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려면 아직도 오랜 움츠림이 필요한가보다.

생각

by Shysbook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한 사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하객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고 덕분에 맑고 따뜻한 오후를 보냈다.

결혼식을 다녀온 후, 책을 입고하러 서점을 가는 길. 공원 벤치에 목줄이 묶인 개를 봤다. 손을 갖다대니 고개를 푹 숙인 채 회피하려했다. 애써 안심하라고 만져줬지만 개는 그 마음을 알까.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동자가 흐렸다. 노견이다. 살아갈 날보다 살 날이 머지 않은 채 초점이 흐려진 채 그저 사람들의 감각에 의지하며 지낼 운명에 처한 채.

아무도 개를 거들떠보지 않는 듯한데, 주인인 듯 주인인 것같지 않은 아주머니가 ‘저 개는 나이가 많다.’ 라는 말만 하고선 공원 한 바퀴를 뱅글뱅글 돌았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고 속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휴대폰 지도 앱을 따라 입고할 서점 위치를 찾아다니던 중에 지구대가 보였다. 입고를 마치고 다시 돌아올 때, 근처 지구대에 신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고를 마친 후 밀린 일을 잠깐 하고서 다시 근처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길 무렵, 벤치에 둥글게 배를 말고있던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고양이에 반가운 마음이 생겨 벤치로 다가갔는데 피하기는 커녕 내 무릎에 안겼다! 심지어 발 꾹꾹이도 하다니. 벤치에 있던 노견이 눈에 밟혀 생긴 울화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고양이를 챙겨주시는 아주머니를 발견했고, 그 아주머니로부터 내게 안긴 고양이가 구내염에 걸려 이빨을 모두 뽑았다는 이야기하며 츄르같이 습식을 먹이는 것은 삼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에 45살의 나이에 검정고시를 합격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신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분이셨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그분의 고충도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일과 사람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보다 사람을 돈으로 바라보는 요양원 사람들에 참기 힘든 어려움을 호소하셨다.

요양원을 찾는 사람들은 살림이 힘들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요양원 관계자들은 사람을 헤아리기보다 ‘돈’ 으로 매기고 있었다.심지어 화장실에 쓰는 물컵도 곰팡이가 슬고, 사는 곳도 여러모로 열악하여 그분은 락스로 소독을 일일이 하기 시작했다고한다. 짐작컨데 그분이 일하는 요영원은 먹는 것도, 지내는 곳도 열악할 터. 노인들은 여기 있으나 불편함을 애써 감수하며 지내시겠지.

‘그저 돈만 벌면 된다’ 는 인식이 주위에 만연하다. 사람들은 계산하기 좋아하고 무엇이 오르기만을 바라거나 반대로 내려가길 바란다. 손익에 따라 감정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을만큼 자본은 너무 강력한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하나님의 사랑, 긍휼, 낮은 자를 내려다보고 품을 수 있는 아가페는 자본 앞에 무기력했다. 한없이. 그렇게 밀려나는 건 여전히 약자였다. 노인, 유기동물, 어린이, 여성,성소수자 등등..

낮은 자리에서 사랑을 묵묵히 실천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낮은 자리를 떠올려본다. 나는 지금 집값도, 라이프 스타일도 높디 높은 동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가 가득 모인 곳이자 아파트 매매가가 10억이 넘는 곳. 심지어 60억이 넘는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철통 보안에 유명 연예인들이 사는 곳이라서 유독 특별(?)한가보다.

하지만 낮은 자를 향한 눈길은 흐리기만 했다. 아니 보기가 힘든 곳이다.높은 언덕길을 오르며 폐지를 줍거나, 거동이 불편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노인들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은 떠올릴 수 없는 것일까.

오늘, 눈으로 온탕과 냉탕을 오간 기분이다.
사람들의 축하 세례를 받은 부부를 미소로 화답한 하객들의 모습에서 따스함을, 노견에 무심한 사람들과 모든걸 계산으로 대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차가움을 느꼈다. 온도 차이에 나의 몸이 부슬부슬 떨려왔다. 그 떨림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아직도 세상은 차갑기에 마냥 기다리지 말라는 신호는 아닐까. 자극을 받았다면 움직여야한다는 것일까.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아까 전 벤치에서 봤던 노견은 보이지 않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던 주인의 소유인 것으로 추측한게 맞았던 것인지도.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온탕과 냉탕 사이를 구분하기 힘든 것도 세상의 단면이로구나 싶었다.

공원에서 만난 요양보호사의 소원은 자신이 직접 요양원을 차려 어려운 이웃들을 직접 섬기는 것이란다. 열심히 돈을 벌고 돈보다 진짜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과 자본 사이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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