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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류 May 08. 2024

[서평3]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최애작품)

恥の多い生涯をおくってきました.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원서로 읽었다. 이 책을 번역서로 읽을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본 것 같다. 

그 특유의 콤마가 많은 것부터 "僕は보쿠와"라는 말이 세세하게 가슴을 후벼 팠다.


이 책이 우울하고 어둡나?

나는 세상에는 요조 같은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앞뒤가 다르고 가면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한 타마가와 죠스이 근처로 이사 갔다. 

미타카의 다자이 오사무의 발자취도 찾아가 봤다.


왼쪽 끝이 육교다. 




여기가 다자이 오사무 문학 살롱이다.



나는 한때 무라카미하루키만 주구장창 읽었다. 

먼 북소리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이탈리아의 어느 골목을 걷다 조그마한 카페로 들어간다.
구석 안쪽에 하루키가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동석을 하면서 하루종일
하루키의 책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다자이는 다르다.

내가 죽어서 다자이 오사무를 만나면 아무 말 못 하고 쭈뼛거리다가
더듬더듬 "에또..., 만나게 돼서, 그게..., 음...,영광입니다!"
이 말 밖에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고판을 펴든다. 

생각보다 얇다. 한꺼번에 다 읽어버릴까 봐 아까워서 1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만 읽는다.

그리고 유튜브 찾아서 다자이에 관한 동영상 찾아본다.

다음날은 1페이지부터 20페이지까지만 읽는다.

그리고 어디선가에서 만화책을 구해와서 또 1/4만 읽고 덮는다.


다음 날도 또 첫 페이지부터 30페이지까지만 읽고, 유튜브에서 애니메이션 찾아보고 

내 마음을 블로그에 끄적거린다.

다 읽기까지 한달은 걸린다.


나는 마지막 구절만 수백 번 읽었다. 


 いまは自分には、幸福も不幸もありません。
 ただ、一さいは過ぎて行きます。
 自分がいままで阿鼻叫喚で生きて来た所謂「人間」の世界に於いて、
たった一つ、真理らしく思われたのは、それだけでした。
 ただ、一さいは過ぎて行きます。

 지금은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단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생각되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단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ただ、一さいは過ぎて行きます。 


이 구절이 너무 슬퍼서 이 한 구절이 이 책 내용의 전체를 다 포함하고 있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파서 꼭 그 당시의 내 마음 같았다.


책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친구와 좀 더 오랫동안 付き合いたい(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직도 후기는 읽지 못하고 있다.  


「お前は、喀血したんだってな」
堀木は、自分の前にあぐらをかいてそう言い、いままで見た事も無いくらいに優しく微笑(ほほえ)みました。その優しい微笑が、ありがたくて、うれしくて、自分はつい顔をそむけて涙を流しました。そうして彼のその優しい微笑一つで、自分は完全に打ち破られ、葬り去られてしまったのです。


[너는, 각혈했다더니] 
호리키는 내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그렇게 말하고, 지금까지 본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였습니다.
그 부드러운 미소가, 고맙고, 기뻐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숙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 부드러운 미소하나로, 나는 완전히 무너져버려, 매장당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부드러운 미소가 고맙고 기뻐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숙이고 눈물을 흘려버리는, 

요조의 마음이 나는 너무도 깊이 느껴져서  [흑!]하고 울컥해 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저 옆에서 부드러운 미소로 [괜찮아. 너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어]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어느 날 나는 저 글을 또 수십 번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대단한 게 그거다. 저렇게 쓸 수 있다는 것! 


다자이의 "走れメロス(하시레 메로스)”라는 책은 초등학교 교과서, 중학입시에 나오는 밝고 건전하고 건설적인 도서다.

이처럼 다자이는 밝고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인간실격이나 사양(斜陽)을 보면 어둡거든. 


밝게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런데 어둡게 광적으로 쓰다 보면 자기 본인을 다 드러내야만 하고, 세간의 눈을 의식해야 하니까 어딘가 여지를 좀 남겨둔단 말이지.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잃는 게 두려워서 속이는 게 많은 것처럼. 

근대 이 책은 아니란 말이다. 

다 드러내고도 더 못 드러내서 안달 난 책이다.

얼마나 광기를 부릴 수 있나, 얼마나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 수 있나, 그렇게 써 내려간 책이니 진심이 안 와닿을 수가 없다.


그 순수함에서 오는 절규.


나는 한 장 한 장 아까워서 못 넘기고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의도를 다 알아듣고 있는 건가, 다 이해하고 있는 건가.



이번에 다시 읽고 있는데(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두 페이지 읽다가 똑같은 감정임을 깨닫는다. 


다시금 쓰지만 인간실격을 왜 좋아하냐면….

단어, 문장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고, 읽고 있으면 그 문장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내 마음을 감싸고 내 주위를 둘러싸고, 그렇게  요조와 付き合ってる 하는  기분이다. 다 읽는 게 아깝다. 아쉽다.


이 책이 다 읽고 덮으면 요조는 내게서 거품처럼 사라질 것 만 같아서, 이 付き合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번에도 후기는 읽지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여러 번 읽는 지금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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