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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Sep 05. 2023

왜인채로 놔두고

적극적 수용

20230905.화/왕상2:1-12


>분위기

아무렇지 않게 묵상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거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요약

다윗은 죽기 전 솔로몬이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함과 함께, 잘못한 이들을 다윗 자신은 어찌하지 못했지만 솔로몬이 그것에 대해 심판하기를 그리고 은혜 갚을 곳엔 갚아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다윗은 죽었다.


> 묵상

다윗이 죽기 전 솔로몬에게 강조 했던 첫번째가 바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삶이 되는 것이었다. 죽음을 앞둔 그니 얼마나 더 하나님을 따름이 중요한 것을 알았을까? 

그의 말대로 그는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인 곧 ‘죽음’을 앞에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 있을 때도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죽음을 앞두고서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함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윗은 자기 삶에서 끝끝내 어쩌지 못한 요압을 솔로몬에게 맡긴다. 요압 뿐 아니라 시므이 또한 솔로몬에게 맡긴다. 

이런 것을 보면서 다윗이 그 긴 시간, 그들이 한 행동을 분별하고 있었구나. 그러나 어쩌지 못하고 있었구나를 느낄 수 있다. 

참아내던 다윗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잘못된 것에 대한 분별 뿐 아니라 다윗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 뿐 아닌 내가 사람에게 받은 은혜도 잊지 않아야 함을 느낀다. 


반면에 난 얼마나 많은 은혜들을 입고 잊고 살았는가? 부끄럽다. 


다윗과 나의 차이는 ‘때를 기다림’같다. 

다윗은 자신이 누가봐도 왕이나 마찬가지 인데도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다. 사울에게 지긋지긋할 만큼 쫓기면서도 그는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기다렸고, 그리고 그는 요압을 기다렸다. 

다윗이란 존재가 굉장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만(골리앗과 사건만 보더라도) 동시에 기다려야 할 때에는 굉장히 잘 기다리는 능동적 수동을 띄기도 한다. 그것은 내게 없는 점이다.


나는 적극적으로 무언가 때를 기다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나서게 되고 [내가]해결하려고 한다.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 나의 이성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들은 '왜? 대체 왜그러는건데?'가 붙는다.


다윗이라고 '왜?'가 안붙었을까?

잘못한게 없는데 사울에게 쫓기던 삶에도 왜가 붙었을테고, 압살롬을 보면서도 왜가 붙었을테고, 정치적으로 어쩌지 못하는 요압을 보면서도 왜가 붙었을 것이다. 

그러데 그는 분명 의문이 들었을 그 ‘왜?’를 잡고 늘어지지 않았었다.

왜는 왜인채로 놔두고 자신이 해야하는 것들을 했다

그것이 때로는 전투였고, 그것이 때로는 숨음이었고, 그것이 때론 기다림 이었던 거 같다.


나에게도 지금 “대체 왜?”가 있다. 그 중 가장 큰 '왜?' 이자 가장 이해 안되는 '왜?'가 바로

‘우리교회는 왜이리 선교사님의 영향력이 큰 것인가?’이다. 거기서 파생되는 엄청난 가지들이 내 안에 존재한다.

묵상이 렉시오디비나로 이루어지는 것, 일일이 하나하나 자매들을 향한 긍정과 부정의 워딩을 전체에게 하는 것, 선교사님을 따르는 어떤 무리의 절대성부터, 사역자가 사역을 하는 앞에서도 자기 의견을 내비치는 선교사님과 그것에 따른 침묵 같은 것들

나는 이 무수한 왜가 대체 왜그런지 모르겠다.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그름에 가까운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 다윗도 그러지 않았을까? 다윗도 그러 했으리라.. 사울이 자신을 해하고자 하는게 옳지 않았다 여겼고, 압살롬이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첩들과 동침하는 것도 그랬을거고, 요압의 정치적 포지션과 행동들 모두 옳지 않음에 가까웠을 거다.


그런데 다윗이 어쩌지 않고 기다리는 것들

지금 내게 필요한건 옳고 그름으로 따지고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기다림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삶

1.적극적으로 기다리는 것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받아들여 보는 거)

2.다시 자매모임에 나가게 된다면 좋건 싫건 일단 이들이 하고 있었던 거니 렉시오디비나 묵상에 참여하는 것


>기도

하나님,다윗이 죽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라 하며 자신의 죽음 또한 특별할 것 없음을 보고 있는 다윗이네요. 요압을 침묵해내던 그가 드디어 요압을 솔로몬에게 맡깁니다. 그의 삶에 어쩌지 못하는 것을 모두다 해치워버리려 하지 않았음을 봅니다. 주님, 제게도 그처럼 적극적인 기다림이 있길 기도합니다. 침묵하지 않아야 할 것들도 있지만 때론 왜인지 모르겠는 것들을 놔두고 침묵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것이 제 삶에 필요함을 느낍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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