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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의 변신은 무죄

성북동 ‘하단’의 메밀냉칼국수‧문래동 ‘영일분식’의 칼비빔국수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밀가루 반죽을 넓게 밀어서 몇 겹을 겹친 후 부엌칼로 썰어 면을 뽑아서 이름 붙여진 칼국수. 우리 민족의 주식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전통음식이다. 반죽의 두께와 칼로 썰 때 간격으로 칼국수의 종류가 결정된다. 해물 육수 베이스의 남도식에서는 면이 두꺼운 게 일반적이고 사골이나 닭고기 육수를 쓰는 경기와 경상도식에서는 면 두께가 비교적 얇고 가늘다.      


경상도 특히 안동지역에서는 콩가루를 조금 섞는 게 일반적이다. 필자도 본향이 안동 지역이라 어려서부터 콩가루가 들어간 칼국수를 많이 먹고 자랐다. 어머니는 한낮이 되기 전 밀가루를 치대기 시작해서 동그란 반죽을 만들어 놓고 잠시 기다렸다가 밀기 시작했다.      


뜨거운 칼국수의 추억…새로운 칼국수의 등장


필자의 뇌리에는 칼국수는 뜨거운 음식이었다. 그러나 메밀냉칼국수와 칼비빔국수를 접하고 그런 생각을 바꿔야 했다.

부엌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어린아이 키만 한 홍두깨는 그때서야 용도가 빛났다. 반죽을 손으로 꾹꾹 눌러 펼치고 그 위에 밀가루를 흩뿌린 후 본격적으로 홍두깨로 밀면서 반죽을 펼쳐나가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글루텐으로 쫀쫀하게 엮여있던 반죽이 물리적 힘에 의해 양회(시멘트)봉투처럼 둥글넓적하게 펴진다. 어머니 양손은 홍두깨에 반죽을 둘둘 말면서 연신 좌우로 움직여 반죽을 고르게 펴 나갔다.      


그렇게 둘둘 말린 반죽을 펼치면 커다란 상이 넘치도록 얇고 널따란 칼국수 반죽이 완성된다. 이를 다시 칼질하기 좋은 길이로 몇 겹을 접고 본격적으로 칼국수를 썰어낸다. 두툼한 나무도마와 커다란 무쇠 식칼이 만나면서 내는 칼질 소리는 시장기를 극대화시켰다. 썰어낸 칼국수는 엉겨 붙지 말라고 밀가루를 쳐서 넓은 쟁반 같은 데 펼쳐놨다. 이제 육수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육수를 끓이는 동안 어머니는 양념장을 만들었다. 간장과 대파, 고춧가루, 참개 등을 섞어 기호에 따라 국수에 넣어 먹을 것인데, 집집마다 제법이 모두 틀려 정답이 없다. 육수도 제각각인데 가장 보편적인 게 구하기 쉬운 멸치육수였다. 어머니는 주로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서 육수를 우려냈고 호박 정도만 채를 썰어 넣고 국수를 삶아 냈다. 그럼에도 맛은 웅숭깊고 감칠맛이 돌았다. 어느 한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뜨거운 면을 후후 불어가면서 후루룩 말아 올렸던 칼국수에 대한 기억이다.      


새콤 담백한 살얼음 육수에 담긴 쫄깃한 면발 


하단의 메밀냉칼국수는 흡사 평양 물냉면 같지만 칼국수의 원형이 남아 있어 간신히 냉면을 면했다. 평양음식답게 만두는 심심하지만 속과 피, 간장의 맛 밸런스가 좋다.

그렇게 칼국수는 필자에겐 뜨거운 음식이란 인식이 박혀있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날려버린 신박한 칼국수에 식도락들이 환호하고 있다. 성북구 성북동 한성대입구역에서 선잠단지로 올라가는 성북로 이면도로에 위치한 평양만두전문점 ‘下端’(하단). 주력은 만두를 주재료로 하는 만둣국, 만두전골, 찐만두다. 만두와 상관없는 녹두지짐과 메밀냉칼국수도 판다.      


대로변도 아닌 이면도로에 있는 하단이 유명세를 탄 것은 만두가 아니라 메밀냉칼국수 때문이다. 칼국수 하면 뜨끈한 멸치육수나 사골육수가 떠오르는데 냉칼국수라니! 굳어 있던 사고에 허를 찔린 기분이다. 하단의 메밀냉칼국수는 메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메밀을 약간 섞였다. 사장님은 “메밀을 30% 정도 섞은 면”이라고 했다.      


메밀이 적게 섞였고 면 모양이 칼국수 형태라 냉면으로 분류를 모면할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영락없는 물냉면 레시피에다 맛도 그렇다. 육수는 질 좋은 사태고기에서 빼낸 고기육수와 시큼한 동치미 국물을 섞었다고는 하나 필자 입맛에는 한 여름에 잘해 먹는 오이미역냉채 육수 맛과 흡사했다. 달리 말해 고기육수의 진함을 숨기고 채수의 새콤함을 앞세웠다고 할 수 있다.     


육수를 살짝 얼린 ‘살얼음육수’로 만들어 뽀얀 밀가루에 메밀 색이 살짝 묻은 듯한 면발을 담아 동치미 무와 배추, 청양고추, 파, 깨소금 등 고명으로 얹어 나온 메밀냉칼국수는 ‘새색시’처럼 참하고 단정하다. 스테인리스 면기에 담겨 나오지만 고급스럽게 보이는 매력을 지녔다. 이 집은 기물이 대부분 자기지만 면기만큼은 스테인리스다. 만두와 양념간장을 담아 내오는 자기 면기는 식당의 품격이다. 개인적으로는 메밀냉칼국수 면기도 흰 자기로 바꾸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만두전골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만두가 특화된 식당이다. 만두전골 고명으로 올라간 손으로 찢은 사태살의 상태가 매우 좋아 보였다. 만두전골은 다른 날로 미루고 대신 찐만두를 주문했다. 한입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의 앙증맞은 손만두 7개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필자는 지난주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하단을 수 없이 다닌 지인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하단 만두 속의 특징을 풍성한 두부라고 했다. 만두를 반쯤 베어 물고 안을 들여다보니 말 그대로 두부가 꽤나 많이 들어가 있다.      


고기 씹히는 맛도 찾을 수 없고 맛이 심심하니 뭔가 부족한 듯 느끼는 순간 만두피에서 쫄깃한 뒷맛이 느껴지면서 맛의 ‘밸런스’가 맞아떨어졌다. 물론 만두를 찍어 먹는 맛 간장도 한몫했다. 메밀냉칼국수와 찐만두 조합이 좋았던 기억이다. 또 냉칼국수란 새로운 장르를 접한 신박한 경험이었다.       


양푼에서 손으로 투박하게 비벼낸 진미

    

푹 삶아낸 면을 커다란 양푼의 담고 상추를 투박하게 뜯어 넣은 후 양념장을 넣어 맨손으로 스윽스윽 비벼주는 칼비빔냉면은 매콤하니 맛이 일품이다.

또 하나의 칼국수 변신을 접한 것은 문래동이다. 무쇠바람이 부는 문래동 철재단지 골목에 있는 ‘영일분식’에서다. 얼마 전 칼럼에서 일본 라멘집 ‘로라멘’을 소개하면서 언급했던 조선영단주택 단지 근처다. 영단주택은 1940년대 초반 조성된 집합주거단지다. 문래동을 비롯해 상도동, 대방동 등에 영단주택이 건립됐지만 모두 사라지고 이곳만 시간이 멈춰진 채 남아 있다.      


일제 강점이 노동력의 도시 집중을 촉발했고 그들을 수용하기 위한 주택단지가 필요해서 형성된 주거촌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이후 이곳은 국가재건에 없어선 안된 산업단지로 발돋움했다. 고물상 밖에 없었던 이곳에 1955년 삼창철강을 시작으로 1968년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이 들어서면서 대표적 철재단지가 됐다.      


청계천 복개로 인해 밀려난 스테인리스 업체들도 문래동으로 옮겨 온 게 이 무렵이다. 1980년대까지 몸집을 불려 가던 이곳이 외환위기와 신소재에 밀려 지금은 차츰 없어지는 추세다. 그래서 문래창작예술촌 같은 공간예술을 하는 예술가와 외식업체 등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오래전 쇳가루에 시달린 칼칼한 목을 쓸어내리기 위해 듬뿍 담아 줬을 법한 칼국수의 추억을 담고 있는 곳. 영일분식에서는 그런 세월이 느껴진다. 지금도 솥단지가 철철 넘치도록 끓여대는 칼국수를 보노라면 가벼운 주머니로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옛 도시 노동자들의 삶이 겹친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칼비빔국수다. ‘칼비’(칼비빔국수의 줄임말) 역시 육수 베이스의 칼국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한방에 날려버린 통쾌한 메뉴다.      


푹 삶아낸 면을 커다란 양푼의 담고 상추를 투박하게 뜯어 넣은 후 양념장을 넣어 맨손으로 스윽스윽 비벼주는 칼비를 보고 있으면 입안이 침으로 ‘홍수’가 날 정도다. 새콤할 것 같지만 매콤함이 앞서고 면발이 딱딱할 것 같지만 부드럽게 씹힌다.      


양이 워낙 많아 만두를 시켜먹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국수는 달라면 원 없이 더 준다. 그 옛날 무쇠 노동자의 주린 배와 가벼운 주머니를 위로하며 달래줬을 법한 칼국수 한 그릇의 추억. 이제는 독특한 맛으로 식당을 맛집으로 견인하는 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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