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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09. 2020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긴 가정불화

노래로 이겨내기

캐나다에서는 환자가 아니면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하고 한국은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쓴다.

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하나도 없는 밴쿠버에서 마스크가 동이 났다. 바이러스 초창기에는 밴쿠버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중국에 보내느라고 싹쓸이를 했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면서도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 하고 주말마다 장을 보면서 찾아봐도 다 팔렸다는 말과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대답.

드디어 엊그제 대형마켓의 휴지 선반은 텅텅 비어 가고 다행히도 매대를 다시 채울 휴지들을 실은 카트가 그 앞에 있었다. 위생용품을 사다 놓아야 안심이 되는 심리 이외에도 이미 미국의 생산기지가 중국으로 90%가 이전된 만큼 중국에서의 생산율이 낮아지면 재고처리 후에는 가격이 오르거나 품귀현상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그런 것 같다. 워낙 미국 의존형인 캐나다라서.

중국사람들의 밀집 지역에서는 이미 사재기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외의 지역에서도 서양 할머니들이 휴지 한 덩어리씩 들고 나온다.

오늘날까지 나는 손세정제나 마스크를 밴쿠버 슈퍼에서 본 적이 없다.

2월 초에 아마존에서 마스크를 사려고 할 때 일회용 100매가 17불이었는데 3월 3일까지 배달이 된다고 해서 너무 늦다고 그만두고 가게를 다녀봤자 허탕.

지난주에 다시 아마존에 들어가니 같은 제품이 50매에 65불 하는 것을 구매를 했는데 언제 올 지, 언제 취소가 될지 모르고 막막하게 기다리고 있다.

마침 한국에서 구정을 쇠고 온 친구가 마스크를 다섯 개 준다고  친구 한 명이 더 나와서 세 사람이  밥을 먹었다.

한식당인데 그 넓은 공간에 단 세 테이블만 차고 식당 주인은 그나마 점심은 이렇게라도 있지만 저녁엔 거의 없다고 한숨을 쉰다.

금스크를 받아가지고 와서 흐뭇해 하는데 다음날 다른 친구가 우리 만나고 나서 열이 나고 몸살이 나며 목도 아프다고.

갑자기 몸이 굳어지며 이말 저말 물어보고 괜찮을 거라고 위로를 하고 그이는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우리는 14일 전에 누구를 만났냐, 상태가 어떠냐고 말로만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침대에 그림같이 누워 있었더니 좀 나아졌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족끼리 제일 말이 안 통하는 것은 마스크 문제이다.

큰 아들 네는 아이가 세명이니 처음부터 마스크를 아마존에서 구입하라고 했건만 그때만 해도 캐나다에 확진자가 안 나온 때이고 정부에서도 신사적으로 몇 가지 위생수칙만 발표할 때였으니 그렇다 치고.

온타리오와 밴쿠버에도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할 때 또 이야기를 했더니 그때는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학교를 통해서 지침을 받고 있다고 했다. 마치 마스크는 영화에서 본 대로 은행 강도들만 사용하는 것인 것처럼.

그 지침이라는 것이 아픈 기미가 보이면 학교에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시장조사를 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마스크를 준비해 두라는데 왜 저러나 하고 어이가 없었다.  마스크를 쓰면 보균자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만연하지만  이란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란 확진자 뿐만 아니라 노스밴쿠버의 요양원에서 확진자들이 나왔다. 그 중에 한명이 첫 사망자.

드디어 캐나다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상륙한 것이다.


진짜 가정 불화는 다른 데서 터졌다.

1월 말에, 그러니까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발현하고 한국에서 확진자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에 그때까지도 캐나다와 미국은 청정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큰 아들 가족이 4월에 한 주일 간 여행을 간다며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밴쿠버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멕시코의 캔쿤으로 가자고.  워낙 우기가 긴 겨울 동안 노인네들은 플로리다로, 멕시코로 해가 많은 지역으로 탈출을 한다. 사돈네도 매년 2월과 3월, 두 달 동안 플로리다에서 지내고 와서 손자들을 우리가 더 돌보곤 할 정도로 해를 찾아가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속으로 좀 찜찜했지만 시기적으로 병이  창궐하진 않아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2월 한 달, 매일매일 한국은 더 심해지고 미국과 캐나다도 쥐가 소금을 녹이듯 슬금슬금 환자가 늘더니 지금은 밴쿠버에서 가까운 시애틀 환자가 방문하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증가세.

드디어 어제는 여행을 취소하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어봤더니 자기네는 어쨌든 간다고 단호하게 말하더라.

엄마나 아빠는 정 불안하면 안 가셔도 된다는데 남편은 손자들과 시간을 보내야 된다며  간다고 주장하고.

나만 안 가면 다들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만 살겠다고 주장한 배신자로 가족사를 얼룩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여기가 병이 성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 혼자 쓰러져 있는 상상이 슬쩍 머릿속에 지나가면서 급 갈팡질팡.

그래서 여행 잘 가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이 시점에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다음번에 가라면서 비행기 안의 공기도 그렇고 무증상인 사람과 섞여 있으면 어쩌냐고.

다른 친구는 아들 며느리와 2년 전에 발리를 가려고 했다가 인도네시아에 화산 폭발이 있을 때라서 이미 다 사놓은 티켓을 손해를 보고 못 갔었는데 자기네도 자기랑 딸이랑 며느리는 다 반대하고 남자들은 그래도 간다고 고집부리다가 여자들이 이겼다나.

다른 의견은 가족끼리 알아서 하세요라는.

어쨌든 가도 편치 않은 여행이 될 것이 뻔하고 다 가는데 나만 안 갈 수도 없고.

여행 20일 전에 취소하면 50%만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위약금 각 200불 추가요.

돈보다도 생명이 우선이고 그냥 일반병이 아니고 전염병에다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는데 걱정도 안 되나?

우리 부부가 터키에 있는 동안 큰 아들 네는 세 번을 방문했다. 첫 손자가 백일 때 보여준다고 비행기 좌석의 앞에 매달린 바구니에 넣어서, 그리고 첫 돌 때 와서 돌잔치도 하고 둘째가 8개월 때 두 아기들을 데리고 24시간 걸려서 이스탄불까지 날아왔었다. 서양사람들이 그렇듯 며느리가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젊은 사람들이라서 일하다가 스트레스도 날리고 머리도 식히려고 여행하는 것을 아니까 당연하다고 이해를 하려고 애를 써봐도.

그러다 보면 나는 은퇴를 해서 스트레스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으니까 요즘의 최대 이슈인 코로나 바이러스만 주야장천 생각하다가 가족여행에도 민감한 게 아닌가 하다가도 아니지, 이건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하면서 혼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하다 가도 지금 북미도 확진자가 늘어가는 마당에 무슨 배짱인지 마스크도 착용을 안 하고 도도하게 있더니 어제 요양원에서 감염자가 나오니까 담당 책임자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데  대책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워낙 느린 정책으로 이렇게 빨리 확산되는 팬데믹에 어찌 대처하려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한인 감염자가 나와서 한인 타운이 오염됐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고 해당 병원은 최초 유포자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서고 조용한 시골 같은 도시가 여기저기서 들썩거리고 있다.

스타벅스나 팀홀튼 같은 대면 비즈니스도 행사를 취소하고 스마트 폰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등 신경을  쓰고있다만.

 


2월 한 달 동안 사람들도 못 만나고 다들 몸조심을 하다가 보니 우울감이 생기고 비가 많은 우기에 이게 웬일인가 싶다. 병원을 가도 중국 사람들만 마스크를 하고 기다리는 것을 보는 것도 우울하고 중국 의사도 최근에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우한을 잘못 말하는 줄 알았다. 요새는 한국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역력하다. 기가 막혀서.


그래도 기분이 울적한 이 시기에 레트로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인 양준일의 힙한 퍼포먼스와 토크쇼를 보면서 시름을 달랜다. 그의 진솔한 입담과 몸으로 표현하는 음악과 패션을 보면서 신선하다고 느낀다.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에다가 말만 재치 있게 받아치고 시청자는 웃기지도 않는데 진행자들만 목젖이 보이도록 웃는 것도 식상했던 차에.

자신을 알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없이 담담하게 인생을 논하는 그에게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 이유는 그만큼 자신의 소신을 확실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사회에 사는 자신들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대한 회한불확실하기도 하고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 걸음이라 불안해 하면서. 그것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답변들을 그가 제시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나가서 뛰어놀지 못하는 한국의  어린아이들이나 재택근무하는 어른들이나 슬슬 피로감이 임계점에 다다르는 것 같은데 스트레스 없는 게 스트레스인 밴쿠버의 은퇴자인 나도 미리미리 예방한다고 마스크부터 여행 계획까지 가족들과 의견이 충돌되고 질병 뉴스만 계속 듣고 있자니 서서히 미쳐가는 것 가는건 아닌지.

그래도 양준일이 부르는 옛 팝송들을 다시 들으니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었나 하면서 따라 불러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그래서 그가 불렀던 엘튼 존의 노래를 가라오케에 맞춰서 불러 보았는데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이 삐질삐질 나오는 것이 미쳐가고 있게 확실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녹음까지 하겠냐고.


할머니인 내가 흥얼거려 본 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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