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14

나무야 미안해.

by Shysbook

휴일, 새 책을 사러 가는 길에 교보문고를 들렀다. 중고책만 보다가 새로 나온 신간 매대들이 즐비한 이 곳을 방문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책을 찾는지를 직접 관찰 할 수 있었다.

책을 한 권 골라 카페 자우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다가 잠시 어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200페이지 책 한 권을 만드는 데에 통상 3m 나무가 필요합니다."

지금 내 손 안에 쥐어진 책은 300페이지가 조금 넘었다. 그렇다면 3미터가 더 넘는 나무를 잘라다 이 책을 만들었을 터. 허나 내가 집어 든 책의 내용은 온통 실망으로 가득했고, 내용과 연관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거나 설명이 빈약한 부분들이 곳곳에 드러나는 책을 읽다보니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나무야 미안해'


나무에게 참으로 미안한 책들이 너무나 많았다. 3미터 넘게 자라 책이 만들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텐데,그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 형편없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마음 한 켠이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내용 자체가 실망이라면,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있다고 친다고 하자. 하지만 사실여부도 판단하기 힘든 책들이 세상에 나오면 나무에게 특히나 미안함을 넘어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분개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마음 한 켠이 찝찝할 때가 있다.


하루는 직장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늦은 저녁 무렵, 할머니 한 분이 차가운 바닥에 앉아 소파 의자를 테이블 삼아 그 위로 책과 노트를 올려놓고는 한 자 한자씩 정성들여 필사하고 계셨다. 평일 매일 저녁마다 같은 장소 같은 책을 열심히 필사하는 모습이 동료의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동료가 그분이 무슨 책을 읽으시는지 궁금했단다.

"할머니, 어떤 책 읽고 계시나요?"

책 제목을 이내 확인해보니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이하 안아키)' 의 책이었다.

책 제목을 보고 무언가를 직감했던 것인지 동료는 서둘러 전문의 서적을 권해드렸다고 한다.


안아키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 기사로 접한 적이 있었던 나로썬 동료의 대응에 안도할 수있었다. 안아키는 극단적 자연 치유를 강조하고 있었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을 거부하고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약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의학 정보를 전달하여 피해자들을 양산해냈다.


책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들 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들을 여과없이 전달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인냥 믿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안아키와 같은 건강 및 의학서적의 특징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대중들이 하나하나 검증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권위와 지식에 그저 기댈 뿐이다.


책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가 호/불호로 갈린다만,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근거와 객관적인 자료가 담겨있어야한다. (일명 팩트) 팩트로 확인할 수 없는 가짜 정보와 오개념 투성이의 정보들을 실어다 책을 만든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책은 나와서는 안될 책이다.


부적절한 책은 사실 책의 탓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부적절한 시간, 부적절한 장소에 있었을 뿐이다.

혹은 우리가 부적절한 추천사에 넘어갔거나 그 추천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추천사를 '부정확하게' 썼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부적절한 책은 기꺼이 없애고 싶은 짜증 나는 책이다. 그러에도 부적절한 책은 사물로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이런 실수를 지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책에 바침> p.62-


<책에 바침> 속에 나온 내용을 살펴보니 세상에 나와선 안될 책은 '부적절함'에서 비롯되었다.

책은 산물이다. 사람들의 인풋에 의해 나온 출력물에 지나지 않는다. 원고를 모으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내용을 묶어다 인쇄를 거쳐 책으로 나온다. 하지만 시작부터 부적절하면 결과 또한 부적절하다. 저자는 원고 속 내용이 사실인지 검토했어야하지 않았을까.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할 편집자는 뭣하러 있는 것일까, 이 책이 좋다고 무작정 엄지를 추켜세우는 추천자들은 무슨 의도로 추천하고 있는걸까? 검토의 여지도 없이 그저 판매율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내야한다는 출판사의 생각까지 더해지면, 맙소사 환장의 콜라보 탄생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을 때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책을 사러 갈 것이고 그 책을 읽고 나온 방법대로 따라하다보면 제 2의 피해자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사이에 내용을 검토하여 비판하는 내용이 언론이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나온다면,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점 입장에서는 수익을 올리려면 이 책을 팔아야만하고, 이 책으로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려면 진열을 막아야하나 매출 감소를 감안해야한다.


책 한 권 못 팔아서 서점의 생사가 금새 결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윤에 눈이 멀어 정확한 진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못된 출판사와 그로 인해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 이런 책을 과감하게 비판하는 '감시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 건전한 출판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3미터의 나무가 책으로 나와 오롯이 사람들에게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 세상을 이롭게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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