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개는 예스다.
둥이네랑 만나기로 했다.
모처에서 10시 반에.
면도를 하고 찐빵을 먹고 양치를 한 뒤 바지를 두 벌 꺼냈다.
아디다스 트레이닝팬츠 위에 유니클로 보아 스웨트 팬츠를 껴 입었다.
양말도 두 켤레 껴 신었다.
방한화가 없는 관계로 여름에 신던 스니커즈를 신어야 했다.
단돈 2만 원에 장만한 (탑텐의) 기모 후드 집업과 고어텍스 구스다운으로 무장한 상체는 든든했다.
비니를 쓰고 혹시나 장갑도 챙겼지만 역시나 낄 일은 없었다.
카메라는 맨손으로 촬영한다.
꽃개는 안절부절못했다.
면도를 하고 로션을 바를 때 이미 안다.
차 타고 어디 간다는 걸.
둥이란 말도 안다.
'둥이 찾아' 하면 진짜로 있는 줄 알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봤는데 둥이가 도토리를 삼키면서 한 달 넘게 못 봤다.
눈도 오고 날도 추워 애견카페에서 볼까도 생각했지만 우리는 탁 트인 자유로움을 택했다.
설경을 배경으로 우다다 하는 모습을 찍는 게 오늘 과제였다.
카메라 가방을 챙기는데 문 앞을 맴도는 녀석이 낑낑거렸다.
왜 빨리 안 가냐고, 미쳐 돌아가시겠다고.
성질 급한 건 날 닮았다.
꽃개는 아무것도 안 입고 그냥 나간다.
괜찮을까?
배 털이 젖는 게 걸리긴 하지만 추운 게 문제가 된 적은 아직 없다.
이중모라 그런지 추위보다는 더위에 약한 것 같다.
다른 개들도 꽃개나 둥이 같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세상의 모든 개는 다 다르다고 봐야 한다.
견주가 다르고 사는 환경이 다르니까.
꽃개는 눈길을 좋아한다.
눈이 쌓인 길과 녹은 길이 나란히 있을 때 쌓인 길 쪽으로 가는 편이다.
강아지가 영하 35도에서 걸을 수 있다는 기사도 확인했다.
일본 연구진이 수의학 피부과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바닥 패드의 두꺼운 지방층 때문에 잘 얼지 않고, 동맥과 정맥이 그물망처럼 얽힌 특수한 열 순환 구조 때문에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영하 35도를 테스트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먼저 얼어 죽을 걸!
하지만 가끔은 꽃개도 차가운 게 싫어 폴짝폴짝 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길 말고 살얼음이 반쯤 녹아 질척대는 데서.
겨울철 산책에 나선 애견인은 제설제를 조심해야 한다.
눈을 빨리 녹일 목적으로 뿌리는 제설제의 주 성분은 염화칼슘인데 강아지 발바닥 패드에 자극적이어서 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눈 쌓인 데가 뛰어놀기 좋다.
둥이는 많이 아파 병원에 갔다.
원인은 도토리.
수술을 마친 둥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탓일까?
궁합이 잘 맞게 논 편은 아니었다.
개들의 성격은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둥이는 여전히 포토제닉했다.
사진 찍을 틈을 안 주는 꽃개.
*파고 꽃개.
고독한 추격자의 독백.
언젠가는 널 꼭...
작년 한 해 힘든 시기를 보낸 개들에게.
올해는 꽃길만 걷자.
*'파고(Fargo)'는 미네소타 지방의 눈 덮인 황야를 배경으로 한 미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