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발견하다
나에게 출산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무서운 것이었다. 출산이 결혼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 직감은 아주 정확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도 결정이 어려웠지만 출산은 더더욱 결정이 어려웠다. 결혼 후 2년은 무조건 신혼을 즐겨야한다는 생각을 했었고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2년간 열심히 놀았다. 그런데 막상 2년이 지나고 나니 더 혼란스럽고 무서워졌다. 시댁에서도 은근 아기를 바라시는 듯한 이야기를 조금씩 하셨었고, 우리도 고민중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만약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아예 결정을 한 상태였다면 양가 어르신들께 말씀을 드리고 고민도 하지 않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출산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그 이유들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누군가는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문제들일 것이다.
1.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개인적으로 나는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컸었다. 출산이라는 일은 여자의 몸이 다 변하고 엄청난 고통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컸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긴하다. 임신이 되면 입덧부터 시작해서 변비, 부종, 골반 통증 등 다양한 증상들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렇게 몸이 불편한 채로 생활하는 것이 정말 쉽지는 않다. (나는 입덧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정말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산 때의 고통이 너무 두려웠는데 자연분만이던 제왕절개던 어쨌든 내 몸에 너무나 큰 변화가 있고 큰 고통이 따른다는게 무서웠다. 나는 2년간 상담을 받았었는데 상담 선생님과 이 주제를 다루면서 내가 왜이렇게 고통을 두려워하는지, 과거에 내가 신체적 고통과 관련된 어떤 경험을 했었는지 살펴보았다. 그것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나는 사실 '나 혼자 신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사람이었다. 이것을 누구도 해결해줄수가 없고 나 혼자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그게 너무나 외롭고 두려운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실제로 고등학교때 장염으로 몸이 너무 아파 응급실까지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끙끙 앓아도 엄마와 아빠가 해줄 수 있는게 없었기에 나 혼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던게 기억이 났다. 그 기억이 너무나 힘들었어서 같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내 몸이 변하는 것들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출산 이후에도 몸이 완전히 망가져있지는 않을까 하는게 또 다른 고민이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본 임신과 출산 과정은 분명히 고통스럽고 힘들긴 했지만 내 상상속 고통 정도는 아니었다. 먼저 내 몸이 불편한 임신 기간동안 남편도, 친구들도 나를 참 많이 배려해주었다. 그래서 힘들지만 위로도 많이 받았고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자연분만을 하였는데 진짜 분명 큰 고통이긴 했지만 어쨌든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고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이전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운동량이 부족해서 오는 체력 저하가 조금 슬프긴 하다. 다시 틈틈이 운동을 하고 있다.) 출산할 때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생각들이 있었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기를 건강하게 낳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과 '출산의 고통도 12시간, 최악의 경우에도 16시간만 버티면 다 지나간다. 그러면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마라톤과 등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힘든 순간들도 참으면 끝나는 느낌을 알고 있었고 그 상황들이 함께 연상이 되었다. 지금은 아기를 낳은 것에 후회가 전혀 없으며 회복 기간동안에도 회음부가 아프긴 했지만 정말 2주 정도가 지나니 거의 다 회복이 되었다. 좋은 점은 출산 후 생리통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고통은 잠깐이고(잠깐이라기에는 10개월이 분명 길긴 하지만...) 그 결과로 한 생명을 낳고, 아기를 키우면서 내가 인격적으로 훨씬 성숙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 주거 환경에 대한 걱정, 돈에 대한 걱정
나와 남편은 36형 행복주택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결혼할 때 아기를 고려하지 않고 가구를 들였더니 도저히 아기를 기를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공간을 만드려면 가구를 버려야 했는데 처음에 너무 좋은 가구들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그 결정도 쉽지가 않았다. 한동안 남편은 이사를 반대했었고 (행복주택 거주비가 너무 저렴하니까) 이것저것 아이 물품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 내 담당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공간에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느정도였냐면 산후도우미분이 앉아계실 곳이 없어서 도우미를 쓰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임신 중에 너무나 답답한 마음이 들고 우울하기 까지 했었다. 그러나 우여곡절끝에 결국 남편도 내 의견에 동의를 했고 우리는 59형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고 이정도면 만족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동의를 이끌어낸 팁은 무엇이냐면 아기 물건을 실제로 들이기 시작하고 리스트를 보여주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어떤 그림이 되는지 보여준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하하.) 이 결정에서 너무 어려웠던 것이 고정비 지출이 더 높아진다는 것과 이사비용 등 추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하필 이 시기에 남편이 사업을 해본다고 연봉을 절반 이상 깎고 지인들과 일을 하고 있을 때라서 대출 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모든 결정이 참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욕심을 내려놓고 우리의 예산 안에서 가능한 집을 골랐고,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알아봤던 것 같다. 여전히 너무 아쉬운 점이 많고(여전히 좁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이제는 외식도 원하는만큼 못하고, 여행갈 돈도 없고, 지금 당장은 저축도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예쁜 한 생명을 만나는 일에 비교하면 이러한 상황들은 그럭저럭 납득이 가는 불편함 정도가 되었다. 돈을 더 아껴서 외식을 아주 가끔 할 수 있으니 그 시간과 음식이 더 소중한 것이 되었고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그립긴 하지만 대신 여기에 나만 바라보고 꺄르르 웃으며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아기가 늘 옆에 있다는 것은 내가 해볼 수 없었던 종류의 경험이고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다. (물론 힘듦이 함께 존재하지만 그래도 기쁨으로 살아지는 경험이 신기하다.) 전세 계약이 끝나는 1년 뒤도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 걱정은 또 그때 가서 하기로 하였다.
3. 내 경력 단절과 시간적 희생
이 부분이 여성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여 행정 업무 및 심리상담을 하는 근무지에 있었는데 사실 이 분야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는 여성에게 기회가 많은 분야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미 한번 진로를 변경하였기 때문에 나이도 어느정도 있는 상태였고 욕심은 많아서 박사 과정까지 진학을 하고 싶었다. 진로고민과 출산 고민을 함께 하고 있노라면 정말 옴짝달싹 못하게 양쪽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힘들었고, 개인 상담 받을 때도 이 주제을 다루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출산을 선택하게 되면 최소 1년, 최대 3년까지는 경력이 단절 될 것이 뻔했고 만약에 둘째까지 갖는다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그 시간과 노력을 육아에 쏟을 것인지 직업에 쏟을 것인지를 결정해야했다. 출산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들을 모두 다룬 후에 나는 임신에 대해서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 졌었다. 그때쯤 남편과도 이야기를 하며 그러면 천천히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이야기했었는데 예상보다 아기가 더 빨리 찾아왔다. 사실은 박사 진학을 위해 교수님들과 컨택을 하고 있었고, 동시에 퇴사 준비를 하고 해외여행도 계획하던 중이었는데 우리의 예상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 아기 덕분에(?) 나는 모든 계획을 미루어야했다. 그 순간에는 많이 당황스럽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내가 만 33세였기 때문에 만 35세 전에 임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어차피 아기를 낳을꺼면 한살이라도 어릴때 나아야 내 몸도 체력도 더 힘들지 않겠다 싶어 그 부분은 또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하는... 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들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나 내 직업의 특성상 육아 경험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시는 상담 선생님이 계셔서 약간의 위로를 받았고, 무엇보다 아기를 낳고 난 이후에는 잠깐 몇년의 경력단절보다 아기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나도 내가 이렇게 변할줄 몰라서 당황스러웠고 내 남편과 친구들도 놀라긴했다. 워낙 커리어에 대해 욕심이 많았던 나의 모습을 알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내가 내린 내 마음의 결론은 세상 기준에 맞추어 경력에 대해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실 남들이 3년이라는 시간을 더 달려가면 나는 그만큼 더 뒤쳐진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된다. 그러나 내 경력과 직업적 능력을 택하느라 아기의 한 순간뿐인 영아기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3살까지는 엄마와의 애착이 참 중요한 시기이고 아기의 세상의 전부는 부모인데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아기를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 상 일을 해야하는 엄마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일도 육아도 함께 해내는 엄마들 존경합니다.) 나는 그 둘을 병행할 에너지도 없고 감사하게도 검소하게 아끼며 생활하면 남편의 월급과 아동수당으로 생활이 가능하기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아기가 조금 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때, 내가 남들에 비해 조금 늦고 더딜 수 있으나 그때 다시 재취업 혹은 진학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육아를 하다보면 문득문득 '아 나도 내 일을 찾고싶다.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아.'와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존재는 신비롭고 나에게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4. 새로운 역할과 책임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
잠깐 언급했던 것 처럼 나는 부모화 성향이 있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원가족에 대해서도 늘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며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기라는 존재를 맞이하여 나를 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냥 숨이 턱 막히고 부담스러웠던게 사실이다. 이미 며느리라는 새로운 역할에 조금씩 적응하는 중이었는데 하나가 더 생긴다니... 차라리 그 부담을 외면하고 여행다니고 자유롭게 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 마음은 솔직히 아기를 낳을 때까지도 있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부담감과 두려움 때문에 아기를 안낳았다면 삶에서 내가 아는 것 안에서만 누리고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중 생산성을 성취하는 단계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일이라는 영역도 포함되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기를 낳는 영역도 포함된다. 이론이지만 내가 경험해보니 삶이 정말 한차원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고민의 종류도, 수준도 까다로워지긴 하지만 이 경험을 안해봤다면 인생의 남은 시간이 참 아쉬웠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힘들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언제 부모라는 역할을 해볼 수 있겠나 싶고, 그 과정에서 아기가 나에게 내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부관계도 친정부모님과의 관계도 더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고, 남편, 주변 환경과의 관계도 그렇다. 그런게 힘들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혜도 생기고 수용력도 생기는 것 같다. 물론 안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경쟁과 생존에 대한 부담을 가득 안고 커온 젊은 세대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 부담감이라는 것이 경험해왔던 종류의 부담감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는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싶다. 아기를 낳는 일에는 역할과 책임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기쁨, 친밀감, 연합이 함께 선물로 온다는 것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만약 이 모든걸 알고도 아기를 낳을 선택을 할거야?'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예스를 외칠것이다. 첫째를 낳고나니 둘째를 가질 생각도 자연스레 하게된다. 물론 돈과 내 커리어, 체력, 시간을 생각하면 아찔하긴 하지만 첫째 때 했던 것 처럼 또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겠지, 해낼 수 있는 역량이 길러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중에 아기가 커서 성인이 되고 독립할 때가 되면 그때는 또 우리 가족이 어떤 모습일지,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변해있을지 정말 궁금하고 설렌다. 사회나 남들이 보기에만 성공한 삶이 아니라, 내가 인생에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통해 더 넓은 생각, 그리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