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중의 빵
'집'처럼 포근하고 안락한 이미지를 주는 말이 또 있을까? 가족이란 단어와 의미가 주는 안정감까지 포함한 '집'이라면.
터키에는 아직도 대가족이 살아가는 가정이 많다. 그 이유는 인구에 비해 일자리가 부족해서
젊은이들이 직업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모님과 살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식당에 가도 손님보다 서빙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다. 특히 식당에서 여자들은 홀에서 서빙하지 않는다. 도시 외곽에만 가도 여자들이 낮에는 잘 다니지 않고 아침저녁에 슈퍼에서 장을 본다. 여자들을 경시하는 것인지 남자들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인지.
그러나 의사나 변호사, 회사 임원 등 전문직에는 영어가 유창한 여자들이 많다. 어쨌든 사회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많이 보게된다.
회사에도 직원들 보다도 차를 나르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종종 볼 정도로 인구는 많고 저임금으로 많은 사람을 고용하기는 해도 혼자 벌어 생활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다.
결혼한 내외와 그 자녀들, 삼촌,고모,노 부모님까지 이렇게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 며느리는 당연히 시부모님과 집안 일에다 자녀양육을 하고 나머지 가족은 다들 나가서 일을 해서 집안의 가계를 꾸려 나간다.
터키인들은 잘 웃고 떠들고 음식 나누어 먹기를 좋아하며 낙천적이지만 대가족이 아니고 각자 살아야 된다면 가족 모두가 생존할 수 없는 경제구조이기 때문에 마냥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으리라. 단, 부자는 너무 부자이고.
빈부 차이가 격심한데 나라의 정권이 바뀌어도
대대로 내려온 부를 강제로 뺐지는 않아서 부자는 철옹성같이 계속 부자라고 한다.
이스탄불 외곽의 골프장 안에 있는 타운하우스
내가 이스탄불에 머물 동안 제일 힘들었던 것은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우리 부부는 방이 하나 혹은 두 개이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그런 아파트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방 세 개와 운동장만 한 거실이 기본이고 보통 침실이 네 개짜리가 많고 다섯 개, 여섯 개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억지춘향으로 방 세 개에 휑한 거실, 부엌에도 별도의 문이 있는 아파트를 구해서 들어가 보니 일단 청소가 걱정이요, 쓰지 않는 방이 아깝기도 하고 부담스럽고 그랬다.
캐나다나 한국에서 가족, 친지들이 왔을 때 10명도 수용 가능한 출입문이 달린 거실을 잘 활용은 했었지만.
터키 사람들이 사는 집의 거실에 가 보면 구슬이 달린 커튼, 번쩍거리는 장식장에 비단 소파가 화려하기로 치면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케 하는데.... 그 공간은 가족을 위한 거실이라기보다는 손님 접대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다는데 우리의 체면 문화와 비슷했다. 코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님 접대를 잘 하는 것이 선을 쌓아서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에 보탬이 되는 건지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임에는 확실하다.
피자와 비슷한 피데
라마단 기간 중 동네에서의 단체 식사
'집'이라는 단어 말고도 '빵'하면 부드럽고 푹신한 이미지로써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특히 다이어트 중에 미치도록 당기는 음식이다.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남는 곡물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터키의 밀가루로 만든 빵을 따라올 나라는 단연코 없다. 프랑스의 크롸상도 버터맛은 좋지만 빵의 진수를 맛보기엔 역부족이다.
시골은 인심이 좋아서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빵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무한리필이라서 빵맛에 음식 맛이 묻혀갈 정도이니 음식 때문에 여행이 고통스럽지는 않은 나라가 터키이다.
정부에서도 동네마다 시에서 만든 빵을 보통 빵집의 1/4 가격으로 파는 빵집이 있어서 서민들의 기본생계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들의 금식 절기인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떨어지면 금식을 끝내고 바로 먹을 수 있게 동네 빵집마다 빵을 산더미처럼 구워서 땡 하고 종을 치면 줄을 서서 사가는 '라마단 피데'라는 뜨끈뜨근한 빵을 사서 바로 뜯어먹을 때의 그 짭쪼름하고 쫄깃쫄깃한 맛이라니.
단맛의 디저트
그 외에도 국민빵인 깨 빵 '시미트', 이가 시릴정도로 달디 단 '바클라바'나 '로쿰' 같은 디저트가 그들의 당 보충제이다. 게다가 하루에 대 여섯잔 씩 마시는 차에다가 한 잔에 각설탕 세 개가 기본이니. 데코레이션이 약간은 촌스럽지만 요즈음은 당뇨환자가 많은 터키 사람들을 생각해서인지 덜 달게 만든 케이크는 밴쿠버의 단 케이크에 몸서리를 쳤던 나에게 순간적으로 터키에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적도 있었다.
북미에서의 집은 몰게지 때문에 개인보다는 은행의 소유 같아서 찜찜하다. 한국은 엄청난 집값에다 이른 퇴직, 불투명한 수입구조와 보장이 안 된 노후, 일관되지 못한 주택정책 등으로 갈팡질팡 헷갈리사이에 집값은 계속 오르다 보니 해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 비해서 터키는 대가족이 뭉쳐서 불편하지만 한 집에 살면서 빚을 안 지고 실속 있게 살아가는 것 같아서 나 같은 이방인의 눈에는 좋게 보이기도 했다. 결국 살아남는다는것은 어려운 것을 참는것이기에.
집도 있고 빵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같이 나누고 공유할 사람들이 없다면 풍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먹느냐 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한 이 시대에서.
혼밥이 위장에도 안 좋다는데 너무 많은 매체와 정보에 시달려서 홀로 있고 싶은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삶의 치열함에 웃어줄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을 억지로라도 만들고 눅진해진 마음을 바삭바삭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등학생 손자가 대가족이 먹을 바게트 같은 터키 고유의 빵을 7~8개를 담은 큰 봉지를 흔들면서 볼이 빨개져서 집으로 달려가는,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은 아이의 몸짓이 너무 좋아 보였다. 고부갈등, 형제간의 불화, 뭐 이런 건 세상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 존재할 테니까 그렇다 치고.
밴쿠버의 도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