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강 Mar 25. 2021

한 집에 아이들이 아홉

집 주고 아이 주고

6년이란 세월이 길다면 길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터키에서 6년만에 밴쿠버에 돌아오니 동네 분위기가 뭔지 모르게 약간 썰렁하게 느껴졌다. 앞면으로는 산이 보이는데 그 산 위로 개발이 되어서 조용하던 언덕길에 차 소리가 심하게 들리는 것 외엔 별다른 변화가 없이 얌전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변화무쌍하지 않은 캐나다라서 그런가 했었는데.


길 건너 주욱 붙은 세 집이 다 이혼을 했다. 한 집은 이혼을 당하고(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두 집은 남편의 외도로. 갑자기 세 집이 싱글맘이 되어서 아이들을 바쁘게 통학을 시키는 모습들이 분주해 보였다.

바로 건너편의 샌디는 사춘기 아들 둘을 키우는 중이었는데 남편이 나가버렸다. 여자와 함께. 그리고 샌디는 얼마 안 있어서 암에 걸리고 말았다. 투병 중에 남편을 향한 증오가 병을 더 악화시키더니 그만 세상을 떠났다. 종교가 없던 샌디는 종교를 가진 남편이 배신한 것에 대해서 종교인 모두를 저주함과 동시에 신에 대한 원망까지 서슴지 않으며 그렇게 죽어갔다. 남은 사춘기의 두 아들은 오래전부터 마약을 파는 건지 복용을 하는 건지 집 앞에 경찰차가 오곤 했었다. 늘 우울한 엄마, 바람난 아빠 사이에서 방황했을. 잘 생긴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오드리와 데이비드처럼 사랑스러운 커플을 본 적이 없다. 날씬하고 명랑하고 항상 새처럼 밝게 말하는 그녀와 우직하면서도 '벤 애플랙'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중후한 인상에다 로칼 신문사에 근무하던 데이비드. 다운타운까지 고속 기차를 타기 위해서 시계추처럼 늘 정확한 시간에 커피 텀블러를 들고 집을 나서던 그에게 글쎄 다른 여자가 생겼다니.

사내아이 둘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길가에서 놀고 있던 막내가 서너 살쯤 되었을 때 이름을 물어보니 수줍은 듯이 'nothing'라고 하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있었다. 엄마 아빠를 닮아서 잘 생기고 키도 큰 아이들이 졸지에 엄마와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나가고 1,2년 후엔가 쇼핑몰에서 우연히 오드리를 보았는데 옆에 팔짱을 끼고 가는 남자의 모습이 데이비드와는 정말 정말 다른 타입의 남자였다. 컨트리풍의 부츠에다 밀짚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아저씨랑 팔짱을 끼고 웃으며 가고 있었다. 한 번은 차도 없이 기타를 메고 골목길을 따라 들어오더니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잘못 본 게 아닌 것이 확실해졌다.

범생이 스타일이었던 데이비드가 그렇게 나가버리자 반대급부로 완전 후리 스타일의 남자를 만나면서 뭔가 힐링 복수인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이렇게도 행복 찾기가 오묘해서야.


그 옆 집도 아들 하나만 데리고 살다가 내 마음(?)에 안 드는 껄렁껄렁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면서 동네를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손자의 학부모인 캐네디언 제니는 싱가풀 출신의 남자와 결혼해서 아들만 셋을 낳았다. 그 집 아들 셋 하고 우리 손자들 셋 하고 학년이 같아서 쉽게 친해진 가정이었다. 큰애들이 축구를 할 때 우리 부부도 가고 그 집 싱가풀 중국인인 친할머니, 할아버지도 응원하러 와서 만나 본 적이 있다.

동양 인치고 키가 큰 노인들과 역시 키가 큰 그 아이들의 아빠와 인사까지 했는데 다들 표정이 어두워서 이상해했었다. 그때가 바로 이혼 수속 중이었다나.


제니의 전 남편이 이혼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재혼한다는 날에 아빠의 결혼식에 아이들 셋이 다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상대방 여자의 아이들은 딸 만 셋.

그렇게 주말엔 아빠의 집에 가서 아빠를 만나는데 그 집엔 딸들이 셋이 있으니 여섯 명이 같이 잘 놀다 오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제니 즉 세 아들의 엄마를 농장에서 만났는데 어떤 남자가 그 집 막내를 무등을 태우고 있더라니. 제니의 남자 친구이었는데 남편의 재혼에 열 받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 친구가 결국 세 아이들의 새아빠가 되었다. 밴쿠버가 아닌 에드먼턴이란 북부 도시에서 학교를 다닌 제니와 초교 동창인데 우연히 밴쿠버에서 만났다가 미혼이라고 해서 만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코로나가 한창이던 작년 6월에 결혼을 했다. 뒷마당에서 들러리도 없이 주례와 증인 2명이 전부인 조촐하고도 시국에 맞는 결혼식을 치렀다.

그리고 6개월 후에 이 새신랑이 집을 나가버렸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서.

나중에 알아보니 에드먼턴에서 사실혼이 있었으며 애들도 세명이 있었다고.

난 또 애들도 키워보지 않은 총각이 개구쟁이 남자아이들 셋을 키우느라 힘이 들겠다고 동정을 했더니만 진실의 문이 열리니 그것도 아니었더구만.


거의 패닉이 되어 얼굴 살이 쪽 빠진 제니가 우리 며느리에게 하소연했다는 제니의의 사연에 깜짝 놀랐다. 순진해 보이고 말이 없으며 우직해 보이던 인상과 아이들에게도 잘했던 그 존재는 어디로 가고 밑도 끝도 없이 제 맘대로 집을 나가서 연락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북미나 유럽 사회에 사이코도 많다지만  이건 아니잖아. 제니는 세 가정의 아이들 아홉 명과 얽히고 얽힌 상태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 세아들의 아버지인 싱가폴 남편은 재혼한 지 1년만에 다시 이혼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에 이렇게 얽히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내가 써 놓고도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사회이긴 하지만 그래도 60년 이상 해로하는 서양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은데.


이혼 여부를 떠나서 아이들이 너무 엉켜서 혼돈스러운데 남자들은 강철 멘털이라서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 게 확실하다.

위에 거론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자들이 문제를 일으켰고 그럴 경우에는 아이들이 사는 집을 부인에게 주고 자신은 몸만 나가서 상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집도 새 부인의 전남편이 준 집에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키워주러 들어간 모양새였다.

그러다가 제니의 도망간(?) 새 남편도 그녀의 전 남편이 준 집에 들어가서 제니의 아이들을 키워주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몸만 들어갔다가 몸만 빠져나간, 마치 유령 아빠가 되었다가 연기처럼 사라진 상태이다.


이런 세태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시간이 약이라고 요즈음은 집을 팔고 그들은 다 떠나버렸다. 어디에서든 그들의 인생은 도도하게 흘러갈 것이고 또 다른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것에 자신의 과거를 버무려서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이 상처와 결핍으로 인해서 마약을 하다가도 성인이 되어서 착실한 삶을 살고 있으려는지 아니면 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남자가 밖으로 돌 때는 여자도 책임이 있다고들 말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것도 아닌것이 내가 본 앞 집 여자들은 거센 서양여자들과는 거리가 있고 다들 가정적이었으며 남자들도 착하고 아이들의 액티비티도 열심히 돌봐주던 평범한 중산층 아빠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여자 문제였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더 예쁜 여자들이 없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오드리를 멸시한 상대방은 누구인가?


새로 이사 온 앞집 여자도 딸과 아들 둘을 키우며 가족 네 명이 알콩달콩 살았는데 이번에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서 안 나오고 아이들도 대면 수업에도 안 보낸다고 한다. 워낙 강박증이 있는데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될까봐서 아이들도 집밖에 내보지 않고 두려워해서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고 한다.

현관문 하나 열고 들어가면 집집마다 사연이 만만치 않지만 정말 다양하다.

강박증세도 증세지만 그 남편이 그런 상태가 지겨워서 또 딴 짓이나 하지 않을 지 그것이 걱정 된다.

마주 보는 앞 집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트라우마로 나혼자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제발 애들 생각 좀 하자. 또 제발 애들을 맡아서 죽기 살기로 키우는 싱글이 된 상대방도 생각하자. 마약도 무섭고 알코홀 중독도 속상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가정 폭력 또한 두려우니.



작가의 이전글 나 E대 나온 할머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