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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복궁 훼철의 아픔 특별한 '칼국수'로 풀어

일제의 法宮 파괴 슬픔 독립운동가 후손 맛집서 달래

남대문시장서 50년 넘은 ‘한순자손칼국수’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 한 후손 식당  

뭘 주문해도 칼국수·비빔밥·비빔국수 제공            


문화지평의 ‘옛 전찻길 따라 시공간을 잇는 서울 역사’ 6회차 답사가 청와대사랑채에서 시작해 남대문에서 마쳤다. 사진은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북악산)을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

 

여섯 번째 ‘옛 전찻길’ 따라 걷다가 찾아든 맛집 탐방기를 소개한다. 이번 옛 전찻길은 ‘조선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법궁 경복궁 앞과 좌우를 지나다녔던 노선이다. 우리 국권이 온전히 살아있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전찻길 부설이 일제 강점이란 안타가운 현실 속에선 너무 어이없이 쉽고 잔인하게 이뤄졌다. 그것도 모든 것이 일제의 통치 이념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일제는 1915년과 1929년에 각각 시정 5년과 시정 20년을 기념한 조선물산공진회와 조선박람회를 열었다. 일제 식민지배가 식민지 조선의 근대적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쇼를 한 것이다. 이때 장소로 활용한 것이 경복궁이다.      


물산공진회 핑계 법궁 전각 매각          


경복궁은 그전부터 전각이 훼철되기 시작했는데 물산공진회를 기점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1909년 건청궁, 1910년에는 공원을 조성할 목적으로 전각 4000여 간을 경매에 부쳤다. 경매는 왕실 사무를 총괄하던 궁내부가 경복궁 내 공원신축을 위해 전각을 팔아 치운 것이다. 조선인과 일본인 80여 명이 경매에 참여했고 이 중 10여 명에게 전각이 팔렸다. 특히 일본인 북정청삼랑(北井靑三郞)이 전체의 3분의 1을 사들였다. 그는 동양척식회사 총재 우좌천일정(宇佐川一正)의 서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렇게 매각된 전각들은 민간에서 살림집, 요릿집, 기생집, 사찰 등으로 사용됐다. 우리는 일제강점기가 지난 후에도 이들에 대한 소재나 존재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1911년에는 조선총독부에 경복궁 부지 권리를 넘어갔다. 이때부터 경복궁 전각과 시설에 대한 훼철과 매각이 가속화됐다. 창덕궁 전각 보수와 중건에 쓰이는 부재도 경복궁의 전각을 헐어서 충당했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경성시구개수사업을 추진, 물산공진회 개최 이전에 완성했다. 경성시구개선사업은 도로개수를 통한 경성 시가정리에 목적이 있었다. 이 도로는 대부분 전차가 놓였기 때문에 전차노선과 거의 일치했다. 1914년에는 광화문-황토현(코리아나호텔)광장-대한문광장-남대문-경성역에 이르는 도로가 준공돼 광화문광장에서 물산공진회장인 경복궁까지 관람객 이동이 편리하게 됐다. 도로와 전차노선의 발달은 물산공진회 관람객 유치와 맞물려 있다. 이때 많은 전차노선이 복선화 됐다.         

  

좌측은 1907년, 우측은 1915년 물산공진회 때 훼철되고 남은 전각(채색부분).  

매각된 전각은 사찰·기생집에 쓰여      

    

이날 답사는 효자동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시작했다. 광화문선의 종착역이었던 곳이다. 광화문선은 과거 세종로-광화문 앞(중앙청 앞)-적선동-통의동-효자동으로 이어지는 노선이다. 답사는 노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광화문 앞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향했다. 이 노선은 안국동-세종로를 잇는 안국동선이다. 안국동에서 다시 세종로 방향으로 회귀해 서울도서관(경성부청)을 거쳐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노선은 태평통선이라고 불렀다.       

    

이들 노선은 물산공진회와 조선박람회 등 대규모 행사에 시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교통수단이자 경복궁 주변에 들어선 식산은행 사택 등 기숙생활을 하는 이들의 출퇴근용으로 활용됐다. 지금도 김정희 집터였던 통의동 일대에는 동양척식회사 사택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식민 수탈기관 사택 흔적 아직 남아있어      


일제는 물산공진회 위한 전시장 부지를 마련한다는 구실로 경복궁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물산공진회는 어차피 전시공간이 필요했기에 전각을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일제는 죄다 뜯어다 팔아버렸다. 이는 어쩌면 조선총독부 청사 부지를 마련하기 위한 저의가 깔린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하는 지점이다.           


근정문 앞 홍화문과 그 양쪽 옆을 지키던 유화문, 용성문, 협생문 등이 한꺼번에 헐려 나간 것도 이때다. 근정문 앞 금천의 영제교는 그 앞에 놓여 있던 돌사자 세 마리와 함께 뜯겨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동궁이라 불리던 자선당도 이때 함께 헐렸다. 경복궁의 몸살은 해방 후에도 계속됐다. 1955년 해방 10주년 산업박람회, 1961년 근정문 특설무대의 5.16혁명군 위문공연, 이듬해 5.16혁명 1주년 기념 산업박람회 등이 열렸다. 당시 위정자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남대문 시장 칼국수 골목 유명          

남대문시장 칼국수 골목

숭례문 안쪽에서 답사를 마치고 답사팀은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칼국수골목으로 향했다. 골목 안은 점심시간과 맞물려 이미 식객들로 꽉 차 있었다. 16명이나 되는 인원이 함께 앉을자리가 없어 칼국수 골목 앞에 있는 ‘한순자손칼국수집’이란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식당 2층에 좌식으로 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남대문 지역 칼국수 식당 특징은 칼국수, 비빔밥, 비빔국수 중 어떤 것을 주문해도 세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메인으로 주문한 그릇이 약간 클 뿐이다. 칼국수는 유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들어가고 보리비빔밥은 열무와 무생채가 주를 이뤄 고추장에 비벼 먹을 수 있다. 여기에 비빔국수까지 먹을라치면 배가 슬슬 거부하기 시작한다. 질보다 양이 앞서는 식단이다. 다만 이 식당에 특별한 스토리가 있어서 한 번쯤 찾을만하다.           


한쪽 벽 구석에는 김구 임시정부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한순자 대표의 부군 김정식 씨는 독립운동가였던 고 김정로(1914∼1958) 의원이다. 김 의원은 광주고보 1학년이던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일찍 독립운동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 사건으로 일제에 수배되자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가서 백범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에는 ‘한순자 대표의 시아버님이신 김정두 의원(2대 국회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이시다’라고 적혀 있다.


식당 사진에는 ‘한순자 대표의 시아버님이신 김정두 의원(2대 국회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이시다’라고 적혀 있다. 원 사진 제목은 사진 은 ‘신생계창립기념’이다.           

여기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된다. 김정로가 김정두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본래 이름은 김정규였는데 백범이 김정로, 독립운동가 손일민 선생이 김정두란 이름을 지어줬다. 가명을 사용해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 세태가 읽힌다. 김정두는 백범을 도와 해방 후 조국 재건사업을 도우면서 1950년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58년 세상을 떠났다.           

칼국수, 비빔밥, 비빔국수 중 어떤 것을 주문해도 세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것이 남대문시장 칼국수 특징이다. 사진은 칼국수 주문 모습.

이 식당은 2018년 4000원, 19년 5000원, 2000년 7000원을 받다가 지금은 1만원을 받는다. 너무 가파르게 음식 값을 올렸다. 양을 줄이고 가격도 좀 내리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과식으로 부대끼는 속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걸었다. 서울역 건너편 남산자락인 동자동을 거쳐 후암동으로 향했다. 동자동 동명 유래는 확실치 않다. 다만 서계동 동쪽에 위치한 까닭이라고 추측된다.           


동자동 골목에 접어들자 붉은 깃발이 수 없이 걸려 있다. 처음엔 무속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각 집마다 너무 많이 꽂혀있다. 동네 부동산에 물었더니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은 깃발이라고 한다. 서울역 건너편 시내 한복판 마천루 같은 빌딩 숲 뒤로는 쪽방촌이 숨어 있다.           


서울시가 2020년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동자동엔 건물 67개동에 쪽방 1163개, 1083명이 살고 있다. 건물 한 동을 쪼개 평균 17개의 방을 냈다. 만약 재개발을 한다면 이들은 모두 거리로 내몰릴 위기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최근 동자동 15-1번지 일대(1만533㎡) '동자동 제2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정비계획 변경 결정안'을 수정 가결해 쪽방촌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강로 '정성손칼국수'.

마지막까지 남은 일행 몇몇은 걸어서 삼각지에 있는 ‘정성손칼국수’ 식당을 들렀다. 남대문시장서 채우지 못한 칼국수의 진미를 얻기 위해서다. 정성손칼국수는 8년 만에 다시 찾았지만 옛 맛 그대로 매끈한 면발과 끈적한 육수, 적당한 고기 고명 등이 식객을 반겼다. 평양냉면 가격은 물론 칼국수 가격도 만만치 않다. 소비자물가가 전반적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식객의 상념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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