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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 May 28. 2024

아기 4-5개월차, 산후우울증과 불면증을 겪다

불면과 불안의 밤을 겪고 있다면 산후우울증을 조심하세요

 호기롭게 결혼과 출산이 좋다는 글을 많이 썼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과정이 힘들지 않은건 아니다. 아기가 태어난지 130일이 넘어갈 무렵부터 나의 정신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 100일까지는 신기하게도 나한테서 도파민이 나오는 것 처럼 육아가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아마 남편이 프리랜서처럼 잠깐 일을 했었기 때문에 함께 있을 시간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서 아기를 보여주느라 약속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게 몸은 힘들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육아를 하고 있었는데 먼저 우리 아기에게는 100일의 기적이 오지 않고 100일의 기절이 왔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100일 이후에 통잠을 자는 아기들도 있고, 오히려 많이 깨는 아기들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아기는 후자에 속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체력도 지쳐갔고 내 육아방식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아기를 임신했을 때 부터 꼭 분리수면과 수면교육을 하고자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유투브, 수면교육 책, 맘카페의 정보들을 익히며 아기에게 그 정보들을 그대로 적용시키려고 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진짜 어이가 없지만 아기가 생후 1달이 되자마자부터 열심이었다. 그런데 여기부터 아마 틀어졌던 것 같다. 아기는 기계가 아니고 모두 같지 않은데 '어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왜 안되지?'하는 부분들이 많아지면서 나의 불안도 점점 커졌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아기는 굉장히 예민한 기질인데 그런 아기에게 수면교육은 더더욱이나 어렵고 힘든 것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원래도 약간 원칙주의자적인 면이 있어서 수면교육을 나만큼 힘들어하지 않았고 밀어붙어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 부분들이 나를 더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남편은 '수면교육 하지 않으면 너가 고생해야하는데 너 맘대로해.'라는 태도였는데, 나는 이미 불면증과 불안으로 너무 힘들었기때문에 아기를 나 혼자 안고 재우고 함께 자는게 엄두도 안났고, 수면교육을 하지 않는게 맞는일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나는 점점 아기가 잠자는 시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아기가 잠에 안들어서 울기 시작하면 겉으로는 울음을 적극적으로 달래주지 않고 가혹하게 하지만 내 속은 이미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원래 임신 이후부터 생긴 불면증은 더욱 심해져버렸고 급기야 아기가 자고 있을 때도 나는 아기가 깰까봐 불안해서 잠을 못자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벽 내내 계속 수면교육 자료만 찾아보고 그랬던 것 같다.


 이때부터 내 정신건강은 경고음이 울렸는데 완전히 캐치를 못하고 있었다. 하루밤을 꼴딱 새버리는 날들이 생겼고 낮 시간 동안 아기와 있는 시간에도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미 아기를 낳아 키우고 있는 교회 동생과 잠깐의 티타임을 하게 되었고, 그때 산후우울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어 설마 나도 산후우울증인가?'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네이버에 검색만해도 산후우울증 자가 테스트 문항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많은 항목이 내가 겪고 있는 문제와 일치하였다. 남편에게 그날 바로 '나 산후우울증인거 같아.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라고 이야기했고 그 당시 남편의 월급이 밀리는 상황이어서 재정이 어려웠음에도 남편은 바로 상담을 받으라고 동의해주었다. 그길로 나는 개인 분석을 받았던 상담 선생님께 바로 연락을 하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약물 처방도 받고 싶었지만 모유 수유를 병행하고 있던 터라 일단은 상담을 먼저 받기로 하였다.


 상담을 받으며 발견한 것은 먼저 수면교육의 시기가 너무 이르고, 나와 우리 아기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만약 나에게 더 확신이 있고 내가 더 태연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기의 기질이 더 순종적이고 순했다면 어렵지 않게 수면교육이 어느정도 되었으려나 싶다. 그러나 나와 아기는 전혀 반대의 사람들이었고 분명히 수면교육은 나와 아기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부모님께 많은 의존을 하지 못한 것이 내 문제로 남아있었는데, 수면교육을 한다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기를 벌써부터 나에게 의존하지 못하게 하는 것 처럼 느껴지면서 더욱 이 부분이 힘들었던 것 같다. 아기의 잠투정과 심한 울음이 내 상처를 건드리면서 동시에 나도 아기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마음편히 아기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부분에 있었다. 남편은 그맘때쯤 동업하던 사업이 잘 안되어 굉장히 예민하고 피곤한 상태였고 나는 그런 남편에게 육아가 힘들다고 더 많이 도와달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조금만 그 얘기를 하려고 하면 싸움이 되었고, 수면교육을 하면 편한데 그거에 반대하면 내가 그 책임을 지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서운하네.) 그리고 의존을 어려워 하는 내 문제와 양육 방식의 차이 때문에 시부모님에게도 아기를 완전히 맡기지 못했고, 우리 부모님께도 그랬다. 그런 나의 문제를 발견하고 상담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었다. 선생님과 함께 현실적으로 나의 부담감과 불안을 덜어낼 수 있는 방안들과 관점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였고, 수면교육을 중단하기로 하고 아기와 함께 자면서 생기는 변화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불면증이 상담 3회기 지나면서 바로 괜찮아 질 수 있었고, 5회기로 상담을 종결하였다. 이전에 이미 다른 상담 선생님께 1년, 그리고 이번에도 상담을 받았던 동일한 선생님께 1년 동안 상담을 받아왔던 덕분에 더 빨리 종결할 수 있었다. (이미 나의 성장 과정이나 역동, 상처들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다.) 그리고 아기의 수면, 양육방식에 대한 다른 책들을 직접 도서관에 가서 골라서 읽기 시작했고 새로운 정보들이 많이 도움이 되어 내 불안감을 낮추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동안에는 계속 '내가 아기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게 맞나? 그런데 아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고 울지?'라는 생각에 불안했는데 이제는 아기의 울음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것저것 해결방안을 적용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가 초보 엄마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도움이 될만한 제대로 된 책, 주변에 아기를 키운 경험이 있는 좋은 어른들에게 물어보는 태도를 가지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무작정 모든 결정까지 의존하려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양육의 주도권을 가지고 도움을 정확하게 청하는 방식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그랬더니 남편과의 불필요한 갈등도 많이 줄었다.


 아기 생후 10개월을 지나는 지금, 여전히 우리 아기는 잠을 정말 안자는 아기이고 잠 문제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그렇지만 아기의 예민함을 받아들이니 이전만큼 많이 힘들지는 않다. 내가 잠을 제대로 못자니 체력이 힘들뿐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게 아님을 알기에 그냥 아기를 한번 더 안아주고, 달래주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응원하며 지나가고 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 아기는 정말 잠이 없고, 그렇다고 피곤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그 부분이 참 힘들구나 싶다.) 지금은 돌의 기적을 바라고 있지만 그것도 안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다. 하하. 아기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문득문득 올라오는 우울감들이 분명히 있지만 불면증이 다시 재발하지는 않고 있고, 어쨌든 그런 나의 감정들과 마음들을 함께 살피며 적당히 나 혼자만의 휴식시간도 챙기면서 즐겁게 육아를 하려고 노력중이다. 산후에,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우울증이 오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흔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엄마들이 혹시나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느낀다면 지체없이 도움을 받기를 강력추천한다. 산후우울증은 초기에 치료해야 오래가지 않는다고 하니, 꼭 치료를 받기를 권한다. 가능하면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모두 받는게 가장 효과가 좋기는 할 것 같다.


 아기 중심으로 지금도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절대 이 시간들이 헛된 시간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한 바탕을 만들어주고 있는 시간이기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귀한 일을 하는 엄마들이 참 자랑스럽다. 모든 엄마들이 우울함을 함께 인정하고 달래며 건강하고 행복한 육아를 하기를 응원한다. (나 또한 꼭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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