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한 조각(6/30)
구포역에서 내려 3번 승강장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낯익은 풍경을 눈에 담았다. 승강장의 정취를 얼마만에 느껴보는 것일까. 문득 주말마다 부산에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길,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어머니의 ‘조심히 올라가.’ 라는 말 한 마디에 공기가 쓸쓸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나서도 힘없이 흔드는 손과 쓸쓸한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아, 애증이여. 애착관계면서도 불안해하면서도 연민을 느끼는 나의 자아여. 학생으로써 미래는 없고 꿈도 딱히 없어 방황하는 자아와 효도는 하고 싶어하는 어수룩한 효성을 지닌 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선택하지 못하는 나의 부끄러움은 애써 묻어둔다.
10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나락으로 향하는 듯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2시간 가량 G시로 가는 기차 안, 덜컹덜컹 거리는 진동과 철길을 따라 느껴지는 두두둑 거리는 소음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놓인 끈덕진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의 증거는 아니었을까. 열차의 소음과 진동이 내 마음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 있는 힘껏 힘을 내어 애써 홀로 살아가야하는 복잡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부산으로 가는 열차 안, 내 옆자리에 아이를 안은 엄마가 앉아 있었다.아이는 이중으로 덮인 창문을 손으로 콕콕 두들겨본다. 휴대폰 액정과는 다른 차가운 감촉. 누르면 반응이 즉각 이뤄지지 않으나 시선은 자연스레 차창 밖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따라간다. 눈동자에 지나가는 모든 걸 담아본다. 보고, 만지고, 말하고 느끼는 일련의 감각은 살아있음의 총체. 아이는 질문으로 증명한다. ‘이건 뭐예요?’
모든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의미가 담겨있다. 그것은 삶의 일부가 되어 빠르게 지나간다. 세상은 그렇게 흐르고 있다. 순간이 모여 현재를 이루는 법, 잠깐하고 들여다 본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자 창밖엔 순간의 풍경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속속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바라본 세상은 협소하기만 했다. 찰나의 데이터로 축적된 것들이 나를 규정하고 패턴화 하는, 생기를 찾기보다는 갈수록 피로해지는 혼탁한 바다 앞에서 허둥댄다. 무수한 정보 속에서 ‘이건 뭘까?’ 라는 질문 앞에선 뚜렷한 정답도 갈피도 듣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열차 안 진동과 소음은 요란하면서도 우리 몸에 고스란히 감각으로 전해진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주어진 길을 가는 건 열차나 사람이나 똑같으면서도 떨림은 지금을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 앞에선 그저 이 흐름에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찾아오는 소음과 진동 없이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없게 되니까.
가족이 눈에 밟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지금도 흘러서 순간이 되어버리는 순간을 겪은 후 부터 마음이 덜컹거리고 요란해지는 순간을 앞으로도 자주 마주칠 것만 같다. 때론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가 불편해지기도, 끝도 없이 긴 인내심을 발휘해야할 순간도 찾아오지 않을까. 다만 그 과정에 너무 두려움으로 몸을 움츠리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은 여유롭게 그 떨림을 즐길 줄 아는, 시선이 닿는대로, 생각이 닿는대로 그것이 삶이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삶을 대하는 것이 여유롭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