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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류 Sep 14. 2024

[서평 13] 책 읽어주는 남자 - 베른하르트

원제는 Der Vorleser이고 영화 The reader(더 리더)로 만들어졌다.


1995년에 출간되었고 1999년에 뉴욕 베스트셀러였으며 한국에는 2013년에 번역/출판되었다.


15세 남자와 36세 여자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해서 나치전범 이야기와, 선택의 길에 서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내적갈등, 옛 추억을 잊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등이다.


나는 한국어버전과 독일어버전을 동시에 읽었다.

독일어가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도 궁금했다.


한나가 글을 모르는 것을 보며 아큐정전의 아큐가 생각났다.



글을 모르는 아큐에게 종이를 내밀며 싸인을 하라고 하자 아큐는 되묻는다.

"싸인이 뭐죠?"

"이름을 쓰라고!"

글을 몰라서 머뭇거리는 아큐에게 동그라미라도 그리라고 한다. 그러자 아큐는 동그라미를 힘주어 아주 예쁘게 잘 그리고 뿌듯해한다. 그리고 사형당한다.


아앗..., 아큐는 너무 갔나? ㅎㅎ




유대인 수용소에서 감시자중 하나였던 한나는 교회에 불이 난걸 알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추궁하는 판사에게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한나가 되묻자, 판사는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그 상황에 직접 처해있지 않으면 그 누구도 단정 짓지 못한다.


코로나 시절만 해도 5인 이상 모였다고 신고를 하나?

신고하면 이 집이 벌금을 낼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보상금 얼마를 받기 위해서 신고하는 짓을 했단 말이다.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내가 문을 열어줘서 그 안에 있던 여자들이 뛰쳐나와 폭동이라도 일으켜서 내가 죽기라도 하면?

그리고 내가 뭐라고 문을 열어주고 말고 할 권력이 1만큼 이라도 있나?


내가 그 시절에 독일군인 혹은 일본군인으로 태어나 그러한 임무를 받았고, 그 임무에 반(反)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쉰들러 리스트>처럼 감히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지...., 


나는 단정할 수 없다. 


읽다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이 생각났는데 한나가 읽은 책 중에서 이 책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떤 일이 벌어졌다면,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고 있는 것을 방관하느냐 이실직고하느냐인가.

많은 사람이 알면서 방관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은 보통 본인의 안위에 따라 달라진다.


주인공 미하엘은 재판에서 "한나는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나?


그때 말 못한게 죽을때까지 죄책감으로 남아있나. 


그럼 왜 말을 못했나? 


딴에는 한나의 비밀을 지켜줄 요양이었다고 하지만, 실은 본인이 전범녀와 썸씽이 있었음이 밝혀질까 두려워서인건 아닐까.

본인의 안위가 우선이지만 한나의 비밀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글자도 모르는 한나가 서류를 작성했다고 몰리고 누명조차 "내가 했소." 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감옥에 가서 18년을 살게 된다.


한나는 어쩌면 속 편하게 그냥 감옥에 가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한건 아닐까.

이렇게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게 질질 끄느니 차라리 그게 깔끔할 수도 있단 생각을 한 건 아닐까.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그런다.

"제가 지시했습니다."

어쩌면 한나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나는 감옥에 가고, 미하엘은 혼자 궁상떨다가 자신의 과거 즉, 책을 읽어주던 당시의 즐거웠던 과거에 사로잡혀 책을 읽고 녹음한 테이프를 한나에게 보내는 짓을 여러번 한다.


이건 사실 한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인거 같다. 


누가 해달랬어? 오지랍은 참내 ㅎ


물론 그 덕에 한나가 글을 읽고 쓰게 된 것도 있지만, 이에 대해 답장 1도 안했으면서 


나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그녀가 불쌍했다.
너무나 지연되고 실패한 그녀의 인생이 불쌍했고
가엽게 여겨졌다


라고 한다.


네? 니가 뭔데요?


나는 미하엘이 이렇게 생각했다는 게 좀 우스웠다.

사회와 가정에 적응 못하고 여전히 15세 그때 그대로의 마음으로 살면서 성장도 못한 주제에, 

너를 다른 사람이 볼 때 안 불쌍하고 안 가여울 줄 알아?


과연 무지한 사람은 누구인가.

글자를 모르는 한나인가.

한나가 왜 그런 언행을 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미하엘인가.


그리고 마지막에 한나는 출감 하루전날에 자살을 한다.

자살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한나는 나치의 만행들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자신이 한 일에 죄책감을 느껴서?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난 아닌거 같다.

미하엘이 데리러 오겠다는 날 새벽에 자살한 걸로 봐서는 아마 미하엘에게서 도망가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들었다.

죽지 않으면 이 끈이 계속 가겠구만....망ㅎ..


고독 속에서 많은 세월을 지낸 시람에게는
세상이 그토록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질까요?
수도원으로부터, 은둔 생활로부터 세상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자살을 하는 편이 나을까요?

뭐 어떻든 좋다. 


이 책은 미하엘입장에서 써진 책이다. 


한나의 입장은 전혀 없고 어디까지나 미하엘의 추측일 뿐인 내용들이라서, 다 읽고 나서도 명확하지 않고 앞이 안 보이는 연기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한나가 왜 자살을 했느냐는 한나 본인만 아는 거다.


이 책을 읽고나서 미하엘은 여전히 15세의 그 시절속에서 사는 느낌이였고, 한나는 꾸준히 성장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외에 미하엘이 한나를 생각하면서 주절대는 부분들이 맘에 들어서 인용해 본다.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면증의 시간은 아니다.
즉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충만의 시간이다.


나의 그리움이 그녀하고는 상관없는 형태로
그녀에게 고정되었음도 깨달았다.
그것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미하엘은 책을 출판할 때까지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한나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죄책감이든, 동정이든, 집착이든 뭐가 되었든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미하엘에게 한나란 무엇일까.

평생의 욕망일까, 올가미일까.


나는 한나가, 미하엘이라는 인생을 쌓아가는 세포들 중에 이미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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