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파리의 추운 날씨에 나의 감정은 오락가락

by 정윤희

오늘 아침 나의 몸은 한없이 무거웠다. 냉장고에 쟁여둔 재료로 아점을 해 먹고 다시 침대로 쏙 들어가 몸을 녹여야만 했다. 물론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한 시 반에 피카소 미술관에 예약을 해놓아서 어쩔 수 없었다. 12시가 되자 바람이 조금은 잦아졌는지 창밖으로 나무가 그전보다는 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는 파리 식물원 부속 동물원에 다녀왔다. 재인이가 주로 걷고 관람하는 코스에 지루함을 호소했으므로 직접 파리의 관광지를 검색해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 했다. 그랬더니 동물원을 골랐던 것이다. 다행히 몇몇 동물에 흥미를 느꼈고 그중 래서 판다에게 마음을 빼앗겨 한참 재밌게 구경하고 왔다. 아이가 만족해해서 나도 기뻤다.


문제는 여느 파리 시민보다 훨씬 두꺼운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운 날씨에 몸이 적응되지 않았던 것이다. 파리가 한국보다 더 춥다고는 할 수 없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만 되면 나는 늘 몸이 쳐진다. 한국에서라면 며칠 동안 침대 밖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는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 없는 타지이다.


그래서 며칠간은 오전에 쉬고 오후에 시내 관광지 한 곳만 둘러보는 일정으로 지내기로 했다. 재인이도 이 일정에 매우 만족해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근처 꺄르푸에서 장을 봐와 저녁을 해 먹기로 한다. 리차드 할아버지는 이곳의 식료품의 질이 좋지 않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동네 지리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른 마트를 찾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는 이곳 식자재가 꽤 괜찮았다.


여정의 중반을 달리고 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여기서 만난 피카소의 작품이 그래도 내게 많은 힘을 주었는지 오늘 저녁은 기분이 좀 나아졌다. 오랫동안 번아웃을 겪은 터라 작품을 보는 일이 과연 즐거울까 생각도 했지만, 미술관 안에서는 몇 시간이 후딱 흐르곤 했다. 재인이는 노트와 연필을 스스로 챙겼다.


"엄마 그림 보는 동안 나는 차라리 그림을 그릴래. 그러면 미술관에서도 재밌을 것 같아."


그리고 재인이는 실제로 나를 따라다니다가 적당한 벤치를 발견하면 그곳에 자리를 잡은 후 열심히 뭔가를 끄적였다. 몬트리올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아이와 떨어져 있기 불안했는데, 외국 생활도 조금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각자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잠깐 떨어져 있기도 한다. 아이는 아주 잠깐 피카소의 작품을 모사하고, 주로 만화를 그렸다. 그래도 괜찮다. 피카소의 작품이 주는 힘을 이 아이도 어느 정도 받았으니, 만화도 즐겁게 그렸을 것이다.


오늘 저녁엔 홍합과 연어 스테이크, 삶은 감자와 당근, 잎채소 샐러드, 컵떡볶이를 먹었다. 잎채소에는 바질페스토를 얹었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 음식이 좀 물리는데 숙소에서 해결하면 우리 맘에 끌리는 대로 이것저것 섞어 먹을 수 있어 좋다. 훨씬 경제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202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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