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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시작은 도마, 직접 만들어 볼까요"

공방서 도마 체험 후 맛보는 보리밥전문 <예닮>·제주돼지전문 <풍성갈비>

장에서 식재료를 사 와서 씻고 다듬으면 으레 다음 순서는 칼을 대는 경우가 많다.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거나 특정한 모양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칼을 받아내는 도마다. 그래서 어쩌면 음식의 시작은 도마가 아닐까 한다.    


역사인문감성놀이터를 지향하는 ‘문화지평’(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에서 ‘나만의 원목 도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월 첫 주부터 매주 토요일 연속 3주간 한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김영상가구공방’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을 전공하고 여행사를 경영하던 김영상 작가가 어려서부터 익혀왔던 목공 손재주를 살려서 운영하는 공방이다. 김 작가는 상업주의가 아닌 작가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 옻칠양장을 출품해 좋은 평을 받았다. 


지인을 통해 도마 만들기 체험을 부탁했더니 김 작가는 좋은 조건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한꺼번에 많은 수가 들이닥치면 체험의 질이 떨어지고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서 회당 6명 정도로 제한했는데, 신청자가 많아 4회로 나눴다. 그만큼 목공체험에 관심이 많다는 신호다.


등촌동은 90년대 후반까지 수도통합병원이 있던 지역


1928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외래진료소(사진 위)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육군통합병원. 보안사령부 본부로 쓰인 종로 소격동  시절 수통(사진아래)

김영상가구공방이 있는 등촌동은 옛날 높은 산등성이 연달아 붙어있고 산마루를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서 등마루골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등촌동이 됐다는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지금도 봉제산(117.3m)을 비롯해 까치산(70.4m), 우장산(96.1m), 용왕산 등이 즐비하게 남아 있어 등마루골의 유래를 대변하고 있다.   


공방 인근 지역에는 1653세대의 등촌동아이파크 아파트가 있다. 2004년에 지어졌는데 그 전에는 국군수도병원이 있던 자리다. 국군수도병원은 국군의무사령부 예하 병원으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창설됐다. 피난지 부산 경남여중에서 제36야전병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서울 종로구 소격동으로 이전했고 1953년에 수도국군병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1971년에 수도통합병원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당시는 영등포구였던 등촌동으로 이전했다. 흔히들 ‘수통’이라고 불렀다. 필자도 의무병 출신이라 휴가 중 큰 사고로 입원한 부대원을 병문안하기 위해 80년대 후반에 수통을 한번 다녀간 기억이 있다.


등촌동 시대 수도통합병원(사진 위)과 현재 경기도 성남 소재 국군수도병원 전경(사진 아래).


1984년 현재 이름인 국군수도병원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1999년 지금 위치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병원을 이전했다. 서울시는 병원을 수의계약으로 매입해 특수병원 및 시민공원으로 활용하려고 했지만 무산된 전력도 있다. 1992년에는 군 의무현대화 계획 일환으로 95년까지 강동구 길동으로 이전한다고 청와대 결재까지 받아 발표했지만 이 또한 무산됐다. 이런 우여곡절이 많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다.  


수통 자리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들어서


과거 국군수도병원 등촌동 시대에 자리 잡았던 부지에 지금은 현대아이파크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시공사인 동아건설은 당시 25층 규모의 주택조합 2370가구를 짓겠다고 아파트건축 사전결정심의를 신청했지만 주변 경관 문제로 대폭 축소됐다. 심의에서 25층으로 지을 경우 봉제산 경관을 해친다는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봉제산은 학이 알을 품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봉은 매봉이라고 부른다. 이밖에도 능동산, 매봉산, 수당산, 화곡산이라고 불렸다. 능동산이란 이름은 1760년대 해동지도 채색 필사본에 표기돼 있다. 매봉산은 주봉 이름에서 유래됐다. 수당산은 서낭당이 있어서 불렸고 1967년 이후에는 화곡산이라도 했다. 봉제산은 이 지역 허파 같은 존재다. 둘레길이 잘 조성돼 있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어디든 땅의 역사가 있다. 등촌동에도 수많은 역사의 시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등촌동이 속해 있는 강서구는 서울이 확장하면서 영등포구에서 분구된 곳이다. 1963년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가양, 마곡, 등촌, 염창, 신정, 목동, 화곡, 신당리), 양서면(내발산, 외발산, 송정, 과해, 방화, 개화리), 부천군(오곡, 오쇠리)을 영등포구에 편입시켰다.


1977년 인구증가로 구를 증설할 때 영등포구의 16개 동을 통합해 강서구를 만들었다. 1988년 강서구에서 다시 목동, 신월동, 신정동을 떼서 양천구로 분구했다. 강서구 지역은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란 지명으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등장한다.


이는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할 당시 해마다 허가(許家)바위 동굴 속에서 수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장소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후 재차파의로 불렸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율진군 공암현, 고려시대에는 양광도 공암현으로 지명이 변경됐다. 조선조 이후에는 금양현, 금천현, 양천군, 양천현 등으로 지명변화가 있었다.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한강 하구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진경산수로 남긴 역사적 사실이 유명하다. 의성 허준을 배출한 양천 허씨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김영상가구공방서 ‘나만의 원목도마 만들기’ 체험


직접 다듬고 기름칠까지 한 도마. 체험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나무가 주는 물성이 고스란히 인간에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주변을 돌아봤으니 공방으로 들어가 보자. 주택가 지하에 자리 잡은 공방은 흔한 간판도 하나 없다.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간판이 필요 없다는 것이 김 작가의 변이다. 공방 작업환경과 공구 등으로 인해 많은 수강생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애당초 그런 방향으로 공방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한때는 논현동 가구거리에 공방을 두면서 강남 쪽에서 작품 좋기로 소문이 났을 정도로 역량 있는 작가다.


도마는 월넛이란 수종으로 만들었다. 편백나무도 선택권을 줬지만 대부분이 월넛을 선호했다. 월넛은 호두나무를 말하며 연한 갈색 계통에 부드럽고 수려한 줄무늬를 가진 무늬목이다. 월넛은 단단하고 무게감도 있는 고급 원목이다. 반면 편백은 월넛에 비해 무르고 가볍다. 편백은 주로 일식에서 생선을 다룰 때 많이 사용한다.


작가는 체험 전에 원목의 종류와 도마로 쓸 수 있는 나무와 사용해서는 안될 것에 대한 설명을 했다. 소태나무는 한방에서 고목(苦木)이라고 부르는 쓴맛을 내기 때문에 도마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공방에는 주로 벨트 동력을 이용한 육중한 공작기계들이 많다. 김 작가는 판재를 성형하는 공구들을 차례로 설명하면서 안전사고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기계에 전원을 넣고 돌리니 실내를 압도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크고 날카로운 톱날이 인정사정없이 돌았다. 이날 체험에서는 큰 공작기계는 손대지 않고 전동사포인 샌딩기와 모서리를 둥글게 따는 트리머 정도만 체험자가 직접 사용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직접 디자인한 도마 완성…만족도 높아


김영상 작가의 작품과 그의 부인 매듭 작품. 김 작가가 나무의 종류와 물성, 공작기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

도마를 만드는 가장 첫 번째 순서는 마음에 드는 원목을 고른 후 구상한 디자인을 연필로 표시하는 것이다. 벽에 걸어 놓기 위해 구멍을 뚫고 싶으면 원을 크기와 위치를 정해 원목에 그리면 된다. 또 손잡이를 만들고 싶으면 잘라낼 곳을 표시하면 된다. 판재를 성형한 후에는 끊임없는 샌딩 작업이 이어진다. 표면과 모서리를 맨손으로 쓰다듬어가며 골진 곳과 튀어나온 곳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사포질은 손을 많이 대면 댈수록 작품이 좋아진다고 한다.


마지막 순서인 기름칠 전에 각자 도마에 원하는 이니셜을 레이저로 새겼다. 불도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레이저기는 서체와 크기, 깊이 등을 컴퓨터로 제어하기 때문에 매우 편리했다.  다음 과정으로 도마에 식용 기름칠을 할 때 올리브유를 사용할 것을 권했다. 들기름이나 콩기름 등은 산패하기 때문에 역겨운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 말린 후 한번 더 기름칠을 한 후 사용하면 된다. 이런 순서로 ‘나만의 도마 만들기’ 체험이 끝났다.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도마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과 완성품을 들고 기념 촬영.


기다리던 식사시간이 됐다. 기름칠 한 도마가 마를 시간을 이용해 공방 인근에 김 작가의 작품 전시장 겸 그의 부인 공방을 들러 작품을 감상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의 부인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인 김은영 씨의 수제자면서 전수자이기도 하다. 김 장인은 ‘성북동 비둘기’를 지은 시인 김광균의 딸이자 간송미술관을 지은 간송 전형필의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식당은 공방 인근에 작가가 자주 가는 열무보리밥 전문점 <예닮>이다. 간판은 ‘예닮맛고을’이라고 걸어놨지만 영수증전표에는 <예닮>으로 돼 있다. 간판에 ‘열무’란 글자를 넣은 것을 보면 열무김치에 갖은 나물을 넣어 보리밥과 함께 비벼 먹는 식당으로 특화된 곳이란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도시문헌학적 시각에서 볼 때 간판은 강력한 상업적 표현수단이다. 매출과 직결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무엇을 다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열무’는 이 식당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필자는 네 번 정도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반찬이 조금씩 달라지는 묘미가 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나물은 따로 나오는 데, 무, 당근, 콩나물, 고사리, 시래기, 시금치 등 여섯 가지나 된다, 거기에다가 국물 때문에 따로 밑반찬으로 나오는 열무, 무생채, 마침 정월대보름이라고 보름나물 몇 가지가 더 나오니 식단이 완전히 ‘풀밭’ 건강식이다. 음식의 궁합을 위해 된장찌개가 나오고 식단 밸런스를 위해 돼지불고기를 볶아주는 ‘지혜로운’ 메뉴구성이다.


슬로 푸드 건강식 열무보리밥 정식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예닮’은 열무보리밥정식이 주 메뉴다. 동태탕과 전 종류도 맛이 좋다. 무엇보다 밑반찬이 넉넉하고 손맛이 느껴진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내외분이 하는 식당이다. 손맛 깊은 밑반찬에서 연식이 느껴진다. 한 번은 주문을 하는데 보리밥, 동태탕, 감자전, 막걸리를 줄줄이 외치니 한꺼번에 다 못하신다고 하면서 함박 웃으신다.


자연스레 이 식당 음식은 슬로 푸드가 된다. 그렇다고 결코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게 아니다. 적시에 차례대로 나온다. 다만 테이블이 적을 뿐이다. 그만큼 많이 내주신다. 주방은 여사장님, 홀은 남사장님이 담당한다. 메인인 보리밥정식 손님이 많다. 그동안 같이 갔던 식객들의 반응이 모두 좋다. 보리밥과 나물, 궁합이 좋은 음식이다. 옛날엔 빈자(貧者)의 음식이었지만 이젠 웰빙 건강식으로 신분상승한(?) 식단 중 하나다.


둘이 먹기 적당한 동태탕 작은 냄비도 맛이 깊다. 점심에는 4인 테이블에 보리밥 정식 2인분, 동태탕 중자, 감자전으로 상을 펼치면 배를 두드리고 나간다. 저녁에는 보리밥을 하나로 줄이고 대신 땡초고추전을 추가해서 막걸리를 곁들이면 술상으로 최적이다.          


한번은 보리밥집을 지나 큰 도로를 건너 양천구로 넘어가 식당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분구를 한 곳이라 등촌로를 사이에 두고 강서구, 양천구로 갈린다. 길 하나를 두고 등촌2동파출소와 목2동지구대가 마주보고 있다. 행정구역이 다른 탓이다.


제주돼지 특유의 육향과 육즙 만기할 수 있는 곳


목동깨비시장 인근에 있는 풍성갈비는 30년 손맛을 자랑하는 곳이다. 좋은 숯에 좋은 원육의 제주 돼지가 만족감을 준다. 특히 밑반찬에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길 건너 양천구 쪽엔 목3동시장과 목동깨비시장이 붙어서 형성돼 있다. 어디든 시장 주변은 먹거리가 발달돼 있다. 이 지역은 특히 돼지고기집이 많다. 맛집을 찾아 같이 걷던 김 작가가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고 이들의 회식문화 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석이다. 간판을 보니 수요미식회에 나왔다는 돼지고기집이 있다. 일부러 피해서 옆집 <풍성갈비> 문을 밀고 들어갔다.


제주 흑돼지를 취급하는 집인데 이 지역서 30년째 영업하는 터줏대감이다. 지금은 2대째 아들이 나와서 점포를 관리하고 있다. 6년차 숙련된 홀 담당 종업원이 차분하게 고기를 구우면서 응대해 줬다. 그릴링이 수준급이다. 좋은 숯에 반쯤 막힌 불판으로 구운 오겹살에는 적당한 숯 향이 스며들었다. 향과 함께 육즙 좋은 식감은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풍성식당> 주방은 여전히 1대 여사장님이 지키고 있다. 맛의 비결이자 단골이 이어지는 이유다.            


오겹살에 이어 돼지갈비를 맛봤다. 독특한 풍미를 가졌다. 80년대 캐러멜을 이용해 단맛을 내던 시대에나 봄직한 시커먼 색의 양념을 두르고 등장하더니 맛 또한 익숙하지 않다. 식당은 손님 입맛을 따라가면 영업하기 힘들다. 초지일관 자신의 레시피로 단골을 만들어야 한다. <풍성갈비>의 돼지갈비를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아무튼 김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풍성하게 저녁을 먹었다. 이번 음식 칼럼은 식당 주인을 따로 취재하지 않고 나름의 느낌을 적었다.


도마를 만들다 보니 나무를 만지는 목공예에 푹 빠지게 된다. 도마는 식재료가 요리로 접어드는 출발점이라고 생각도 들었다. 도마 위에서 변화되는 식재료의 세계, 어쩌면 세상 모든 식재료의 ‘첫 무대’가 아닐까 싶다. 도마를 만들면서 음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서울의 서쪽 강서, 이어진 산마루에 삶의 거처를 만든 이들이 모여 사는 등촌, 한갓진 골목 안에 보석 같은 공방과 음식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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