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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Jan 02. 2023

어서 와, 칠순은 처음이지?

떡국이냐 미역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 생일은 1월 2일이다. 내가 태어난 즈음은 전쟁의 화마가 가시지 않은 혼란기였다.

그 당시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력설보다는 구정을 쇠기때문에 새해 첫날이 그리 비중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두번의 설때문에 이중과세 되어 버렸다.

우리 세대만 해도, 아니 해외에 사는 동포들은 둘 다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냥 한국 식품에 나온 떡국떡이나  한 팩 사고 모둠떡이나 사서 먹고 만다.

전쟁 직후에 태어나서 여대생이 되었다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있  


 나에겐 출생의 비밀이 있다.

 내가 태어난 시대의 아기들은 보통 한 두 살 아니면 네댓 살까지 차이나는 생일을 호적에 올려  웃기는 일이 많이 나타나곤 했다. 실제 나이와 다른 호적상의 나이 때문에 학교 입학부터 연금을 타는 일까지 일생에 걸쳐서 두루두루 나타나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다.

나의 경우도 고모님이 동회(주민센터)에 가서 출생 신고를 하는데 1월 중이니 1954년이 되었는데도 머릿속엔 달력이 새해로 안 넘어가서 1953년이 남아있는 그 직원의 착오로 인해  1953년 1월 2일로 호적에 올랐다고 추측해 본다. 실제로는 1954년 1월 2일 생인데.

얼굴도 갈아엎는 판에 그까짓 생일 날자 정정이야 아무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오다 보니 호적으로 70세, 실제로 69세를 칠순이라고 하는 엄청난 자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미로에서 돌다 돌다 출구를 찾을 나이건만 아직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어딘지 모를 출구를 향해 술 취한 사람처럼 몽롱한 채 헤매고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지고 푸근해져서 인간관계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맞고 나머지는 틀리다.

어린아이가 애착하는 물건을 갖고 싶어 떼를 쓰는 것은 귀엽다. 하지만 노인이 한이 맺혀서 사고 싶은 것을 찾으러 다니는 것, 집착에다 욕심을 한 스푼 더 얹은 모양 같아서 보기가 싫다.

이제는 갖고 있던 것도 정리하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신중하게, 자식들이 유품이라고 간직할만한 것들, 아니 욕하면서 버리지 않을 것들을 사야 되는 판에.

나야 딸이 없으니 며느리들이

고를 것도 없이 다 갖다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니 앞으로 물건이나 옷을 사기도 재미가 없다면 그것 또한 나의 치부를 보이기 싫은 량한 자존심일까.


친구들이 70세가 되면 무엇을 해도 범죄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지금까지도 앞 뒤 재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왔는데 쉬엄쉬엄 살아도 누가 죄라고 하지 않으면 됐지. 뭘 더 이상 바랄까?



설익은 전병처럼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은 모양새로 살아내기 급급해서 동동거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뽀얗고 누르면 튕겨져 나올 것 같던 탄력 있던 피부는 어느새 물기 빠진 가을 낙엽처럼 버스럭거리고. 주름은 목부터 가로주름이 심해지면서 목울대에 양쪽 기둥이 서듯 세로 주름으로 목살이 늘어진다. 손과 발은 핏줄만 퉁겨져 나와 갈퀴 비슷하게  변했다.

매끈하던 넓적다리는  올라갈수록 없던 살덩이가 어디서 갑자기 생겼는지  게다가 늘어지기까지 한 제2의 허벅지. 배우 '헬렌 미렌'이 70세 때 수영복을 입고 보트에 있던 사진에서 보던 바로 그 잉여의 허벅지 군살이 드디어 나에게도 생겼다.

무다리, 허리 무(없음)의 육신이 되어 버렸다.

헤어스타일이 인물의 반이라고 하는 머리카락은 더 가관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앞머리에 헤어롤을 3 말았는데 지금은 거짓말 안 하고 중간 사이즈 한 개로 충분하다.

 옆머리카락은 그나마 숱이 좀 있어서 뽀글이 파마를 아직 안 해도 되고 생머리로 버틴다는 것을 큰 위안으로 삼고 한숨 돌리면 내가 걷는 자리마다 꽃잎대신 머리칼이 술술 떨어진다. 언젠가는 다 빠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칠 정도로.


인터넷의 발달로 디지털 장애가 있는 노년이라도 재미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예전에는 도서관에 가서 요리나 인테리어책을 많이 빌려다 보았는데

지금은 유튜브에서 디테일이 잘 되어있는 요리법을 따라 하면 금방 잔치상이 차려진다.  그래서 이것저것 서핑하다 보면

한 시간몇 초처럼 후딱 지나가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눕족이 되어서도 지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녁 할 시간이 되어 밖이 어두컴컴해와도 모를 지경이다.

그렇게 신나게 보다 보면 눈알이 시큰거림과 동시에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보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자괴감이 든다.

그래도 눈 뜨면 폰부터 켜고.

많이 보다 보면 가짜뉴스부터  미드 브레이킹 배드 저리 가랄 정도로 심각한  마약오용의 뉴스부터 지능적이고 사악한 사건으로  도배된 뉴스 외에 유익한 내용은 적으니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특히 의심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옛날에 어릴 때 할머니와  시장을 가면 어물전에서 생선을 뒤적이고 꾹꾹 눌러보며 신선도를 측정하고

가장 싱싱한 생선을 골라놓고 가격이 못 미더워서 터무니없이 깎던 모습을 보면서 웬 의심  저리 많으실까생각하며 민망한 적이 있었다. 노인이 되면 의심이 많아지나 하면서.


나이 들면 인격이 고매해지는 것까진 안 바라도 천박해지진 않아야 되는데 큰일이네.

천박의 조건엔 물질 위주의 사고와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처절한 이해타산, 그러기 위해서 나 아니면 남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계산된, 아니 맹목적인 불신이 그것이리라.

지인이 지난달에 지중해 크루즈를 갔다가 터키에 배가 정박해서 항구에 나갔다가 카펫을 샀단다.

관광객들을 위한 카펫 골목이 따로 있는데 캐나다에서는 너무 비싸서 못 산 카펫이 따악 눈앞에 있으니 안 사고는 못 견디겠더라고.

매장 한쪽에서는 터키 아줌마가 을 잣으며 카펫을 짜고 있었고 터키 상인의 유들유들함으로 접근하는데.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른 가격에 주춤주춤 뒤걸음질 치며 나오려는데 문 앞에 건장한 가드 2명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섬찟해져서 잠시 서 있었더니

가격을 유로에서 미 달러로 해주겠거니 더 깎아주겠거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적정가격에

딜을 했다고 한다.

거실용 실크 카펫이라 사이즈가 커서 가져갈 수는 없으니 가게 주인이 캐나다 주소로 보내주고 세금이랑 운송비는 다 자기네가 부담한다는데 좀 미덥지가 않았다나.

그래서 정확히 배달이 되냐 물어봤더니

자기네 업소를 터키 관광청 사이트에치면 나오는데

만일 배달사고가 생기면 영업금지에다 벌금을  어마어마하게 내야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더 걱정을 증폭시키는데?

터키 매장에서 지인이 고른 카펫


그 카펫이 너무 마음에 들고 가성비가 좋아서

가격을 다 치르고 왔다는 말에

의심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내가 터키에 살아봐서 잘 아는데 ~~~

그곳 상인들을 백퍼 믿으면 안 된다.

어찌 뻥이 심하고 가격도 거품이 많은지 말이다.

'그랜드 바자르'에 가면 이모, 언니라고 기름지고 느끼한 한국말로 호객을 하면서

수단을 부리는 장사의 달인들.

나도 한국에서 온 친구랑 그 바자르에 갔다가

뒷골목의 문 달린 가게에 들어갔는데 명품 짝퉁이 어찌나 정교한지 놀라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가게 주인인 터키 젊은이와 종업원 둘이 우릴 쳐다보는 눈이 어찌나 무섭고 위협적인지 하마터면  짝퉁 '고야드' 기저귀가방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살 뻔했다. 아무것도 안 사고 그냥 나가면 목덜미를 낚아 채일 것 같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어쨌든 터키 카펫 가게에서 이미 지불한 물건이 과연 그들 말 대로 캐나다에 도착할까?

난 자꾸 의심이 간다. 카펫이 절대 안 올 것 같다. 내 의심병을 고쳐줄, 카펫이 도착했다는 톡을 기다리면서도 자꾸  그들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의심병.


카펫은 정확히 캐나다에 도착했단다.

휴~~~


이 험한 세상에서  눈 똑바로 뜨고 잘 살펴야 안 속고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각오를 되새겨본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우리 부모님들이 하셨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 같이.


해가 바뀌고 나이를 더 먹는다는 것에 대한 감회나 각오보다는  

칠순이라는 단어 앞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갑자기 황망하다.

노년의 바이브가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우아하지도 여유만만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내고 버티어 온  삶에  레몬 몇 방울을 뿌리듯 상큼하고 생기 있게 살아가고 싶다.


그나저나 항상 새해 첫날은 자기 가족들과 지내고 2일에 엄마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온다. 서양식으로 첫날 음식을 먹으니 우리 집에 모이는 날은 새해 음식으로 떡국을 줘야 해서  생일 미역국은 나만 먹은 게 어언 10여 년.

올해는 그나마 아이들도 멀리 동부에 있으니

새해고 생일이고 다 시들하니 아무렇게나 한술 먹고 말자. 다음 주에 갈 여행 준비나 슬슬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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