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의 미식포럼] 쨍한 겨울 굴 천국 '천북굴단지'

홍성방조제 보령 쪽 끝단 '수문개수산'

by 유성호의 미식포럼

방조제 건설로 변화된 자연과 인간의 공생

안면곶에서 허리 잘려 섬이 된 안면도 역사

겨울철 당일치기 ‘미식+역사답사’ 만점 코스

보령수협어촌계장협의회 회장네 ‘수문개수산’


홍성방조제 건설로 인해 생긴 ‘천북굴단지’는 원래 자연산 굴과 투석식 양식 굴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굴 생산이 더 이상 어렵게 되자 어민들이 모여 식당 촌을 형성하면서 이름을 천북굴단지로 달았다. 이제는 천북굴단지 하면 겨울철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전국 최고 명소가 됐다.

홍성방조제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와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를 잇는 총길이 1,856m에 달하는 수리시설이다. 1991년에 착공해 2000년대 초반에 완공된 대규모 간척 사업 일환으로 건설했다. 육지와 안면도 사이 천수만 바닷물이 내륙 깊숙한 곳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해 담수호를 만들어 농업용수 확보가 목적이었다.

방조제 위 2차선 도로가 개설되면서 과거 배를 타거나 내륙으로 40km 이상 우회해야 했던 보령 천북과 홍성 서부 간 거리를 획기적으로 단축시켰고 두 지자체 간의 물리적 결합을 가져왔다.

홍성방조제 건설로 일대 생활환경 대변화

홍성방조제 2차선 도로 위로 찬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천북굴단지를 알리는 깃발이 펄럭인다. 멀리 보이는 좌측이 수문개 지역이고 정면이 천북굴단지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존재하듯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홍성방조제 토목공사는 일대 지도는 물론 어민들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 생태계 변화를 초래했고 자연환경과 주민생활 변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조류 흐름이 막히면서 갯벌의 퇴적 양상이 변화했고 지역 어민들의 생업인 굴 양식, 어로활동 등 생활기반 근간을 흔들었다.

천북면 장은리 일대는 예로부터 천혜의 굴 산지로 유명했다. 천북굴단지 인근 ‘수문개’란 지명을 가진 곳은 이 지역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수문개는 문자 그대로 ‘물이 드나드는 곳에 있는 마을’을 뜻이다. 이는 과거 간척 이전 바닷물이 드나들던 수로 입구이자 갯벌이 발달했던 지역이란 의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보령시 천북면 장은3리에 해당하며 지금의 천북굴단지 일대다.


2001년 이전 홍성방조제로 물길이 완전히 막히기 전까지 주민들은 해안가에 돌을 던져 굴 포자가 자연적으로 부착하게 하는 투석식으로 굴을 채취했다. 바다에 떠다니던 굴 유생이 돌 표면에 붙어 성장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 한 자연 친화적 양식법이다. 조수간만 차가 큰 서해안 보령·서산·태안·서천·부안 등에서 발달했다.


조수 간만 차는 알은 작지만 살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진한 향을 품게 했다. 주민들은 썰물 때 갯벌에 나가 굴을 캐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방조제가 만들어지고 조류 흐름이 변하자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연승·수하식 양식법을 도입했다. 이는 줄에 굴 껍데기를 매달아 바다 수직으로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통영·거제·고성·여수 등에서 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굴 양식 환경 변화는 ‘천북굴단지’라는 새로운 외식문화를 탄생시켰다. 생업 터전이 좁아진 어민들은 비닐하우스를 짓고 자신들이 구워 먹던 굴 구이를 선보였다. 워낙 굴을 사랑하는 민족인 데다가 겨울 한철만 안심하고 생굴을 먹을 수 있단 계절요인 때문에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지금은 11월에 천북굴단지축제로 굴 시즌의 서막을 알리면 전국에서 식객이 찾아들어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굴 시즌은 아쉽게도 2월까지라 서둘러야 맛볼 수 있다.


굴포·안면운하 역사 간직한 천수만

천북굴단지 앞바다인 천수만과 멀리 길게 누운 안면도. 안면도는 운하건설로 곶에서 섬이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천북굴단지 앞바다는 천수만이란 이름의 길게 뻗은 만이다. 만을 형성하는 길고 거대한 안면도는 얕은 바다 서해의 변덕스럽고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천혜의 방파제다. 안면도의 한자는 편안할 안(安)과 잠잘 면(眠)이다. 이는 ‘섬에 들어오면 파도가 잔잔해 배를 대기 좋고 사람도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천수만은 1980년대 초 현대건설이 주도한 서산A·B지구 간척 사업과 관련 있다. 또 조선시대 대운하 프로젝트인 굴포운하와 안면운하 역사의 흔적과 현실이 있는 곳이다. 이는 조선 시대 세곡(세금으로 걷은 곡식) 운송의 난제를 풀기 위한 국가 토목 프로젝트였다.

조선시대 삼남 지방(충청·전라·경상)의 세곡은 배를 통해 한양으로 실어 날랐다. 태안반도 서쪽 끝 ‘안흥량(安興梁)’은 물살이 거세고 암초가 많았다. 이로 인해 세곡선 난파로 인명 사고는 물론 세곡이 모두 수장되는 죽음의 항로였다. 태종 때부터 세조 때까지 60년 동안 침몰한 선박이 200척, 인명 피해가 1,200명, 쌀 손실이 1만5,800석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조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태안반도의 좁은 목을 뚫는 운하 건설을 시도했다.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7km 구간인 굴포운하는 충남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사이를 뚫는 시도였다. 첫 시도는 고려 인종 때였고 조선 태종 때 본격적으로 굴착됐다. 전체 구간 중 4km를 뚫었으나 나머지 3km 구간에서 단단한 화강암 암반층을 만나 실패했다. 맨손과도 다름없는 정과 망치뿐인 당시 기술력으로 바닷속 거대 화강암을 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굴포운하 실패 후 조선 조정은 대안으로 태안반도 남쪽 ‘안면곶’을 절단하는 계획을 세웠다. 원래 안면도는 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결된 곶이었다. 현재의 태안군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를 팠다. 이 시도는 성공했고 안면곶은 육지에서 분리돼 안면도가 됐다. 이후 세곡선들은 안흥량을 피해 잔잔한 천수만 내해를 통해 안전하게 북상하면서 국가 재정에 기여했다. 태안군에서는 이를 두고 판목(나무널빤지)을 이용한 세계 최초 운하라고 알리고 있다.


새해 첫 답사를 겸한 미식포럼 성료

천북굴단지 굴요리 전문점 수문개수산에서 열린 올 첫 미식포럼.

미식포럼은 이 같은 역사성을 품고 있는 천북굴단지에서 올해 첫 단체 모임을 가졌다. 이날 코스는 굴 코스요리로 미식포럼을 연 홍성방조제 준공탑 맞은편 주차장에서 홍성방조제, 수문개, 천북 역사를 들은 후 남당노을전망대서 천수만 역사, 홍성스카이타워 둘레길 걷기, 궁리항에서 조선판 운하 역사, 김좌진장군 생가지, 한용운선생 생가지, 결성농요농사박물관, 결성향교, 결성동현을 거쳐 5일장이 열린 광천전통시장을 들르는 일정이었다.

답사는 이 지역이 처갓집인 이필용 선생이 코스를 짜고 해설까지 맡아 줬다. 이 선생은 이번 모임 모체인 역사인문공동체 ‘문화지평’에서 오랫동안 역사문화 해설로 봉사를 했던 역량 있는 해설가다. 미식포럼을 가진 천북굴단지 굴 요리 으뜸으로 소문난 ‘수문개수산’ 역시 이 선생이 ‘원픽’ 한 곳이다. 이곳은 보령수협어촌계장협의회 김관태 회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수문개수산은 지역명을 잘 살린 식당상호다. 이 지역 일대가 과거 방조제 건설 전에 바닷물이 들고나던 수문개였다는 사실을 식당이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역사성을 가진 식당상호는 이를 지은 주인의 높은 역사인식을 생각하게 한다. 식당 위치도 최적화돼 있다. 제1주차장과 공중화장실 등 각종 부대시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탁 트인 바다 뷰 시선 끝에는 곶에서 섬으로 정체성이 변한 안면도가 처연하게 누워 있다.

언 몸 녹이는 따뜻하고 향긋한 굴 잔치

메인인 굴찜이 나오기 전 제공되는 생굴(서비스), 굴전, 굴무침만으로 이미 함포고복이 된다. 마무리는 굴칼국수와 굴솥밥. 굴솥밥 맛은 압권이다.

천북굴단지는 지난 24일 토요일을 이용해 다녀왔다. 하필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주간이었다. 주말이면 주차장이 미어터진다는 소문에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더 일찍 도착한 이 선생이 일행을 반겼고 워낙 많은 인원이라 오는 대로 음식이 제공됐다.


이날 미식포럼 메뉴는 굴 요리를 다양한 코스로 경험할 수 있는 세트메뉴 A코스와 B코스를 섞었다. 두 코스는 코스 마지막 식사인 굴칼국수와 굴밥의 차이에 있다. 굴밥이 조금 비싸다. 4인이 갈 경우 반반 섞어서 시키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자리에 앉자 웰컴 서비스로 제공된 생굴이 레몬과 함께 입 안을 굴 향으로 가득 채웠고 굴전, 굴무침에 이어 메인인 굴찜이 커다란 솥 냄비에 담겨 나왔다. 압도적 크기의 양은솥냄비를 가득 채운 굴과 가리비, 조개는 푸짐한 양으로, 감칠맛 나는 맛으로 식객을 즐겁게 했다. 천북에서 나는 굴만으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여수 쪽에서 생산되는 굴을 공수한다. 일부 업체는 굴구이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찜으로 제공한다.


웅숭깊은 손맛 자꾸 생각나는 밑반찬

다양한 밑반찬은 모두 직접 만들어 제공한다. 특히 김치가 은근히 깊은 맛을 낸다.

밑반찬으로 꼬시래기, 톳나물, 무생채, 갓김치, 배추김치, 동치미, 양념게장, 궁채나물 등이 제공된다. 모든 음식을 직접 주방에서 만든다. 특히 김치는 수준급으로 웅숭깊은 손맛을 자랑한다. 굴칼국수를 여럿이 나눠먹을 무렵 굴솥밥이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뚜껑을 여니 밥과 굴이 어우러진 고소한 향이 김과 함께 모락모락 올라온다. 굴은 촘촘하게 덮여 있고 갖은 채소가 함께 푹 익었다.

밥을 퍼내서 달래를 잘라 넣은 참기름간장양념과 함께 비비고 솥밥 누룽지엔 뜨거운 물을 부어 놓는다. 개인적으로 수문개수산 요리의 압권은 굴솥밥이다. 기가 막힐 정도로 굴밥과 양념장의 어우러짐이 좋다. 32명이 참석한 신년 첫 미식포럼과 보령, 홍성지역 답사는 결성농요사박물관에서 마쳤다. 일부는 광천오일장을 들러 광천김을 사들고 집으로 갔다.


천북굴단지는 겨울철 미식과 역사답사를 곁들일 수 있는 관광자원이다. 축제평가위원인 필자 시각으로 11월 중 단 이틀만 열리는 천북굴축제가 매우 아쉽다. 축제 기간을 좀 더 늘리거나 다른 이벤트와 협업해서 자주 하면 모객과 이를 통한 홍보에 더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아무튼 잘 먹고 잘 보고 온 하루였다. 알찬 당일치기 코스로 모두 대만족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