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이 공(空)하다"
여섯 글자 안에 담겨있는 우주 같은 깨달음의 신비.
이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으면 "하산하거라"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깨달음과 아는 것은 천지 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고, 이걸 다 소화하기 부족한 "뇌"를 가지고 있다.
비록 지식은 많은 지언정 지혜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싯다르타는
헤르만헤세가 말하고자 하는 "결말"이다.
'수레바퀴 아래서 - 데미안 - 싯다르타'
이렇게 한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솔직히 "수레바퀴 아래서"는 안 읽었다.
그것도 안 읽었으면서 뭘 아는 체하고 깝죽거리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안 땡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읽겠다.
싯다르타는 "인간"으로써 맛볼 수 있는 모든 삶을 다 누려봤다.
일명 "산전수전" 다 겪은 인간이다.
나도 나이에 비해서 경험도 많고 산전수전 겪은 것 같지만,
또 다른 친구 얘기를 듣다 보면 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미는구나 싶어 입꾹닫일 때도 많다.
싯다르타는 처음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친구랑 떠났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서 혼자 수행한다.
그렇게 주구장창 그놈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방황한다.
도대체 그 깨달음이 뭐길래.
다자이 오사무가 마지막에 깨달은 게 "いっさいは過ぎていきます。(전부는 지나갑니다?)"였다면
나는 여태 살아오면서 무엇을 깨달았나?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받았던 부분은,
상인이 싯다르타에게 묻는다. 할 줄 아는 게 뭥미?
생각, 기다림, 금식할 줄 안다.
췟, 그게 먼 소용?
아..., 이 세문장만 봐도 너무 감동적이지 않나? 모르겠다고?
생각, 기다림, 금식
생각해 봐라.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몰라서 맨날 답 달라고 게시판에 글이나 싸지르고,
지긋히 기다리지 못해서 쇼츠나 보고,
금식은..., 이게 될 것 같나?
비웃는 상인이 저 세 가지중 하나라도 본인은 할 수 있을 것 같나?
생각, 기다림, 금식할 수 있소.라고 말하는 싯다르타의 당당함에 나는 또다시 '입꾹닫'이 된다.
"니 뭐 잘하는데?" 라고 물으면,
나? 음.... 이거 잘하고 저거 잘하고, 머 잘하고, 머 잘하고....
아 구차하다. 구구절절하다.... 결국 아무 말 못 하고...,
"없는데요..? ㅠㅠ"라고 쫄면서 대답하겠지.
나중에 싯다르타는 저 세 가지마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된다.
생각, 기다림, 금식
그리고 책을 읽다가 또 생각해 본다.
뱃사공 "바주데바"는 도대체 누구이며, 왜 마지막에 사라졌지?
또한 바주데바처럼 나의 귀가 되어주고 나의 멘토가 되어주는 '사람'이 나에게는 있나?
그런데 다 읽고나서 있건 없건 상관 없어졌다. どうでも良い。
왜냐면 바주데바는,
바로 싯다르타의 또 다른 형체, 즉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깨달아라 쪼옴. 멘토고 나발이고 필요없다.
수레바퀴가 혼자 고뇌만 했고,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도움을 받았다면
싯다르타는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 가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나 자신을 선물해줬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