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 두 번째 일정을 마쳤다. 체감 물가가 한국의 세배나 되고 거리에는 마리화나 냄새가 곳곳에 나는 이곳도 적응할 만한 곳인가 보다. 아직 목구멍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가시지 않고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늘 휘청거렸던 재인이가 이곳에서는 나보다 체력도 기분도 더 좋아 보인다. 캐나다에서 꼬여버린 낮과 밤이 얼추 유럽의 시각과 잘 맞아 들어갔던 것이다.
7시간의 비행을 마치자마자 반 고흐 미술관 관람을 다녀왔던 첫날을 보내고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아침 여덟 시 우리 둘 다 적당한 시각에 눈을 떴다. 하지만 역시 내게는 좀 무리인 일정이었는지 목구멍이 꽉 조여오며 아팠다. 타이레놀 한 알과 알레르기 약 한 알을 삼키고 숙소를 나섰다.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은 반 고흐 미술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가기는 쉬웠다. 원래 아침을 근처에서 먹고 갈까 했는데, 둘 다 일어난 지 얼마 안돼 아직 입맛이 없었고 시간이 촉박하기도 해서 미술관 카페를 이용하기로 했다. 트램을 타고 가는 길 약기운이 올라 나는 약간 비몽사몽 하고 있었는데, 재인이는 옆에서 재잘재잘 댄다. 몇 정거장을 지나다 보니 나의 리액션은 고장이 나버렸고 재인이에게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카페로 갔다. 커피와 과일이 곁들여진 크루아상으로 구성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가 10유로가 조금 넘었고 휘핑크림을 얹은 핫 초콜릿은 6유로 정도 했다. 두 사람 한 끼가 3만 원에 맞춰지면 정말 만족스럽다. 앉아서 쉬다 보니 약기운이 가시면서 컨디션이 올라오는 듯했다. 목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이곳 커피는 참 맛있다. 우유를 부어 먹으면 더 맛있다. 시킨 메뉴는 양이 많지 않았지만 재인이나 나나 아침에는 워낙 조금 먹어서 양이 딱 맞았다.
역시나 아트샵을 먼저 구경하고 전시를 관람했다. 아시아 관에서는, 예전에 유튜브로 한 장인이 재현을 했었던 고려 자개 상자가 전시되어 있어서 놀랐다. 르네상스 관에서 본 막달라 마리아 그림은 인물이 요염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 회화, 플랑드르 회화는 동행한 재인이를 배려해 최대한 빠르게 관람했다. 미술관은 인상주의회화까지 아울렀는데 네덜란드 출신 작가도 꽤 있었다. 하긴 우리나라에도 인상주의 작가가 있었으니까. 이후 네덜란드는 반 고흐라는 거장을 배출했는데 사실 반 고흐는 엄격한 가정과 사회적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다른 나라를 떠돌았고 프랑스에서 그 재능을 꽃피웠었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의 작품도 관람했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관람한 지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운이 깊게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부분 보수를 위한 설치물이 작품을 가리고 있어 일부만 볼 수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고, 대신 <우유를 따르는 여인>과 <편지를 보는 여인>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회화체가 단단했다.
얼른얼른 보고 쉽게 쉽게 지나치자 마음을 먹었는데도 관람에 꼬박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 재인이에게는 다소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작품만 조금 보고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앉아 쉬기로 했다. 가끔 좋아하는 웹툰을 보기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냈다.
"엄마, 반 고흐 미피 정말 예쁘지 않아?"
역시 아이에게는 작품보다는 굿즈다. 네덜란드에서는 어딜 가나 미피가 보였고 이곳 미술관 아트샵에서는 해바라기 앞치마를 두르고 붓을 든 미피가 놓여 있었다. 아이에게 갖고 싶으면 사라고 했는데 환율 계산을 해보더니 한사코 괜찮다고 한다. 선택을 아이에게 맡겼더니 1박 2일 간 살지 말지 고민한다.
"그냥 사."
한 손에 인형을 쥐어주고 나머지 손으로는 아이 손을 덥석 잡고 계산대로 데리고 갔다. 남편 생일 선물로 줄 키링도 함께 가지고.
남편은 현재 한국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영상통화할 때마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래도 아이가 해외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만 했는데,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조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언젠가 세 가족이 함께 유럽에 올 기회가 있기를.
202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