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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얼큰한 탕국은

전농동로터리 작은 먹자골목 ‘해물알탕전문’...알탕‧동태탕 반반 인기 

입동을 지나 맹동(孟冬)에 접어들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의 시작을 맞았다. 기후변화 문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촌이 직면한 가장 큰 숙제다. 지구 환경을 원래대로 돌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비가역적이고, 시간과 비용을 따지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지구가 초기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류의 멸망과 문명의 소멸이 전제다. 결국 인류는 더 이상 초기 지구의 환경과 생태, 기후를 접해보지 못한 채 기후변화 문제를 안고 험난한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변화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당대가 아닌 후대를 위해서 말이다.           


‘끝나도 끝나지 않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이 당선자 신분이 됐다. 조 바이든이 선거 유세와 당선 연설을 듣자면 빠지지 않는 화두가 하나 있다. 바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그는 기후변화 문제를 대통령에 취임하면 정책의 가장 우선순위에 들 것을 여러 차례 천명했다.           


교토의정서와 파리기후협정 등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미국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바이든의 공약이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풀어가는 역사적 발걸음이 될지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바이든 역시 ‘아메리카 퍼스트’란 자국 이익을 먼저 고려할 것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기후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 변화는 농수축산물의 생장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농수축산물이 온도와 강수량, 습도 등에 민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땅이지만 50년 전에 먹던 음식이 지금과 다른 이유다. 몇 가지 농수축산물은 아예 자취를 감추거나 서식지가 달라졌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들여온 외국산이 식탁에 오르고 있다.           

‘신토불이’를 앞세운 애국 마케팅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됐고 이제는 노르웨이산 고등어 칠레산 홍어, 베트남산 새우가 자연스러움을 넘어 친숙한 식재료가 됐다. 이런 것들은 달리 말하면 ‘불편한 익숙함’이다. 모든 것이 기후변화 때문에 초래된 자업자득인 셈이다.           


기후변화로 사라진 국민 생선 ‘명태’     

     

1980년대 동해 가진항 명태잡이 배와 대진항 덕장 풍경<사진 위>. 용대리 황태마을 입구와 최근 황태 건조 장면 

11월이 되면 우리 연근해 바다에는 어떤 어족자원이 어장을 형성하는지 알아보자. 초겨울로 접어드는 11월이면 연근해에는 수온하강과 함께 북상했던 고등어 어군이 남하한다. 이들은 서해 중남부해역부터 제주도 주변해역에 걸쳐 어장을 형성한다. 연중 내유량이 가장 많은 시기다.           


전갱이는 동해로부터 남하해 남해 동부해역과 동해 남부해역에 진을 치고 몰려다닌다. 과메기 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꽁치도 남하해 동해 중부해역에서 어장을 형성한다. 내년 1월에 쯤에는 이번에 잡은 꽁치와 전갱이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              


성장을 위해 북상했던 살오징어 어군은 수온이 내려가면서 남하해 동해 중‧남부해역에 어장을 만든다. 오징어 회도 겨울이 제철인 셈이다. 멸치는 수온 하강과 더불어 연근해를 떠나 외해로 나간다. 남해 동부해역부터 동해 남부해역에 걸쳐서 어장을 만드는데, 특히 울산부터 기장까지 주변해역에서 밀집어장이 형성된다.           


명태는 말쥐치, 갑오징어 등과 함께 자원량이 회복되지 않아 여전히 적은 양만 잡힌다. 이에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은 명태자원 회복을 위해 2014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해 2016년에 세계 처음으로 양식에 성공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겨울 동해안을 풍요롭게 했던 명태는 과도한 어획과 기후변화로 인해 주요 서식지인 동해를 떠나 북상하면서 거의 잡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명태는 이러한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 국민들을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게 했던 식재료 중 하나다.           


동해안에 명태가 사라졌기 때문에 ‘생태탕’이란 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요즘도 식탁에서 논쟁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애먼 생태탕 전문 식당만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지경이다. 물론 동태탕보다 생태탕이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또 동태는 원양에서 잡아 얼려서 들어오거나 수입하는 것이지만 생태는 연근해, 즉 신토불이라는 인식 때문에 선호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경 없는 바다 밑을 쉼 없이 오가는 수많은 어족자원을 쉽게 ‘국산’이라고 정할 수 있을까. 우리 국적 어선이 잡으면 국산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가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은 대부분 러시아산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해 1월부터 명태 포획금지 기간이 1년 연중내내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연근해 명태 포획금지…대부분 러시아산 ‘동태’      

       

국산 생태는 없다. 지난해 1월부터 포획금지령이 크기에 관계없이 내려 잡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식탁에 오른 것은 대부분 러시아산 동태다. 사진은 대관령 횡계리 덕장.

이번 칼럼은 생태, 명태, 동태 등 가공성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명태와 관련해서 써 본다. 국민 생선이라 불리던 명태는 이름이 참 많다. 먼저 명태의 유래는 조선시대 함경도 명천읍을 방문한 관찰사가 이름이 없던 물고기를 지명의 명(明)자와 어부 태(太) 씨의 성을 따 명태라고 지어줬다는 설이 있다.           


명태는 크기에 따라 대태, 중태, 노가리, 아기태로 불린다. 잡는 방법에 따라서는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는 낚시태, 잡은 장소에 따라 강원도 간성, 고성 앞바다는 강태, 강태 이외 우리 연근해서 잡은 지방태(진태), 먼바다인 원양태로 나뉜다.          


잡는 시기로 따지면 봄 춘태, 음력 사월이면 사태, 오월엔 오태, 가을은 추태, 겨울은 유명한 동태, 끝물에 잡으면 막태 등으로 부른다. 가공 방법으로 나누면 갓 잡아 올렸을 땐 생태(선태, 생명태라고도 함)인데 유통을 위해 얼음을 채운다. 이 경우 꽝꽝 얼지 않기 때문에 생태란 이름을 유지한다.           


그러나 영하 25도씨 이하로 급속히 냉동시키면 동태가 된다. 겨울에 잡은 것과 얼려 유통하는 것 모두 동태란 이름을 부친다. 코다리는 코에 관목을 꿰어 반쯤 꾸들꾸들하게 말린 것을 말하며 짝태는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소금에 절여 넓적하게 말린 것을 의미한다. 꿰짝에 담아 유통한다고 짝태란 이름이 붙었다.           


소금에 살짝 절이면 술안주로 좋은 염태, 어린 명태를 잡아 말리면 노가리, 머리를 떼어내고 말리면 무두태, 지금은 없지만 내장까지 말린 것을 통태라고 했다. 꺽태는 버썩 말라비틀어진 것을 말하고 북어는 정상적인 건조과정을 거쳐 말린 것이다. 건태 또는 건명태라고도 한다. 황태는 더덕북어라고도 하는 데, 겨우내 덕장에서 수차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속살이 노란 것을 칭한다.           


황태를 만들려다가 날씨가 따뜻해서 껍질이 검게 변한 것을 먹태라고 한다. 반대로 날씨가 너무 추우면 속살이 하얗게 바래는 데 이를 백태, 수분이 한꺼번에 빠져 단단한 것을 깡태라고 부른다. 건조가 잘못돼 속이 붉고 딱딱하면 골태, 상처가 있거나 부서진 것은 파태라고 한다.          


이밖에도 수도 없이 많은 명태의 다른 이름은 약 1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명태 이름이 1000여 개에 달한다고 하는 모 신문기사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지만 100의 오타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찬바람이 불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고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생태탕, 동태탕이다.           


전농동로터리 작은 먹자골목 ‘해물알탕전문’      

         

동대문구 전농2동인 전농동로터리에는 작은 먹자골목이 있다.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알탕 전문집인 ‘해물알탕전문’. 동태와 섞은 알탕을 주문하면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

과거 동해에서 많이 잡힐 때는 흔하고 쌌기 때문에 서민들의 허기와 고단함을 덜어주는데 큰 몫을 한 생선이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과 함께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으면 노동에 지친 하루가 봄눈 녹듯 사라졌을 법하다. 풍요로운 하얀 속살은 배고픔을 달래기 충분했고 고소한 고니와 이리는 갖은 영양분으로 국민을 살찌웠다.           

전농로터리 ‘강박사쌈밥’ 식당을 지나 접어들면 내공이 있어 보이는 식당 몇 개가 반긴다. 애초에는 쌈 채소가 풍성하기로 유명한 ‘강박사쌈밥’을 가기로 했지만 동태탕, 알탕 맛집이 있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고기와 쌈보다 생선, 탕에 대한 유혹이 컸기 때문이다.           


갈비, 생갈비 전문점인 ‘화성옥’과 아귀찜, 매운탕을 하는 ‘별미식당’을 지나면 정면으로 ‘전농명품곱창싱’이란 간판이 나오는 데, 본 이름은 ‘옛날할매곱창싱’이다. 돼지곱창전골이 전문인데 독특하게 돼지 특수부위(?)인 싱(생식기)을 판다. 곱창집 바로 앞집이 이번에 소개할 ‘해물알탕전문’이다. 식당이름이 직관적이다.           


메인 메뉴는 상호와 같은 해물알탕이다. 서브 메뉴는 해물동태탕과 해물알탕‧동태탕을 반반씩 섞은 것이다. 단출한 메뉴 구성이다. 알과 이리, 동태를 추가할 수 있다. 이 식당 메뉴판에는 이리가 없다. 대신 ‘고니추가’라고 쓰여있는 데 일종의 오류다. 고니는 암컷의 알이다. 명태한테서는 알(명란)이 고니인 셈이다. 뇌처럼 생긴 내장이 이리다. 수컷 어류의 정소 부위다. 따라서 ‘알추가’, ‘이리추가’라고 써 붙이는 게 맞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혼동해서 썼기 때문에 자연스레 통용된다.              


반찬이 먼저 깔리고 큼지막한 냄비에 넘치도록 탕이 담겨 나왔다. 알과 동태 모두 맛보기 위해 반반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철철 끓어 넘치는 탕이 넘치는 인심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업력이 20여 년 됐다는 연세 지긋한 김순이 사장의 인심이 남다르다. 주방과 홀 서빙으로 고용한 아주머니 종업원들과의 협업도 좋다. 종업원이 실수를 해도 괜찮다며 다독인다.           


이날은 오이무침, 콩나물무침, 무말랭이무침 등 무침3총사와 김치, 팽이버섯볶음, 야채전 등 알탕집 밑반찬 치고는 제법 많이 제공됐고 손맛도 상당하다. 사실 ‘찐손맛’은 메인요리인 탕에서 제대로 맛볼 수 있는데, 조미료 대신 갖은 육수 재료에서 뽑아낸 맛이다.           


메뉴에 ‘해물’을 붙인 이유는 내용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제법 큰 절단꽃게, 오만둥이, 바지락 등이 듬뿍 들어갔기 때문이다. 팽이버섯, 대파, 미나리, 청고추, 홍고추 등 채소도 다양하게 들어가 시원한 맛을 더했다. 흔히들 간장게장 같은 메뉴를 만나면 ‘밥도둑’이라고 하듯 시원칼칼한 알탕‧동태탕은 ‘소주도둑’이다. 오랜만에 거나하게 취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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