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 국경을 진입하자 또 다른 하늘이 펼쳐진다. 막 비가 그쳤고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모네가 그렸던 그 하늘이다.
오전에 암스테르담에서 더 이상 미술관 관람을 원치 않는 딸을 구슬려서 렘브란트 미술관으로 갔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고 아트샵을 구경했다. 미술관을 방문했던 여느 때처럼. 렘브란트가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절 구입했다던 저택은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워낙 암스테르담의 주택 부지가 비좁아서인지 작고 수수해 보였지만, 렘브란트의 컬렉션만큼은 대단했다. 그림들은 물론이고 거북이 등딱지, 엄청 큰 소라 껍데기, 어떤 짐승인지 모를 커다란 털가죽까지. 암스테르담에서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유로스타 탑승은 처음이었고 캐리어 두 개, 보스턴 두 개, 그리고 사춘기 딸을 챙겨야 했던 나는 다소 내내 긴장했다. 자기 몫의 캐리어와 보스턴백을 감당하는 딸이 너무나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계단이나 턱을 오를 때는 내가 두 번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올렸을 뿐, 평지에서는 모두 재인이가 짐을 끌었다. 기차를 타면서 캐리어를 들어 올릴 때 힘이 좀 달렸다. 현지인이 도와주어서 진심 어린 '땡큐 소 머치'가 연신 흘러나왔다.
파리는 두 번째였지만 북역의 분위기는 다소 낯설었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 길도 복잡했고, 우버의 핀이 실제 탑승지점과 맞지 않아 생각보다 많이 걸었다.
"엄마! 비행기, 비행기!"
쌩쌩 달리는 자전거에 부딪힐 뻔한 나를 보고 재인이가 외쳤다. 본인도 당황해 자전거를 비행기라 한 것이다. 우버 차량에 탑승한 뒤 재인이는 재잘대기 시작한다. 나의 기분이 다소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아이가 재잘거리고 있다는 건 나의 기분이 아이에게 옮겨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아이가 하는 말을 모두 새겨들을 수 없었지만 재인이를 보면 절로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끝말잇기 하자는 제안은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