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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Jun 07. 2017

꽃개 네트워크 34 반려견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

우리가 공원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


커피를 산 뒤 기흥레스피아 호수공원 반려견 놀이터로 갔다.



이날 꽃개는 컨디션이 좋은 편이었다.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개들은 저런 구조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딱 한 번 유도해본 적이 있는데, 꽃개는 반응하지 않았다.

굳이 저런 델 오르지 않아도 운동량은 차고 넘치는 녀석이라 나도 쌩깠다.

그런데 이날은 스스로 올라가 포즈를 취했다.



구멍에도 들어가려 하고.

뒤로 돌아가 보니 구멍 안에 자란 잡초를 맛보는 중이었다.

뒷다리는 안 들어가려고 힘을 주고 버티면서.



스스럼없이 터널을 통과하는 모습이 기이할 정도였다.


어디 가서 뽕이라도 맞고 온 거냐, 꽃개야.



새 친구 녹두도 만났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근 웰시코기의 근황을 꿰차고 있는 아내의 레이더망을 피한 뉴페이스였다.

꽃개한테 좋은 일이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꽃개는 성격이 더러워 다른 개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둥이는 성격이 좋아 처음 만난 녹두하고도 사이좋게 놀지만.

공원에 입장한 개들이 우리가 있는 자리로 올 때마다 긴장하는 이유다.



우리끼리는 꽃개를 ADHD라고 부른다.

주의력결핍까지는 모르겠지만 과다행동장애는 확실해 보인다.

이런 데 오면 흥분해서 뒷다리를 덜덜 떤다.

딩고 사장님은 마그네슘 부족 아니냐고 디스했지만

이날도 꽃개는 잠시 감금형에 처해졌는데, 마침 검정 프렌치불독이 다가왔다.

공원에 입장한 개들은 각 테이블을 돌며 냄새를 점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벤트에 나선 것.

꽃개는 아내 품에 안긴 채 "으으으" 하고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검정개와 프렌치불독을 유독 불편해한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우리는 검정 시바견이나 검정 프렌치불독, 검정 대형견이 다가오면 긴장한다.

간식을 주거나 프리스비를 해서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애쓴다.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어떻게 하나 한 번 지켜볼까?

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거리가 좁혀지면 벌써 꽃개의 등 갈기가 곤두선다.

우리가 반려견 놀이터에 오는 이유는 둥이 때문이다.



둥이하고는 잘 노니까.



둥이가 없어도 반려견 놀이터에 나올 때가 있다.

다른 개들과 불편하지 말라고 훈련시킬 목적으로.



반려견 놀이터랄지, 애견 공원이라고 해서 견주나 보호자나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개들의 사회화는 인간의 사회화와 다르기 때문에, 개 때문에 감정 상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줘야 할 부분이 많다.



똥은 바로바로 치워줘야 하고, 남의 집 테이블에 올려둔 가방을 (개가) 뒤지는 일이 없도록 감독해야 한다.

신경이 날카로운 개는 다른 개와 근접할 때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반려견 놀이터는 방목하는 데가 아니다.

동시에 여기에서는 평소에 하지 못한 개와의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예컨대 프리스비.

어떤 보호자들은 진지하게 프리스비에 임한다.

대회에 나갈 목적이거나, 보더콜리 같은 경우엔 프리스비를 곧잘 해내, 더 멋지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를 해온 보호자가 자기 개랑 프리스비를 할 때 꽃개가 끼어들어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보호자는 불편해했고, 어떤 보호자는 괜찮다고 받아주었다.

어떤 보호자는 자기 집 개는 잘 안 한다며 원반을 주기도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반려견 놀이터에서는 프리스비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ADHD인 우리 집 개가 당신이 던지는 원반이나 공에 미친 듯이 반응하잖아요. 꽃개가 당신이 던진 공을 물다 허리라도 나가면 책임질 건가요?

이날, 그런 사람을 만났다.

꽃개가 어떤 개를 보고 으르릉거려 주의를 돌릴 목적으로 프리스비를 했더니, 공원에서 공을 던지면 모든 개들이 달려들어 싸우게 되니 하지 말라는 거였다.

알고 봤더니 그 집 개도 꽃개처럼 공을 많이 밝히는 성격이었다.

나는 프리스비를 관뒀다.

꽃개가 그 집 개와 싸우는 건 나 역시 바라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레이하운드처럼 뛰어다닌 꽃개가 집에 들어가 뻗은 동안 우리는 모처럼 외식에 나섰다.

백화점 진입까지 4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사람들이 돈을 쓰기로 작정한 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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