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찾아온 불청객

by 정윤희

재인이가 무서운 꿈을 꿨다며 새벽에 일어났다. 엄마와 차에서 내리는데, 땅속에서 엄청난 수의 지렁이가 나왔다는 것이다. 평소 벌레와 곤충을 싫어하고 특히 지렁이를 싫어하는 재인이다. 주변에 한 여자 아이가 있어 경비병을 불러주었지만 둘 다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그냥 돌아섰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벌레 한 마리가 또 나타나서 내가 그걸 때려잡았다고 했다.


나는 무서워하는 재인이를 위해 우리가 재물복을 얻을 꿈인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꿈속에서 엄마가 벌레를 잡았으니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받을 거라고. 재인이는 내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잽싸게 인터넷으로 꿈 해몽을 찾아본다. 이런 똘똘이. 찾아보니 놀랍게도 지렁이는 재물운을 뜻한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서 걱정거리를 뜻하기도 한단다. 벌레도 근심이나 걱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꿈을 대충 해석해 주었는데 어쩌다 보니 절반은 맞는 해석이었다.


네덜란드로 향하는 여정을 앞두고 내 마음은 어수선하다. 그래서 나의 심정이 재인이의 꿈을 통해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퀘벡의 아름다움에 취해 경비가 줄줄 새는 것을 처음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전날 몬트리올에서 지낼 때까지는 계획대로 경비가 지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퀘벡의 숙소에는 주방이 없었고, 마트도 찾기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하루 두 번 식당을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큰 경비가 나가고 있던 것이다. 마지막 옐로우나이프 일정에서도 패턴이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앞으로의 살림살이와 진로로 머리가 아픈 와중에 이번 여행이 경제적으로는 좀 무리였었다. 재인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순간순간 나의 마음은 쿵 내려앉곤 했다.


네덜란드는 물가가 비싸 이곳에서의 여정을 최대한 짧게 잡았는데도 여전히 나는 불안했다. 사실 네덜란드에는 순전히 전시를 보러 가는 거다. 다시 힘들게 밟은 유럽 땅에서 반고흐 미술관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반 고흐 작품이 아릅답다한들 이렇게까지 해서 볼 가치가 내게는 있는 것일까. 또한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안에는 비가 예보되어 있어 날씨까지 따라주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를 어느새 다시 마음속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퀘벡에서 몬트리올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오를레앙 익스프레스를 탔다. 재인이는 앉자마자 잠이 든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근래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창밖으로 퀘벡으로 향할 때와는 또 다른 색채가 펼쳐졌다. 이제는 드라마 <도깨비>가 아닌 영화 <가을의 전설>이 생각날 정도였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 두 분도 수다를 떨며 연신 창밖을 찍었다. 한국에서는 특별한 조경에서나 볼 수 있는 자작나무가 여기서는 숱하다. 자작나무와 침엽수, 이미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메마른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있다. 나무가 참 빽빽하게도 들어서 있다. 간혹 나무들 사이로 늪지대가 보이곤 했다. 절정을 이룬 단풍은 너무나 고와서 이 비가 끝나면 곧 겨울이 다가올 것이라고 예고하는 것 같았다.


그래, 벌레를 때려잡자. 근심과 걱정을 털어버리자.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가장 중요하니까. 한국을 떠난 지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마치 외국에서 한 달 이상 머문 것 같다. 그만큼 여정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 순간순간이 강렬하다는 의미이다.


참, 오늘 아침, 숙소에 진짜로 큰 벌레가 나타났었다!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재인이한테 전화가 왔던 것이다.


“엄마 숙소에 엄청나게 큰 벌레가 들어왔었어. 지금은 없는데 너무 무서워.”

“혼자 있기 무서우면 엄마가 데리러 갈까?”

"웅."


나를 따라나선 재인이는 바로 벌레에 대해 재잘대기 시작한다. 꿈에서 봤던 것만큼 커다란 벌레가 빼꼼히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엄마, 엄마, 진짜 컸었어.”

“아, 엄마가 있었으면 때려잡았을 텐데...”

“진짜 진짜 컸었다니까.”

“크면 때려잡기에는 좋지.”

"헐"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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