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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Dec 23. 2020

알뜰한 당신

배보다 배꼽이 큰

샤워를 할 때 전기값을 아낀다고 욕실 불을 끄고 들어가셨다가 어두운 데서 낙상으로 입원하셨던 친정아버지가 못 마땅해서 입을 삐죽거리던 친구. 그녀가 살얼음에 미끄러져서 손목이 부러졌다.

노인들의 절체절명의 위기는 낙상으로 인한 고관절이나 다리의 골절로 인해서 병원 치료 후에 대소변 치다꺼리 때문에 요양병원에서 얼마 못 가서 돌아가시는 예가 많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상식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밥상에서 밥알을 흘리거나 밥그릇에 밥을 남기면 대역 죄인인 되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천 기저귀를 삶아서 썼다. 친구가 방안에 널어놓은 아이의 기저귀에 친정엄마가 하루 종일 손녀를 봐주고 한숨 돌리면서 안경을 잘 마른 기저귀에 닦는 것을 본 친구가 와서 왜 기저귀(귀한 자기 딸의)에 안경을 닦냐면서 난리를 쳤다고. 세상에 아기는 자기 애가 하나인 거지. 그날 친정엄마는 섭섭한 발걸음으로 가시고. 지금은 낙상하셔서 꼼짝 못 하고 누워 계시는데 멀리 사셔서 찾아뵙지도 못 한다고. 그래서 입 바른 소리 했다가 몇십 년 뒤에 라도 후회할 일이 생긴다니까. 잘난 자식들이 철이 없어서  부모님이 하는 것은 다 구식이고 잔소리 감이었다.

혼자 사시던 친정어머니도 예쁜 그릇을 그릇장에 진열만 해 두시고는 아끼면서 스텐 밥그릇과 국그릇에 코닝 접시 몇 개만 쓰시다 돌아가셨다. 장례식 후에 짐 정리를 하는데 이민 올 때 가져오신 옷들 중에 한 번도 입은 흔적이 없는 바지들이 깔별로 20개가 넘게 나왔고 스웨터 소매 속에서  2500불이 나왔으며 애지중지하던 반지는 침대 매트리스 사이에서 나왔다. 딸만 둘이라 며느리가 없기에 망정이지 시어머니가 아끼느라고 쓰지 않아서 유행이 한참 지난 물건들을 시어머니가 죽으면 며느리들이 욕하면서 버린다는데 그 경우는 면했다.


초창기 이민자들의 식탁에 놓여있던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가 냅킨 대용으로 쓰이는 것에 뜨악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한 두 칸씩 뜯어서 입을 닦더랬다.

푸세식에서 수세식 화장실로 변환되면서 신문지에서 화장지로 바뀌는 기의 산물이었다고나 할까?


캐나다에 오니 절대로 안 아끼는 것이 있는데 케미컬 청소용품이었다. 한국은 그 당시에 물로 빨고 삶아서 백옥 같은 하얀 행주를 쓰는 부심이 있었으나 서양에는 락스를 비롯해서 '타이드'같은 세제에다 디쉬 워셔용 등 다양하게 뿌리고 붓고 있어서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터키 같은 나라도 터키 아줌마들이 청소할 때 보면 세제를 풀은 물에 대걸레를 푹 담갔다가 꺼내서는 마루를 문지르고는 끝. 물걸레로 세제를 닦아 내지도 않고. 동남아시아의 식당 주방에서 사용되는 MSG의 양을 보면 시원한 월남국수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요즘처럼 집밥만 주야장천 먹다 보니 조미료가 들어간 감칠맛 나는  중국음식이 먹고 싶어 지긴 하지만.


절약이 미덕이고 소비가 죄였던 어린 시절은 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이야기이고

요즘 코로나 시대의 이야기를 해 보자면 마구 쓰는 것이 미덕을 넘어서 살 길이 되었다.

어디를 가도 소독제에다 페이퍼 타월(아껴서 빨아 쓰는), 물티슈 등, 딱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장갑은 의사가 삐끗한 내 손목을 한번 돌려보고 바로 벗어서 버리더라.

이 무슨 낭비의 시대가 도래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블루로 인해서 이미 머리에 꽃 꽂은 사람도 있고 앞으로 꽂고 나갈 사람도 있으나 팬데믹이 수그러질 기세는커녕 점점 거세어지고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물질이 많아도  겸손하라고 하셨다. 사람이 돈이 좀 많아지면 하늘이 돈짝(하찮게라는 뜻인데 아직도 잘 모름)만큼 작게 보이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화를 부르고 결국은 돈, 돈, 돈 거리는 돈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교복을 입던 중, 고교 시절에 학교에 지정 교복회사에서 와서 학생들 교복 치수를 재어갔다. 옷감을 고르라는데 혼방(합성 섭유)과 모직(wool)이 있었는데 나는 혼방을, 친구는 모직으로 신청한 후에 입고 다닌 느낌은 천지 차이였다. 친구의 교복은 짙은 감색에 햇빛은 받으면 보얗게 윤기가 나고 구김이 없는 반면에 합섬으로 된 내 교복은 잘 구기고 다림질에 번쩍거리며 퍼렁끼가 돌면서 진짜 마음에 안 들었었다.  사춘기 때에 교복에도 차등으로 있는 것이 인간도 차등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우울했었다. 약간의 절약을 위해 선택한.

또한 결혼을 하기 전에 친정에서 신부 수업을 시킨다고 잡채도 해 보라 했는데 시집가면 다 할 것을 미리 시킨다고 귀찮아하며 하니 어설프게 하다가 당면은 다 수채 구멍(개수구)에 부어버리질 않나,

콩나물을 화분 하나에 키우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는 절약정신을 강조한 말도 안 되는 궁상은 귓등으로 들으며 시건방을 떨었다. 신혼 동네 슈퍼에서 콩나물 그까짓 거 하다가 남편의 퇴근 시에 콩나물 봉지를 펴 놓았다가 뿌리가 그렇게 많을 줄 모르고 다듬다가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고 제 때 밥을 못 먹었다는.


그렇게 있어도 없는척하며 눈에 띄지 않으려는 세태를 지나서 이제는 빈티가 나면 대놓고 무시하는 세상이 도래했나 보다. 시내에 강남의 소나타라는 포르셰에다가 웬 외제차는 그렇게 많은지 깜짝 놀랐다. 차가 마치 자신의 인격이나 된 듯이. 경제가 발전되면서 생활이 향상이 되었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맥시마이즈'하라는 처세술도 공감은 가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나? 이 세상의 모든 재화는 돌고 도는 것. 지금 내 것이 영원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지금 누리고 움켜쥐려고 하는 것인지.


 높은 데서 떨어지면 더 아프고, 있다가 없으면 더 고통스럽다. 상처 부위가 클수록 노출이 많이 되어서 쓰라리고 눈이 높을수록 갈망이 더 심해진다.  


2020년이 저물면서 그동안 눈에 보이게 평준화가 이루어진 분위기이다.

마스크를 쓰니 화장을 할 필요가 없고 일회용 갑을 끼니 반지 등 장신구가 필요 없고 외출을 삼가고 딱 필요한 활동만 하라니 외출복이 필요 없고 미장원도 감염될까 봐 집에서 개발새발 자르니 거의 다 비슷하게 좀비 머리 같다.

돈이 있는 사람은 쓰면서 뻐기고 자랑할 데가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없으니 못 쓰는데 공평하게 다 같이 하루 세끼 밥은 먹고 살아가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가진 자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백신을 맞으려고 2만 5천 불을 줄 테니 새치기로 맞게 해 달라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죽으면 누리던 것을 다 놓고 가야 하니 억울하기가 없는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인지도 모른다


캐나다에서 사람들이 알뜰한 지는 모르겠으나 검소하고 소박하기는 해서 겉으로 봐서는 풍족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편의점에서 나와서 '애스턴 마틴'(007 차량)을 타고 가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외화 내빈과는 반대인 것 같다.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정부에서는 재난 지원금도 합리적으로 국민들에게 지원하고 백신도 미리미리 준비해서 지금 접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 수보다 훨씬 많은 배수의 양을 샀다고 정부가 욕을 먹고 있다.

이래저래 집밥만 죽어라 하다가 백신 맞고 살게 되는 시나리오로 가는 게 수순인가?

치료제가 없는 찜찜한 상태에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서로 방문을 금지하니 각자 고요한 밤을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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