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부터 널 그리워했던 것 같아

by 정윤희

스물세 살 때 영국에서 6개월간 자원봉사를 하는 중에 잠깐 파리에 놀러 왔었다. 내가 돌보던 지적 장애인이 속한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용돈을 지급해 주었는데, 몇 주치를 잘 모아두면 여행경비가 마련되었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와 체코, 파리를 다녀올 수 있었고, 영국의 관광 도시들도 둘러볼 수 있었다.


한국의 복잡한 상황과 가족들로부터 멀어지니 내 안에는 커다란 공간이 생긴 듯했다. 난 외국의 자연과 환경을 한껏 보고 즐겼고 내내 속으로 무언가를 읊조렸다. 꺼내놓기에는 너무나 사소하고 맥락 없던 생각들, 바쁘고 치열했던 직장생활에서는 쓸데없는 행위에 불과했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추구했어야 했던 길이라는 걸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다. 내 가슴속에서는 무언가 늘 몰아치고 있었지만, 귀국 후 가난한 대학생이고 장녀였던 나는 줄곧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안정된 생활을 누릴 궁리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그런 내면을 그저 억누르기만 했다. 하지만 휘몰아치는 욕구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 무언가를 읽고 공부하는데 썼던 것 같다.


당시 여행은 주로 혼자 다녔었는데 유독 파리에서만큼은 조금 외로웠다. 저 멀리 에펠탑이 보이는 장소에서 가족과 연인과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이들을 보며, 이곳은 이러려고 오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가족이 생기면 이들처럼 이곳에 다시 오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다시 찾아왔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 왠지 길이 익숙했지만, 혼자가 아닌 아이와 시내를 걷는 여정은 다소 피곤했다. 게다가 7월이었던 이십 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10월 말, 초겨울 매서운 바람이 우리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버린 교통, 관광 시스템은 옛 낭만을 흐려지게 만들었다. 하루를 꼬박 이곳에서 보냈지만 너무나 큰 관광도시는 왠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없이 재잘대는 재인이에게 우리 인간적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자, 단순한 소음은 지금 엄마에게 힘들다며 주의를 주는 바람에 잠깐 관계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고 있는 밤, 뒤늦게 몹시 기쁘다. 아직 변변한 실적을 내지 못한 처지이지만, 나는 작가가 되어 이곳에 돌아왔다.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걸 마음껏 글로 흘려보낼 수 있다. 가정이 생겼고 지금 여기 파리에 아이와 함께 있다.


2025. 10. 24


KakaoTalk_20251025_180130990.jpg

KakaoTalk_20251025_180553546.jpg


keyword
이전 17화유로스타 기차 안에서 모네의 하늘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