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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강수희 개인전, 어둠을 택하기보다, 차라리 촛불 하나를 켜라

by 정윤희
KakaoTalk_20250424_182416937.jpg ©강수희, 개츠비, Color on linen, 97x130cm, 2025



저는 까마귀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해치지 않아요.

어두운 그림자도 아니고, 어둠의 전령도 아닙니다.

물론 밝은 대낮보다는 포근한 어둠을 더 좋아해서, 가끔 그런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 결코 남도, 나 자신도 불행하게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편이지요.

이렇게 작은 촛불을 켜놓고 작은 샴페인 잔을 들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합니다.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내가

그대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빈틈없이 새카만 나의 신체가 가끔 그대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리 못난 얼굴도 아닙니다.

나의 두 눈은 작지만 초롱초롱하지요.

얼굴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어요.



KakaoTalk_20250424_182416937_02.jpg ©강수희, 초대, Color on linen, 130x162cm, 2025



밤이 되면 보드라운 나의 깃털은 반짝입니다.

내가 날개를 피면 지혜도 함께 펼쳐져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을 켤 수 있게 됩니다.



KakaoTalk_20250424_182416937_11.jpg ©강수희, Pray, Color on linen, 72x90cm, 2025



노래와 기도는 나의 특기이지요.

노래와 기도를 할 때면 미카엘 대천사처럼 밝아지는 나 자신을 느낍니다.



KakaoTalk_20250424_182416937_13.jpg ©강수희, Dream, Color on linen, 72x90cm, 2025



나는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나의 지혜는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지요.


지혜로운 동물이 세상에서 많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 지혜로운 동물들은 인내심이 많고 조용하답니다.



KakaoTalk_20250424_182416937_06.jpg ©강수희, 봄을 기다리며, Color on linen, 92x72cm, 2025




하지만 때로는 많이 외롭습니다.

밝은 대낮에 벚꽃나무 위에 앉아 봄을 즐길 수 있는 다른 새들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저도 어쩔 수 없는 까마귀인가 봅니다.




KakaoTalk_20250424_182416937_15.jpg ©강수희, Light a candle, Color on linen, 72x90cm, 2025



하지만 까마귀는 주로 밤에 빛을 밝히지요.

영리한 동물들은 결코 자신의 정체를 잊어버리지 않아요.

앞으로도 이 포근한 어둠 속에서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면 작은 미소나 함께 나눕시다!






<전시 정보>

어둠을 탓하기보다, 차라리 촛불 하나를 켜라, 2025.4.10-5.2

MANSION9 _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23-29, 1F


<작가 소개>

강수희 _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동양화 전공으로 학사를 졸업하고 석사를 수료했다. 2024년 제주시 노바운더리에서 개인전 <Blueming>을 개최했고, 2022년 제주문화회관에서 개인전 <해프닝_산책과 모험 사이>를 개최했고, 같은 해 이화서울병원에서 개인전 <골방의 문법>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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