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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Feb 07. 2020

오고 가는 차별 속에 커가는 바이러스

마스크 쓰지 않는 도시

2003년 '사스'사태 에는 일하던 언론사에서 3000여 명이 모이는 공연을 유치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찔다.

'사스'는 홍콩에서 발현한 전염병인데 밴쿠버 하면 그야말로 '홍쿠버'로 불릴 만큼 홍콩 사람들이 많은 도시이니 거의 패닉 상태가 되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사람들을 만나면 꼭

'Hong kong people'인지 'mainland chinese'인지 물어보고는 했을 정도로 홍콩 사람들이 대세인 도시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는데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공연을 봐야 하니 관객이 오지 을까봐 사무실에서 티켓팅 상황을 보는 내내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와서 그런지 마지막 순간에는 외국의 크루즈에서 잠시 밴쿠버에 하선하는 동안 공연을 보러 오겠다는 예매까지 있어서 천만다행, 만만다행으로 막을 내렸다.  

그 당시에는 마스크나 이런 것들이 유행하지도 않고 공연 준비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예방수칙도 잘 모르고 지나갔는데 지금 돌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신종인데다가  SNS 때문에 너무 상세한 정보와 실시간 상의 전를 알 수 있어서 더 공포스게 다가오는 것 같다.


느린 거북이 같은 캐나다에서  빠른 대처와 액션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벌써 많은 나라들이 전세기로 우한에 있는 자국민들을 귀환시키는데 캐나다는 유독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 전세기를 띄우고 토론토와 오타와의 중간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우한에서 온 교민들을

두 주동안 격리시킨다고.

수상이 전세기를 띄우는데 의논할 것과 절차가 많다며 여러 나라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자국민을 철수했다.


내가 터키에 있을 때 이스탄불의 중심가인 '탁심'이란 거리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서

집 밖에 나가지도 못 하고 뉴스와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살던 외곽도시에도 저녁이 되니 몸에 국기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하면서 지나가는 무리를 보니 굉장히 위협적이더라.

콧수염을 기르고 숱 많은 까만 머리의 야성적인 사람들의 함을 들으니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가 했더니 한참을 갔는데 시위 초반캐나다 대사관에서 이메일이 왔다. 외출을 삼가고 유사시에는 고지한 장소로 모여서 자국기로 캐나다에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외국 불안정한 상태에서 그런 연락을 받으니 안심이 되고 내가 속한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는 안도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캐나다가 이번에는 웬일인지 빨리 대응을 안하고 있다.

전세기를 띄우는데에는 나라 간의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절차 때문에 복합적이기도 하지만

지금 밴쿠버에 중국의 화웨이 부회장이 억류되어있는 상황이라서 거의 꼴찌로 자국민 철수를 한건 아닌지 나 혼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특히 캐나다 위니펙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중인 연구원이 경찰에 잡혔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지금 확진된 환자의 검체를 위니펙에 있는 국립 미생물 연구소에 보낸다니 거기가 거기인?

 

현재 캐나다는 5명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는데 그중 2명은 밴쿠버에서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밴쿠버에서 1명의 확진환자가 있다고 했을 때 중국인이 엄청 많은 이곳에서 별로 없어서 의아해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오기 시작하네.

                        밴쿠버 공항에


다인종의 나라답게 보건부 장관이 40대의 남자와 50대의 자라고 성별만 밝혔을 뿐 거주지나 동선, 중국 오리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단지 우한에서 밴쿠버를 방문한 친척을 만나고 나서 걸렸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호들갑스럽지 않고 차분하게 우한시가 있는 후베이성을 비롯해서 발병지역을 다녀온 BC주민들은 자녀들과 14일 동안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아이들은 등교를 미루어 달라는 당부뿐. 예방 수칙이라야 손을 자주 씻고 기침할 때   옷소 안 쪽에다 하며 마스크는 침하는 사람만 하라는 것이 전부다. 증상이 있으면 911이 아니고 811로 하라는것  끝.

춘절이 끝나고 중국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캐나다로 돌아오고 철수된 우한 교민들이 14일의 격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점이 더욱 위험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걱정들을 하는데 캐나다 정부에서는 너무나 나이스하게 그리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것은 아닌지 찜찜하다. 국경에서도 무증상자는 능동감시대상에서 제외되며 어떠한 여행 제한 조치도 하지 않있다.

 뭔가 액션을 빨빨리해도 될까 말까

더 떠서 이번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낮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네.  

그래도 10일에 2차 전세기를 보내서 아직 우한에 남아있는 캐나다 교민들을 태우고 미국 전세기에도 태워서 밴쿠버까지 데려 온다니

이럴 땐 미국이랑 찰떡 공조를 하고 있.


집에 한국산 마스크가 한 개 있다. 장을 보면서 대형 슈퍼 마켓의 약국에 가서 물어봤더니 다 팔리고 없다고 하면서 이틀 후에 들어온다는데 확실치 않다고 한다. 그 순간부터 패닉이 되어서 여기저기 국에 전화해도 다 없다고. 밴쿠버 거주 중국인들이 중국에 보내기 위해 사갈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거리에 마스크 쓴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그 많던 마스크가 갈 곳은 오직 한군데 에 더 있으랴. 마침 한국에 나가 있던 친구 두 명이 있어서 카톡으로 마스크 이야기를 했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구정이 끼어서 약국이 문을 닫았다나?  한국에서 동남아로 여행을 갔던 친구는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한  상황에 적응이 안 됐고.

어제 한국에서 사 온 마스크 두 개를 전달해 주려고 우리 주차장에 나타난 친구 말이, 지금 오는 길에 캐네디언 타이어에서 마스크를 파는데 일인당 10 개 만 팔면서 세금 포함 거의 100불에 샀다고 투덜투덜.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벌크로 살건 데.

그 친구 부모님도 아는 약국에서 엄마만 한 개를 겨우 샀는데 아버지가 '나는?' 하셔서 겨우 두 개 샀다면서 여기서 산 마스크를 한국에다 우편으로 보낸다고 보여주는데 완전 건축업자들이 쓰는 업자용 마스크였다. 내가 보기엔.

사실 병원에 가면 군데군데 일회용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그걸 사러 돌아다녀야 된다니.

친구가 주고 간 마스크 두 개를 서랍에 고이 모셔 두었다

한국 마스크.                                         캐나다 마스크


현재까지는 시내에 있는 대형 쇼핑몰, 학교, 공원, 식당이나 슈퍼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다.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민폐로 찍히는 분위기이다. 학교에 픽업을 오는 학부형들도 반바지에 레깅스를  입어서  당연히 걸린 감기에 기침을 하면서도 마스크는 쓰지 않는다. 엄마들끼리 모여서 아이들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내가 가니까 약간 움찔하는 분위기였다. 뭐, 모세의 기적처럼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확연하게 피하는 것은 아니었더라도 나는 미세하게 느꼈다. 티 안 나게. 중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 데리러 오는데 그들 자체가 사람이 없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다른 중국 할아버지가 목도리로 입을 가리고 모자를 썼는데 나도 모르게 간 움찔.

물론 동양 사람들이 기침은 커녕 재채기도 하지는 않았다.

기침할 때 옷의 안쪽에            마스크 안 쓴 아이들


집 앞에서 남편이랑 산책을 하는 중에, 그 길 우리 둘 밖에 없었는데 마주 오던 흑인 청년 한 명이 우리를 보더니 포장도로를 이탈해서 잔디밭으로 들가더니 재빨리 걸어서 우리를 지나쳤다.

우연의 일치이기에는 뭔가 너무 티가 나게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오래전에 미국에서 히스패닉이 많은 지역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하던 한국분에 의하면 백인들  빵을 싸는 누런 동양인 손을 흑인들의 검은 손보다 더 싫어했다는 이야기는 옛날 고리짝에 들었는데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시내에서 백인이 동양 여자를 향해 바이러스를 떨어뜨리지 말라는 동영상도 떠돌고 있는데

이기적이라고 하기엔 다들 공포심에 위축되어 있어서 과잉반응을 하는 것 같다.

심해지면 현대판 페스트가 될 수도 있으니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도 마스크 안 한 밴쿠버 슈퍼마켓(Feb. 08)


나도 외출를 삼가하려고 패밀리 닥터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몇 주전에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그때는 바이러스 소식이 나오기 전이었다. 의사가 홍콩 사람이어서 구정에 휴가로 홍콩에 가지 않는지 물어보니 안 간다고 해서 잘 됐다고 미리미리 약속을 했다.

 뉴스가 나오고 나서 혹시라도 홍콩에서 그의 친척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환자들이 대부분 중국계라서 찜찜하기도 하고.

피검사 결과는 검사 6시간 후에 이미 인터넷에서 로그인해서 들어가니 다 나와있었다.

6개월 전에 한 것과 비교를 해 보니 굳이 갈 필요까지도 없어서.


지금은 잇몸이 약간 곪아서 치과를 가야 하는데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된다. 혹시 치과 기구들에서 옮는건 아닌가 지나친 염려를 하면서.


핑퐁을 치듯 이래저래 사람이 사람을 피하게 만든 이 바이러스가 빨리 떠나가기를.

캐나다에서는 재난 대비를 위해서 3개월치 생활비를 예비비로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3개월이 지난 그 다음은?

매달 내야되는 몰게지나 렌트비, 생활비등 고정비가 밀리면 개인끼리 단돈 1불도 융통이 안 되는 이 사회에서는 가정경제가 마비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이 시점에서 세계 경제의 붕괴가 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날까봐 걱정이 된다.


또한 영화 'out break'나 'contagion'허구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다가도 화에서 처럼 돈과 인맥으로 치료받고 그것도 없는 사은 치료도 못 받고 무력하게 죽어가는 일이 이번 사태에서는 없기를 또한 바라면서.


확진자가 방문했던 장소 소독과 격리, 집콕등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사불란한 한국의 방역 디테일은 환타스틱어메이징하다.

마스크 매점매석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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