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

1년 후에 이 편지를 읽고 어떤 답장을 보내고 싶으신가요.

by Shysbook



통유리 너머로 강렬하게 내비치는 햇살은 어떤 그늘도 드리울 틈 없이 오롯이 실내 카페를 열기로 덥혔습니다. 등 뒤로 더운 열기로 이내 어깨와 눈이 피로해지곤 합니다. 긴 글을 읽기에도 저의 인내심은 갈수록 짧아질 만큼 저의 체력은 예전만큼 좋지도 않은 듯 합니다.

피곤해지지 않으려 몸을 자주 움직여봅니다. 피곤할수록 모든 걸 재쳐두기 십상이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토록 피곤하게 하는지 물어볼까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불안 그 자체가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듯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게으르다는 생각으로 자꾸 자신을 밀어두고 재촉했던 기억이 납니다. ​


편지를 쓰는 지금, 카페 맞은 편 교회에서 네 명의 청년이 나와 커다란 소파를 들고 버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역할을 아니 수명이 다한 것은 내구성이 닳아 언젠간 버려진다는 것에 유한함에 체념을,상실감에 슬픔이 겹쳤습니다. 체념과 슬픔이 겹친 마음은 담담하기보다 찝찝하기만 합니다. 슬픔 뒤에 이해할 수 없음에 좌절과 분노를 일으킬 것이고, 체념은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받아들이는 태도랄까요. 처음과 끝이 함께 공존하는 순간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버려지는 소파도 언젠간 제 길을 걸어가 무언가로 다시 탄생할 날이 올까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내구성은 멀쩡할테지만 고여서 썩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움직이면 닳지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으면 썩기에 차라리 닳아서 흔적이라도 남기는 것이 차라리 낫겠군요.

아까 전 그 교회에서 청년들이 다시 나왔습니다. 햇볕이 강렬해서 그런가 오른손으로 해를 가리고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주차장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그늘이 드리운 모습 위로 빛이 찾아오면, 몸을 움직여 굳게 묵혀 둔 마음을 조금씩 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십 대 후반을 지나 서른을 향하고 있습니다. 낯설은 나이가 실감이 가지 않아 마음이 부쩍 조바심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등바등 살지말자는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읽고 쓰고 이야기를 듣는 일이 무겁고 좀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도 아등바등하려는 조바심 때문이겠지요.



조금 덜 아등바등거리며 살고 일찍 그것을 했더라면, 자유롭게 삶을 살았을텐데라는 후회가 없는 건 아닙니다. 러닝을 하다가 페이스 조절이 처음부터 잘 이뤄지지는 않는만큼 들쑥 날쑥한 호흡과 페이스를 규칙적으로 맞추려면 무작정 시도하면서 방법을 찾는 게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이스를 조절해 나가면서 나의 상태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장거리 경주는 보다 안온하고 탄력이 더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1년 후 이 글을 읽게 될 이름 모를 당신 혹은 나에게

이 편지로 조금은 삶이 행복해지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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