과 관련된 기념물들이 많이 배치돼 있다. 탑골공원 정문 정면에 있는 손병희 동상도 그중 하나다. 천도교 교주였던 손병희는 민족대표 33인의 대표격 인물이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은 만세운동 당시 탑골공원에 오지 않고 태화관에 모여 있었다. 그래서 혹자들은 손병희 동상을 두고 문제를 삼기도 했다. 손병희 동상 이전에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의 동상이 있는 등 공간을 채운 역사적 기념들의 변화도 이어졌다. 현재 탑골공원에 남아있는  원각사지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는 각각 보물2, 3호로 지정돼 있다.     

 

탑골공원 정문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7년 당시 파고다공원이었던 탑골공원은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문을 지금의 한옥식 삼일문으로 교체했다. 강릉소재 국보 제51호 객사문을 본 딴 것이다. 삼일문이란 현판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이다. 뜯어낸 기존 정문은 1969년 3.1절  50주년을 기념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문으로 기증했다.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서였다. 1975년 서울대 법대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남기고 간 것을 지금은 서울사대 부속초등학교가 사용하고 있다. 


치마살 육사시미 씹는 맛이 일품

      

‘동대문허파집’의 육사시미와 간‧천엽, 등골은 각기 독특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탑골공원 역사를 둘러봤으니 ‘동대문허파집’에서 요기를 해보자. 남루하진 않지만 세련된 공간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소주 한잔 마시기 딱 좋은 공간이다. 함께 간 일행과 자리에 앉자마자 육사시미, 간‧천엽(처녑), 등골을 주문했다. 생식을 먼저 시작한 것이다. 소 내장과 기타 부위에서 생식을 하는 것은 간, 천엽, 염통, 지라, 등골 부위다. 이 식당엔 아쉽게도 염통이 없어서 주문하지 못했다.        


육사시미는 보통 기름기가 없는 부위 고기를 주로 사용한다. 후지 부위, 전지와 견갑 사이 꾸리살, 엉덩이 부위 우둔, 설깃, 채끝 등이 육사시미나 육회로 주로 식탁에 오른다. ‘동대문허파집’ 육사시미는 치마살을 사용한다. 소의 채끝 아래 복부 부위를 발라낼 때 나오는 특수부위다. 치마처럼 외측 복벽을 덮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양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치마살양지’ 또는 ‘복부양지’ 라고도 한다.      


붉은색이 선명하고 육질이 단단해 쫄깃한 식감이 있다. 홀에 앉아 있으면 이 식당 정학철 대표가 치마살을 다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근섬유 결과 반대방향을 칼을 넣어 재빨리 끊어내는 모습은 또 하나의 보는 재미다. 홀에 손님이 꽉 차면 점포 앞과 탑골공원 담벼락 아래 야장을 펼치는데, 그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소 간은 윗부분이 두껍다가 차차 가늘어진 형태를 띠고 있다. 평균중량은 5~7kg, 송아지의 경우에는 800g 정도이다. 광택과 탄력성이 있는 것이 신선하다. 그런 면에서 ‘동대문허파집’ 간은 빠른 회전율 때문에 선도가 일정 보장된다. 신선한 것은 혈액에 의한 특유의 냄새가 있지만 단백질. 비타민, 철분 등의 보충을 생각한다면 일단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것이 좋다. 특히 비타민 A의 함량은 다른 기관이나 조직보다 월등하게 많고 비타민B 복합체, 지방, 철, 구리. 코발트, 망간, 인, 칼슘 등이 다른 식품에 비해 높은 편이다.      


소의 세 번째 위인 천엽(千葉)은 나뭇잎 모양의 얇은 내장이 1000장 붙어 있다는 데서 유래됐다. ‘잎사귀머리’로도 불린다. 돌기처럼 너털너털하게 생긴 부분은 고들개라고 한다. 고들개가 두툼하게 붙은 고기를 고들개머리 또는 광대머리라고 한다. 천엽은 위 전체 7~8%를 차지하고 있다. 보기보다 식감이 부드럽고 꼬들 거리는 씹는 맛과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지라는 비장을 말한다. 제1위(양)와 복부에 연결된 림프기관으로 소의 경우 무게는 보통 1kg 정도가 나온다. 모양은 가늘고 긴 타원형이다. 색깔이 짙은 선홍색이고 콜라겐 함량이 높아 식감이 연하다.  등골은 등골, 두골, 동자골로 나뉜다. 등골은 척추, 두골은 머리, 동자골은 경골에서 나온다. 이중 등골은 경추로부터 요추 내부에 걸쳐있는 손가락 굵기의 하얀 호스모양의 골수를 말한다. 지방이 풍부하고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다. 취급하는 식당이 많지 않다. 이 식당에서는 팔지 않지만 소 염통(심장)은 다른 내장의 근육들이 평활근인데 반해 심장근육은 얇은 심근 섬유로 이뤄져 식감이 좋고 담백하다. 


원초적 비주얼의 곱창 맛은 으뜸  

  

곱창구이는 감자 몇 조각에 양파, 대파 등을 넣어 소박하게 나오지만 곱창의 곱이 듬뿍 담겨 있어 진한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대부분 육사시미 등 생식류와 곱창, 대창 등 소 내장 구이를 주문해 먹고 있다. 간혹 허파전골이 보였지만 식당 상호와는 달리 생식과 구이가 강한 곳이었다. 필자도 일행과 생식 3종 접시를 거의 비울 무렵 곱창구이를 추가로 주문했다. 메뉴판 최상단에 적힌 메뉴였기 때문이다. 손질이 잘된 곱이 꽉 찬 원초적 모양의 곱창 맛은 담백하고 고소함 자체였다. 그동안 간판만 보고 ‘허파’만 파는 곳으로 오인해 눈길도 제대로 안 주고 지나친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많은 식객들이 ‘동대문허파집’에 열광하는 이유는 신선한 생육과 좋은 가성비 때문이다. 다음번엔 같은 가격의 육사시미와 구이용 소고기 가성비가 좋은 ‘종로등심’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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